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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존재의 이름, K-Classic 시대, 나의 이름 짓기의 의미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BNT(불가리아국영TV). 불가리아 세르비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온 동서악회 연주가들 (대표: 이복남 )

 

 이름이 곧 정체성이다

 

어떤 기업이든, 상품이든, 혹은 예술가 개인이든 ‘브랜드’는 단순한 이름을 넘어 곧 존재의 정체성을 말한다. 브랜드는 기억의 심벌이고, 가치의 상징이다. 따라서 기업은 대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막대한 투자와 마케팅을 쏟는다. 문화 예술계 또한 마찬가지다. 창작자와 단체가 어떤 이름으로 활동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과 시장 파급력은 천양지차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장르 혼재 속에서 잊혀져가는 전통의 이름들

 

한국 전통 성악에서 ‘가곡’은 깊은 정통성과 미학을 지닌 장르였다. 그러나 서양의 슈베르트, 슈만의 예술가곡(Lieder)이 들어오면서 ‘우리 가곡’이란 표현이 생겼고, 기존의 전통 가곡은 그 이름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더구나 ‘정가(正歌)’라는 개념이 도입되며 가곡과 정가가 중첩되고 혼재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국악의 정체성마저 ‘시나위, 창, 판소리’처럼 내부적 다변화 속에 명확한 네이밍의 통일성을 잃고 있다. 학술토론에서 '국악'을 ‘한음’ 이란 새로운 네이밍 제안이 있었지만 현실에 정착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이유는 바로 이름에 대중적 공명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K-Classic, 융합 시대의 브랜드 실험

 

K-Classic은 서양 클래식과 한국 전통 음악의 미학적 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 또한 ‘오페라’인가, ‘가극’인가, ‘뮤페라’인가, ‘음악극’인가 하는 장르 표기부터 통일되지 않아 소비자와 관객의 인식에 혼선을 주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브랜드는 단순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네이밍 하나가 자리잡고, 뿌리내리고, 시장과 정서에 각인되기까지는 참으로 긴 시간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름을 자리 잡지 못한 콘텐츠는 결국 유통되지 않는다. 기억되지 못하면 찾지 않고 진열대에 오르지 못한다.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는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이고 소비자층의 세대 역시 급변한다.

 

동서악회, K-율 해금 앙상블, 시대를 담은 좋은 네이밍

 

최근 불가리아 세르비아에서 성공적인 교류 음악회를 성사시킨 ‘동서악회’는 이런 점에서 네이밍의 좋은 사례다. '동서'라는 말은 세계를 가로지르는 지리적 상징성과 함께, 문화적 교류와 소통의 의미를 함축한다. ‘악회’는 음악 단체의 품격과 전통을 담는다. 때문에 동서악회는 단순한 협회 개념을 넘어, K-Classic의 정신을 담아낸 실천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협회나 학회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능과 존재감을 잃어가는 현실과 대조된다. 또 하나 최근의 일이지만 독일 학생들이 중심체가 되어 만든 K-율 이란 해금 앙상블이다. 악기 이름 조차 생소한 독일학생들이 우리 악기를 배워 연주하면서 현지의 반응이 놀랍다. 그러니까 일제 치하에서만 해도 서양악기 바이올린이 동네를 순회하는 약장사나 곡마단에서 껭껭이라 불리며 비하했던 시절에서 본다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독일에서 창단된 K-율 해금앙상블이 우리 악기 세계화에 선두 주자로 나섰다 (예술감독: 노유경) 

 

서양 수입 구조에서 수출 구조로의 패러다임이 전환

 

이제 해방이후 서양 수입 구조의 모든 것들에서 수출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고, 한류상품은 물론 한글 배우기 열풍이 뜨겁다. 이제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국내가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을 겨냥한 마케팅을 할 순서가 왔다. 급격한 변화 못지 않게 우리의 마인드를 혁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정체성을 뚜렷이 할 때 상품성은 물론 시장 경쟁력이 발생한다. 그렇다. 모든 것은 변하고, 이름도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 다만 그 진화는 철학과 실천을 함께 품을 때 비로소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브랜드를 가졌는가? 공공 브랜드 이름 아래 직공으로 일하고 있는가? 작아도 내 브랜드의 집을 갖는 것, 그 뿌듯함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K-Classic 시대의 창작과 단체는 그저 콘텐츠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이름이 가치를 만들고, 가치는 기억을 낳으며, 기억은 시장과 문화 속에 뿌리내린다. 이름 짓기는 창작의 또 다른 시작이며, 브랜드는 곧 존재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