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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노트 ] K-성악의 새로운 날개, 미래는 ‘레퍼토리’에 달려 있다

K-성악학회, 한국 성악의 새로운 출발점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해방 이후 한국 성악은 눈부신 국제적 성과를 거두었다.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 연광철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활약한 성악가들의 존재는 ‘한국 성악의 기량’이 세계적 수준임을 분명히 입증한다. 그러나 개인의 화려한 성취와 달리 국내 성악 생태계 전체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오페라하우스의 미비한 운영, 교수직 중심의 생존 구조, 반복되는 소수 서양 레퍼토리 등으로 인해 성악계는 새로운 확장 없이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기량은 최고지만, 정작 ‘우리의 노래’가 없다

 

한국 성악은 소리와 기술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관객을 설득할 ‘한국적 콘텐츠’가 빈약하다. 오랜 기간 라보엠·라 트라비아타·토스카 등 20개 내외의 서양 레퍼토리만 반복한 결과, 성악계는 매너리즘에 빠졌고 관객 세대는 뮤지컬·페스티벌·영상 기반 공연 같은 새로운 양식으로 이동했다. 이제 성악의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무엇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기술의 시대를 넘어, 콘텐츠와 정체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해외에서 먼저 부는 K-가곡의 바람

 

최근 KBS <K-가곡 슈퍼스타> 무대에서 외국인 성악가들이 완벽한 한국어 발음으로 가곡을 부르는 모습은 큰 울림을 주었다. 이들은 한국 청중이 잊고 있던 가곡의 아름다움을 되살렸고, 세계가 K-가곡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었다.하지만 이 현상은 동시에 위기 신호다. 정작 한국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가고파’ ‘보리밭’ ‘청산에 살리라’를 들어본 적조차 없는데, 외국 성악가들은 한국 가곡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청소년이 외국인 이 부르는 한국 가곡을 구경만 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세대 간 징검다리가 없으면, 가곡은 사라진다

 

가곡 교육은 초·중·고 현장에서 사실상 실종되었고, 노래하고 표현하는 기본 학습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가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우리 삶의 정서가 응축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특정 세대 안에서만 소비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가곡은 향유층의 노화와 함께 자연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문화는 흐름이다. 세대 간 전달 구조가 끊기면 그 문화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이 바로 가곡을 다시 ‘미래세대의 정서 언어’로 되살릴 때다.

 

K-가곡 청소년·대학생 콩쿠르, 반드시 제도화해야

 

가곡 보급의 핵심은 ‘첫 경험’이다. 청소년과 청년층이 가곡을 부르고 듣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K-가곡 청소년·대학생 콩쿠르를 제도화하여 창작·교육·무대 경험을 순환시키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연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생명선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책무다. 특히 현재 가곡을 즐기는 동호인 세대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재원 마련에 동참한다면, 다음 세대를 위한 든든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가곡 교실 확대와 동합창단 창단, 인프라 확충이 관건

 

K-가곡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려면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지역별 가곡 교실 확대, 청소년·대학생 중심의 동(同)합창단 창단, 학교·대학·문화재단과의 연계 프로그램 운영 등 실질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외국인 성악가를 위한 한국어 딕션·발성 교재 개발, 창작 오페라 및 신아리아 제작도 병행되어야 한다.

 

K-성악학회, 한국 성악의 새로운 출발점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K-성악학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학회는

K-가곡 및 창작 오페라 연구
한국어 성악 발성·딕션 표준화
국내외 성악가 대상 K-레퍼토리 교육
실연·홍보·스폰서십을 결합한 플랫폼 구축
등 학술·창작·실연을 아우르는 종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 성악의 다음 50년은 한국적 레퍼토리의 확보에 달려 있다.

 

가곡의 미래는 오늘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세계는 이미 한글과 K-가곡에 매료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청소년이 가곡을 모른다면 문화 정체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가곡은 스스로 살아남지 않는다. 우리가 지켜야 한다. K-성악학회의 창립은 바로 그 첫걸음이며, 한국 성악이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갖추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