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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초대석] BTS와 LOVE를 거치면 성공은 따라온다- AI 이후 인간의 삶을 어찌할 것인가!

더 마스터키 저자 강상보 캡틴과 탁계석 예술비평가 회장의 만남

[인터뷰초대석] BTS와 LOVE를 거치면 성공은 따라온다- AI 이후 인간의 삶을 어찌할 것인가!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탁계석 예술비평가 회장(좌) 강상보 캡틴(우) 청계산 원터 커피숍에서, 2월 3일 11시) Q1. “BTS와 LOVE를 거치면 성공은 따라온다. 당신은 이미 키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더 마스터키』는 어떤 책인가요? 문명은 AI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AI 이후, 문명 설계자는 바로 10, 30 젊별입니다. 『더 마스터키』는 그 문명 설계 항해를 떠난 젊은 세대에게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돕는 나침반 같은 책입니다. 과정은 불안하지만, 방향이 맞다면 반드시 도착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남의 시선에 끌려 다니지 마라. “과정을 믿어라. 당신이 바로 그 마스터키다.” Q2. 드림 소사이어티가 공동체의 비전이자 실행 목표라고 하셨는데, 어떤 이론입니까? 드림 소사이어티는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문명 설계 개념입니다. 기술과 자본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이제는 ‘의미·생생한 꿈·LOVE’가 가치의 중심이 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특히, 1030 젊별이 그 변화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직접 설계하는 시대를 열자는 제안입니다. Q3. AI의 등장으로 불안과 희망이 공존합니다. 변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방향과 노하우에서 갈등이 큽니다.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합니까? AI는 계산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인간이 경쟁해야 할 영역은 기술이 아니라 의미입니다. AI 이후의 질문은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방향은 하나입니다. 인간은 철학과 판단, 책임과 LOVE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Q4. 특히 10·20세대의 좌절과 심리적 불안이 가정·학교·사회로 그대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기준 상실의 문제입니다. 젊은 세대는 능력이 없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기준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흔들립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생생한 꿈과 의미, LOVE가 실제 삶이 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Q5. 기득권, 제도, 환경 모두에서 혁신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요? AI 이후,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의미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은행과 문화예술부터 먼저 혁신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이 사회에 어떤 LOVE를 남길 것인가. 나의 선택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나는 끝까지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의미 있는 답을 내놓을 때, 진짜 혁신은 시작됩니다. Q6. K-클래식 입장에서 금융이 마스터피스 창작과 K-컬처를 리드한다면 , K-르네상스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가 듭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금융은 돈을 쫓을 때 쇠퇴하지만, 의미를 선택할 때 문명을 만듭니다. 의미 있는 창작과 생생한 꿈에 금융이 기준을 갖고 투자한다면, 한국은 ‘지식 수입국’이 아니라 ‘문명 수출국’이 됩니다. Q7. 우리 원형과 향토 문화가 재해석된다면, 지역 소멸 문제도 해소될 수 있을까요? 지역은 자원이 부족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즉 생생한 꿈이 사라져서 소멸됩니다. 원형과 향토 문화는 관광 자원이 아니라 존재의 서사입니다. AI 이후, 지역은 인간이 의미를 완성하기 위한 조건을 가장 잘 갖춘 공간입니다. 그래서 지역은 소멸의 대상이 아니라 문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Q8.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 중인데 K-Classic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협업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는 의미가 중심이 되는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즉, 의미를 기준으로 누구나 자신의 철학과 가치가 담긴 상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K-Classic은 형식이고, 드림 소사이어티는 방향입니다. 형식과 방향이 만나면, 협업은 프로젝트를 넘어 하나의 문명 모델이 됩니다. Q9. 서초구가 AI 특구이고 인재가 집중돼 있습니다. 구민 특강을 요청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AI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AI 특구는 단순한 기술 단지가 될 뿐입니다. 진짜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책임지고 사용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구민들이 “AI 이후, 인간은 무엇을 완성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의미 있는 답을 가질 때, 서초는 진짜 미래 도시가 됩니다. Q10. 대학·은행·기업 특강을 통해 사회적 우울과 불안을 줄이고, 절대공식 BTS×LOVE=SUCCESS 을 확산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고, 해설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절대공식 BTS × LOVE = SUCCESS는 일부만을 위한 공식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시대의 약속입니다. 이 공식을 교육과 금융, 기업과 문화 속에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 할 미래입니다. Q11. 은행이 철학을 갖고 문화예술을 끌어 안아야 산다고 하셨는데요 AI 이전의 은행은 매출과 기술, 담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움직였습니다. AI 이후, 은행은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 은행의 기준은 생생한 꿈과 의미, 책임과 LOVE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예술은 한 사회가 무엇을 존중하고 어디까지 지키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은행이 분명한 철학을 갖고 의미 있는 예술과 살아 있는 꿈을 끌어안을 때, 사람들은 그 은행을 ‘이용’이 아니라 ‘동행’으로 받아들입니다. 의미 문명은 은행과 문화예술이 책임과 기준을 갖고 방향을 제시하며 주도할 때 완성됩니다. 캡틴 강상보 드림 체인 설계자 / 더 마스터키 저자

바리톤 김동섭 ‘고독의 서사를 끝까지 걸어간 밤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를 듣다’

그는 ‘노래하는 성악가’라기보다, 길 위를 걷는 인간으로 무대에 서 있었다

바리톤 김동섭 ‘고독의 서사를 끝까지 걸어간 밤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를 듣다’

K-Classic News |손영미 작가·시인·칼럼니스트 봄기운이 문턱에 닿던 입춘(立春)날, 푸근한 햇살이 하루를 감싸던 저녁에 필자는 뜻밖에도 가장 깊은 겨울을 만났다. 계절은 분명 봄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음악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밤 마주한 것은 19세기 초, 고독의 끝에서 태어난 한 인간의 겨울의 《겨울나그네》였다. Wilhelm Muller 의 시에 Franz Schubert 곡을 붙인 이 작품은 바리톤 Gerard Kim, (김동섭)피아니스트 Seonmi Choi(최선미)의 연주로, 2026년 2월 4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K&L 뮤지엄(선바위역 부근)에서 연주되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24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연가곡’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 음악이 도달한 인간적 깊이를 놓치게 된다. 이 연가곡집은 사랑의 실패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 인간이 세계와의 연결을 하나씩 끊어내며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철학적 삶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눈 덮인 길 위를 걷는 나그네는 더 이상 목적지를 향하지 않았다. 그는 도착을 기대하지 않았고, 위로를 구하지도 않았다. 《겨울나그네》의 여정은 여행이 아니라 내면의 순례에 가까웠다. 특히 인간이 무너져 가는 과정이기보다는, 무너짐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직시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이 유독 깊은 울림을 지녔던 이유는, 슈베르트 말년의 고독이 빌헬름 뮐러의 시와 정밀하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나그네》가 작곡된 1827년, 슈베르트는 병과 가난, 사회적 고립 속에 놓여 있었다. 명성은 멀었고, 죽음은 더 이상 추상이 아니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이 노래들은 나를 그 어느 작품보다 괴롭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감상이라기보다 삶의 상태에 대한 고백처럼 들렸다. 뮐러의 시 속 나그네는 사랑을 잃은 한 개인이었지만, 슈베르트의 선율을 통과하며 그는 존재 그 자체로 고독한 인간이 되었다. 시가 언어로 기록한 절망이라면, 음악은 그 절망을 견디는 호흡이었다. 슈베르트는 설명하지도, 해석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이번 바리톤 김동섭의 갤러리 살롱 콘서트는 그 여정을 정공법으로 완주한 무대였다. 미국 무대를 앞두고 《겨울나그네》만 무려 16회에 걸쳐 연주해 온 바리톤 김동섭은 연주중 물 한 모금, 과장된 제스처 하나 없이 24곡을 단숨에 걸어 나갔다. 어느 한 음도 밀리거나 당기지 않았고, 소리는 유유히 흘렀다. 노련함은 기교가 아니라 절제된 태도로 드러났다. 그는 ‘노래하는 성악가’라기보다, 길 위를 걷는 인간으로 무대에 서 있었다. 1부에서 나그네는 조용히 세상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Gute Nacht에서의 이별에는 원망이 없었고, Der Lindenbaum에서는 위안의 기억마저 돌아갈 수 없는 유혹으로 변해 있었다. Auf dem Flusse에서 얼어붙은 강은 고요한 표면 아래 감춰진 격렬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모든 순간에서 피아노는 반주가 아니라 풍경으로 존재했다. 눈길과 바람, 침묵을 만들어내며 나그네의 내면을 비추고 있었다. 2부에 이르러 고독은 더 이상 상황이 아니었다. Einsamkeit에서 고독은 존재의 상태로 선언되었고, Die Krähe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위협이 아닌 동행자로 다가왔다. 인간은 이 지점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3부에서 희망은 환상으로, 안식은 거절로 바뀌었다. Das Wirtshaus에서조차 죽음은 문을 닫았고, 결국 Der Leiermann에서 나그네는 자신보다 더 고독한 존재를 마주했다. 말은 없었고, 설명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질문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너와 함께 가도 되는가?” 이번 《겨울나그네》는 슬픔을 과시하지 않았다. 감정의 과잉 없이 텍스트의 무게를 끝까지 존중하며 겨울을 통과했다. 성악은 감정을 연기하지 않고 고독을 견디는 방식으로 노래했고, 피아노는 음악이 아니라 시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겨울나그네》는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이 끝내 혼자가 되는 순간에도 어떻게 자기 자신과 동행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다. 그것이 이 작품이 두 세기를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는 이유였다. 마치며… ‘겨울나그네’ 는 슬픔을 노래하지 않았다.인간이 고독을 피하지 않고,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투잡러 의사/쳄발리스트] 강주호의 클래식 감상 처방전

바로크 시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거장 헨델, 그리고 그의 오르페우스 카스트라토

[투잡러 의사/쳄발리스트] 강주호의 클래식 감상 처방전

K-Classic News 강주호 의사 / 쳄발리스트| 저는 환자 및 보호자분들을 돌보며 병원에서 간호사선생님들을 포함해 다양한 직군의 분들과 더불어 근무하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여 악기를 좀 더 진지하게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는 음악도의 삶을 병행하고 있는 강주호입니다. 주변에 많은 분들께서 클래식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시고 이에 부응하듯 점차 다양한 장르와 레퍼토리의 연주회들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감사한 기회로 다양한 감상을 하고 어떤 분들께선 직접 음악연주의 기회를 누리고 계신 분들께 닿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보다 다양한 음악을 찾아가시는 길잡이가 되는 컨텐츠와 글들은 이미 넘치게 많을 텐데,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싶으면서요. 그러다가 대부분께서 잘 알고 계신 부분들을 건강검진하듯 살펴보다가도 살짝씩 교정해드리는 처방 같은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제가 뭐라고 이런 글을 쓰냐 싶은 생각에 수없이 글 제목과 방향을 바꾸면서 망설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잘 알고 좀더 많이 알수록 음악은 더 재밌고 새롭게 잘 들릴 것이란 것을 제 경험을 비추어서 말씀을 남겨봅니다! (아마도 제 전공..? 제가 주로 다뤄왔던 곡들과 장르를 고려하면 바로크 시대와 고전 시대의 음악과 작곡가들을 주로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바로크 오페라의 거장, 헨델 다시 알기 음악의 아버지 혹은 음악의 어머니라는, 아주 어릴 때부터 듣게 되어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잡게된 수식어로 바로크 시대 (1600년 경-1750년 경)의 후기(흔히 1680-1750의 시기를 일컫습니다)를 이끈 두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를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이번 달엔 2월에 탄생한 헨델이라는 작곡가를 집중 조명해 보려고 해요. 이번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적어도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 아래에 국한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냈던 블루오션 탐색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는 ‘오페라’ 산업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키며 극 음악의 발전을 일으킨, 오페라에 진심이었고 작곡뿐만 아니라 기획, 미술, 무대장치 및 가수의 캐스팅 등 제반 사항을 총괄적으로 감독했던 글로벌 예술사업가입니다. 오페라 혹은 뮤지컬에서의 화려한 무대 장면과 멋진 연주가 이어지기 전까지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만큼 많은 자본의 투자와 많은 후원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은 몇 세기가 흐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흥행에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매진해야 했고, 다분히 시대적 흐름 혹은 정치적 세력들(당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후원자들)의 동태들에도 민감해야 했죠. 다행히 큰 그림을 보며 몇 수 앞을 볼 줄 알았던 헨델이기에 그는 20대 중반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 때부터 유럽 곳곳의 대도시에서 명성을 쌓은 거장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오페라의 본고장이었던 이탈리아에서도 그는 다른 작곡가들을 압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는 영국 태생의 위대한 작곡가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이 요절하고서 음악의 변방처럼 여겨지던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그의 독일식 이름의 철자(spelling)를 ‘George Frederic(k) Handel(조지 프레더릭 헨델)’로 바꿔가면서요. 아주 많은 수의 오페라는 물론(아래에서 더 설명드릴게요), 더 많은 합창과 비교적 종교적인 주제를 갖고 연기/연출은 작았던 장르인 오라토리오(Oratorio, 메시아 및 사울 등이 대표적인 예)들을 올렸습니다. 왕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던 그였고, 그 노력의 산물로 우리에게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와 같은 명곡들이 남아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는 태어난 독일 뿐 아니라 영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작곡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작곡가가 어떻게 오페라 산업에 진심을 보이게 되었을까요? 독일 할레(Halle)에서 63세의 외과의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던 헨델은 원래는 엄했던 아버지의 뜻대로 법학대학에 다니던 학생이었으나 그 숨길 수 없는 음악적 재능으로 그 도시의 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던 차호프(Friedrich Wilhelm Zachow, 1863-1712)를 통해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게 됩니다. 이후 오르간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음악들을 감상하고 흡수하던 중 베를린에서 당대 오페라의 거장 보논치니(Giovanni Battista Bononcini, 1670-1747)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며 처음으로 오페라에 눈을 뜨게 됩니다.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장르를 만나 강력한 이끌림을 받았던 것일까요. 이후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 하노버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등 오페라가 이미 앞서 있는 본고장에서 여러 작품들을 올리며, 그의 첫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아그리피나(Agrippina, HWV 6)가 올려졌을 때는 그의 나이 24-25세였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듯, 단순히 작곡뿐 아니라 연주, 연출, 캐스팅 등 공연 대부분의 영역에 걸쳐 있는 오페라의 작곡 작업은 오늘날 영화의 제작을 총괄하는 감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헨델은 런던이라는, 오페라 시장의 미개척지로 건너가 자리를 잡은 뒤 이 곳에서 1719년 왕립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을 창단하고 거기서 10년간 34개의 오페라를 올리며 460번 이상의 무대를 올렸습니다. 이는 런던을 새로운 오페라의 수도로 만든 것과 다름 없는 일입니다. 당시 왕립아카데미는 헨델 이외에도 설립자인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경쟁 및 작품 창작을 지속하고자 한 시너지를 위해서였을지, 다른 오페라 작곡가인 아리오스티(Attilio Ariosti, 1666-1729)와 앞서 헨델을 오페라 세계에 발들이게 한 장본인이자 어쩌면 스승이라 볼 수도 있을 보논치니와 함께 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깐씩 헨델의 심기를 건드릴 성과를 내는 정도였을 뿐 헨델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기업가적인 기질이 있기도 했고,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아했던 성미도 있었을 터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관객이 어떤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롱런의 비결이었을 것 같습니다. 말년에 왕립아카데미는 문을 닫게 되었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헨델은 새로운 회사를 차리게 되어 오페라 작곡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나 그 즈음 오페라의 유행이 곤두박질을 치자 새로운 고민에 봉착한 그는, 영국 관객들을 위해 ‘영어 가사’로 된 오라토리오들을 새롭게 작곡합니다. 이 장르가 오페라를 이어 그를 성공하게 한 새로운 장르가 되었는데요. 1741년 그의 마지막 오페라 데이다미아(Deidamia, HWV 42)가 상연 될 즈음 그의 불멸의 역작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 HWV 56)의 작곡에 착수해 이듬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초연이 됩니다. 1750년 런던의 파운들링 자선병원(Foundling Hospital)에서의 연주에서는 할렐루야 합창에서 왕(조지 2세) 혹은 프레더릭 왕세자 부부의 기립박수 해프닝이 전해지는데요. 이후 할렐루야 곡의 연주 시에는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습이 생겼고, 지금도 헨델의 가장 대표격 곡이 되었습니다. 헨델은 런던에서의 사후(死後) 많은 영국 국민들 우리에게 젤 알려진 후배 작곡가들에게도 그 영향이 상당했습니다. 종교인 혹은 왕족이 안장되는 곳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으며 1784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헨델 추모 축제가 유럽 곳곳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우리에게 알려진 하이든도 그 축제들에 참여한 음악가로, 메시아 등 헨델의 오라토리오 작품에 영향을 받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1796-8)를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고, 모차르트도 생전 헨델의 메시아를 독일어 가사로, 그리고 악기의 편성을 좀더 늘려서 1789년 무대에 올린 바 있다고 합니다. 베토벤도 헨델을 아주 존경했습니다.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엄청난 결과를 얻는 방법은 헨델에게 배울 수 있다.” “헨델은 지금껏 살았던 누구보다도 위대한 작곡가다, 나는 그의 무덤 앞에서 무릎 꿇고 절하고 싶다.” 등의 말을 남겼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 유명한 교향곡 9번 합창(Op.125), D장조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 Op.123) 및 헌당식 서곡(Op.124) 등의 말년 작품들에서 헨델의 영향이 다분히 나타난다고 분석한 의견들도 있습니다. 그의 노래, 그의 오르페우스 이런 오페라의 작곡이 능수능란했던 그는 합창곡, 기악곡에서도 다른 작곡자들과는 차별화된 노래하는 선율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바흐의 음악보다 헨델의 곡이 콧노래를 붙인다던지, 멜로디라인을 쉽게 따라갈 수 있다던지 하는 친근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곡이 절대 단순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고 굉장히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음향들을 잘 활용했습니다. 멜로디 자체를 두고 보았을 때도 들으면 어느 정도 기억될 정도의 멜로디부터,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아실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의 선율 등을 만들어 낸 ‘히트메이커’였습니다. 선율과 멜로디를 아주 잘 뽑아낸다는 요즘 식의 표현이 그에게도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곡들을 쓰는 헨델이었으니, 시대를 초월한 작곡가로 칭송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아, 저 ‘울게 하소서’ 아리아가 실려 있는 오페라 리날도(Rinaldo, HWV 7a)는 그가 아그리피나 이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올린 작품이자 그의 명성을 런던에 폭발적으로 알린 대히트작입니다. 이 아리아는 학창 시절 음악 시간뿐 아니라 아주 유명한 영화 ‘파리넬리(‘Farinelli, il castrato’, Gérard Corbiau, 1995)’에 삽입되어 클라이막스 장면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만든 곡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아리아는 오페라의 여주인공 ‘알미레나(Almirena)’가 부르는, 자유를 갈망하며 현재 적들에 의해 감옥에 갇힌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입니다. 주인공이자 십자군의 기사인 리날도가 사라진 그의 연인 알미레나를 안타깝게 찾으며 부르는 명아리아 ‘Cara sposa’또한 영화에 삽입되었었는데, 제가 적극 추천 드리는 곡입니다. 곡이 시작하기에 앞서 바이올린의 방황하듯한 마음,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불안한 음들 위로 주인공의 음성이 울려퍼진 이후 장중한 베이스의 음들이 점층되어 비장미를 고조시키는 곡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연인이 죽었거나, 사라졌거나 하는 상황에서 남겨진 남주인공의 노래. 신화 속 오르페우스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오페라는 현재 자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라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후기르네상스-초기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의 작품인 ‘에우리디체(Euridice, 1600)’인데요. 바로 오르페우스가 잃어버린 그의 사랑 에우리디케를 다룬 작품입니다. 그리스 비극 혹은 신화 속의 인물, 전설 혹은 역사상의 인물들이 오페라 줄거리 상 주인공으로 올려지게 되는데 그 시초는 바로 노래하던 영웅이자 사랑 속에 사는 인물 오르페우스였던 것입니다. 7년이 지난 후 우리에게 좀더 알려진 작곡가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페라 오르페오(Orfeo, 1607)가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상연될 정도로 사랑받고 있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오르페우스의 캐릭터야말로 오페라 속의 남자 주인공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형태로 볼 수 있는데 그럴 만한 다양한 특징이 존재합니다. 그의 엄청난 노래 솜씨, 악기를 다루는 명수였던데다가 사랑을 찾아 죽음을 불사하고 저승을 내려가는 순애보, 맹수인 케르베로스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었고, 지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금기사항을 어겨 영원히 에우리디케와 이별하는 극적인 이야기. 다재다능 엄친아 적인 면모를 지닌 영웅의 순애보와 충족되지 못한 사랑에서 파생되는 아픔. 많은 사랑 노래들은 지금 우리의 세대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문화의 흐름입니다. 오페라 속의 아리아들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곡을 더 추천드리고자 합니다. 영국의 악단과 성악가들이 내한해서 2023년 전곡이 한국에서 초연되었던 오페라 ‘로델린다’의 한 곡인데요.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며 부르는 아리아로, 많은 사람들에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살아 돌아온 선왕(先王) ‘베르타리도’가 아내이자 오페라로 타이틀롤 ‘로델린다’를 그리며 부르는 “Dove sei, amato bene” 아리아 속에서 헨델의 음악과 미장센을 거쳐 또 하나의 오르페오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찾는 상상 속 그의 사랑. 혹시 노래를 듣고 있는 많은 분들을 향한 진심은 아닐지요. 카스트라토 vs 카운터테너, 그리고 다 카포 아리아 바로크 시대 곡들을 감상하기에 앞서 두 가지의 팁들만 더 이야기하고 글을 맺을까 합니다. 이제는 카운터테너라는 성부가 대부분 분들께 아주 생소한 음역대는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오늘 곡들의 특성 상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를 우선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 고린도전서 14장 34절”라는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은 결국 여성 성부의 음을 좀더 크고 원활하게 부를 수 있는, 자연적이지는 않은 방법의 거세가수-카스트라토(castrato)를 양산하기에 이릅니다. 헨델의 시대는 이런 카스트라토 가수들이 당대의 가장 톱스타, 아이돌로 여겨진 시기입니다. 일반적 성인 남성보다 좀 더 길쭉하고 훤칠했던 외모가 되었던 데다가, 수염 없이 미소년의 외모와 목소리를 지닌 청년의 모습.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인 파리넬리(사실 그는 헨델과는 작업을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해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헨델과 작업한 세네시노(Senesino), 카파렐리(Caffarelli), 쿠사니노(Cusanino) 등의 예명을 지닌 카스트라토들의 초상화를 찾아보시면 아마 수긍하실 겁니다. 모든 카스트라토들이 다 이런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었을테니,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들의 슬픈 역사가 있는 셈이지요. 19세기 말 교황령에 의해서 이런 관습이 금지되기 전까지 많은 소년들이 예술의 이름 아래에 그들의 성적 정체성을 잃은 셈입니다. 반면 카운터테너는 카스트라토와는 별개로, 아마도 더 이전 중세 때부터 있었던 성부입니다. 테너보다 더 높은 음을 내기 위한 화성용 성부를 가성(falsetto)을 써서 현재의 알토/메조소프라노 성부까지 커버했던 성부의 이름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카스트라토가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 그들을 위해 작곡된 곡들은 바지역할(trouser role; 치마가 아닌 바지-즉 반대의 성별인 남성 역할)을 맡은 메조소프라노의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 1912-1979)로부터 시작하여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 데이비드 다니엘스(David Daniels) 등에 이르는 많은 카운터테너 가수들이 다시금 그 레퍼토리를 가져와 녹음 및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적은 성량의 교회/성당용 단원 속 성부였던 카운터테너가 이제는 극장 하나를 울리는 파워를 갖추게 되면서 다시금 오페라 무대 위에 등장하게 됩니다. 다행히 이제는 다양한 공연과 매체들을 통해서 그 당시 ‘남성’ 주인공의 카스트라토 배역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곡을 카운터테너가 부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남성 성악가가 남성 화자의 가사를 전달하는 장면이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소름 돋는 미성이 주는 장면을 많이 경험해보시면, 그 당시의 취향과 카타르시스는 이런 것이었겠구나 하면서 깊은 생각과 감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TMI이지만, 앞서 언급한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아리아는 여성 캐릭터의 아리아이나 파리넬리 영화에서 카스트라토인 파리넬리가 불렀었기에 많은 카운터테너 분들에 의해 애창되는 곡인데, 가사나 다른 정서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답니다^^) 다 카포 아리아(Da capo aria) 양식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첫 머리로 돌아가서’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어에서 왔고, 이는 음악을 A-B-A’ 형식으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바로크 아리아 형태입니다. 많은 성악가들은 A’, 즉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을 때 악보에 적혀 있는 것 이상의 많은 꾸밈음들을 추가하고 그들 각자가 구사할 수 있는 음악성과 기교를 추가하여 그들만의 버전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그 당시 바로크 음악이 연주자들에게 많은 자유와 영역을 할당해주고 그만큼 더 많은 즉흥성이 보장된 장르임을 보여줍니다. 그런 면에서는 재즈의 스캣과도 같은 느낌도 있고, 기악에서의 즉흥 연주와도 많이 통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관객으로 가는 다양한 무대에서도 여러 곡 속 다 카포 섹션에서의 변주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자못 기대가 됩니다. 글을 맺고 듣는 이로 다시 돌아갈 저에게도 연주가 많이 기다려지고 궁금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강주호 프로필 중앙대학교 의학부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암센터 내과계병동당직의 역임 현)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내과 병동 당직의사 제22회 춘천국제고음악제 콩쿠르 대학 일반부 1위 한국하프시코드협회 하프시코드 지도자 자격증 1급/최고위 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 연주디플로마 과정 수료 현) 한국하프시코드협회 기획/홍보이사 현) 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 음악학과 석사과정 재학

6223미래포럼 제9차 심포지엄·정기총회 '조석준 전 기상청장 초청 강연'

파키스탄 경제인 협회(PBA) MOU 체결도

6223미래포럼 제9차 심포지엄·정기총회 '조석준 전 기상청장 초청 강연'

울산신문 김응삼 기자 | 6223미래포럼(위원장 이채필)은 3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 안단테홀에서 제9차 심포지엄 및 정기총회를 열고,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키 위한 국가적 전략과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상현 KCC정보통신 회장, 이기우 국학원 원장 등 포럼 주요 위원들과 김덕룡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장, 이채익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무다사르 알리 치마 PBA 의장 등 각계 인사 7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6223미래포럼(위원장 이채필)은 3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 안단테홀에서 제9차 심포지엄 및 정기총회를 열고,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키 위한 국가적 전략과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상현 KCC정보통신 회장, 이기우 국학원 원장 등 포럼 주요 위원들과 김덕룡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장, 이채익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무다사르 알리 치마 PBA 의장 등 각계 인사 7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6223미래포럼(위원장 이재철)이 3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 안단테홀에서 제9차 심포지엄 및 정기총회를 열고,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과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행사의 핵심인 심포지엄에서는 조석준 전 기상청장이 강연자로 나서 ‘기후지능과 시공간 창출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조 전 청장은 기후 데이터를 단순한 정보로 보는 것을 넘어, 이를 인공지능(AI) 및 산업과 결합한 ‘기후지능’이 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파키스탄 경제인 협회(PBA)와의 업무협약(MOU) 체결식이 진행되어 눈길을 끌었다. 양 기관은 향후 경제 교류 및 기술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현장에는 위원장인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상현 KCC정보통신 회장, 이기우 국학원 원장 등 포럼 주요 위원들과 김덕룡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장, 이채익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무다사르 알리 치마 PBA 의장 등 각계 인사 7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6223미래포럼은 “각 분야 전문가 모여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하는 정책 플랫폼”이다. 6223미래포럼은 전직 장관, 기업인, 학자 등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이 모여 대한민국의 중장기적 미래 전략을 연구하고 제안하는 순수 민간 정책 포럼이다. 단순한 친목 도모를 넘어 정기적인 심포지엄과 정책 제안을 통해 국가적 과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국내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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