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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아티스트 2025를 기록한다] 지나가면 붙들지 못하는 소리를 담아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기억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비전 아티스트 2025를 기록한다] 지나가면 붙들지 못하는 소리를 담아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광복 80주년 송 오브 아리랑 대구콘서트홀(광주,부산, 대구시립합창단순회 공연) 공기태 지휘자가 인사하는 모습 음악은 무대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청중은 그 열정에 감동으로 화답한다. 공연이 끝나는 순간의 환호와 울림은 예술이 가진 가장 순수한 에너지다. 그러나 그 찰나의 뜨거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남는 것은 단 한 장의 팜플렛뿐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팜플렛은 누구에게 전달하기도 어렵고, 그 감동을 온전히 재현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기록(recording)' 은 현대 예술 생태계에서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예술이 생명력을 지속하는 핵심 장치가 되었다. 특히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는 기록은 곧 검색의 기억, 디지털 자산, 공유 가능한 문화 가치가 된다. 기록된 자료는 언제든 다시 소환할 수 있고, 필요한 순간에 재사용될 수 있으며, 데이터로 축적되어 역사와 미래를 잇는 연결 고리가 된다. 무엇보다 기록은 그 순간 하지 않으면 다시 완성하기 어렵다. 공연 직후의 감정, 예술가의 표정, 음향의 울림, 관객과의 호흡 등은 시간이 지나면 복원할 수 없는 생생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기록이란 바로 예술의 시간성을 붙잡는 기술, 다시 말해 ‘사라지는 예술을 남기는 행위’다. 프랑스 철학자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기억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말은 곧, 예술이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도 미래의 가치도 희미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K-Classic은 [2025 비전 아티스트 기록 프로젝트 ]를 추진한다. 예술가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무대·목소리·철학·발자취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대한민국 음악의 미래를 디지털 아카이브에 저장하려는 목적이다. 이는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라, 예술 생태계를 다음 세대와 세계 무대로 확장시키기 위한 전략적 투자다. 결국 기록은 곧 자산이고, 자산은 문화의 생명을 연장하며, 그 생명력은 다시 K-Classic의 비전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힘이 된다. 기록은 지나간 예술을 되살리고, 현재의 예술을 증명하며, 미래의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 취약한 우리의 한계성을 벗어나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기록한다. 그리고 기록함으로써, 비전 아티스트들의 내일을 함께 만들어 간다. 강원 팍스 아라리 임준희 작곡가 한류문화대상 (2018)

예술의 새로운 노선, 생존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자생, 교류의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예술의 새로운 노선, 생존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K-Classic News 탁계석 예술비평가 회장 | 갤러리, 미술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플랫폼 시대 모든 것에는 노선이 있다 노선(路線)은 길을 뜻한다. 자동차, 지하철, 비행기, 선박까지 모든 운송 수단에는 노선이 존재한다. 정치도, 종교도, 사회도 모두 각자의 노선을 가지고 움직인다. 예술 역시 장르의 노선이 있고, 마케팅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전략이라는 노선이 있다. 이 노선은 곧 정체성과 철학이며, 온전한 목표이자 생존의 근간이다. 드론과 AI가 흔드는 기존의 질서 그림을 사고파는 갤러리와 작품을 감상하는 미술관은 같은 예술 공간이라도 노선과 역할이 달랐다. 그러나 이제 그 경계가 드론의 등장, 온라인 전시, 그리고 AI 기반의 큐레이션 시스템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기존의 권위적 질서와 계급 구조는 흔들리고, 패러다임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미술품 유통 또한 마찬가지다. 입지가 좋은 백화점이나 기존의 전통 상권에서 거래되던 시대는 과거가 되고 있다. 지금은 당근마켓, SNS, 개인 직거래, 온라인 플랫폼, 이미지 기반 경매 서비스까지, 유통의 노선 자체가 해체되고 다시 짜이고 있다. 예술 생태계가 AI 혁신과 디지털 유통 흐름 속에서 변곡점을 맞이한 것이다. 알빈 토플러는 미래의 변화 구조를 이렇게 정의했다. “미래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술 역시 더 이상 기존 방식만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노선을 수정하지 않으면 흐름은 곧 생존의 벽이 된다. 각자도생의 시대,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과 생산성 시스템 환경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기존 구조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의 노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노선이 시장의 지속성과 생산성을 견인하지 못한다면, 예술도 생존할 수 없다. 지원금에 의존한 예술은 한철 잎처럼 쉽게 시들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때문에 예술의 생명력은 시장성이 아니라, 시장 지속성이다. 지속성이란 소비가 반복되고, 재평가되며, 새로운 수요층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역동성이다. 이 역동성이 없다면 예술은 외부 자원에 기대어 연명하는 장르에 지나지 않는다. 지원에서 교류로, 예술 노선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예술은 정부 지원 정책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원은 언제든 축소될 수도 있고, 정책의 흐름에 따라 일시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예술 상호 교류주의, 즉 예술과 예술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차 소비, 공동 창작, 상호 촉발 구조다. 그래서 누구나 필요한 것이 상대를 설득할 축적된 캐리어다. 데이터 없는 주장은 허공의 메아리다. 관객 분석, 소비 패턴, SNS 확산 구조, 온라인 거래 지수, 해외 컬렉터의 반응 같은 실증적 근거가 있어야 노선은 설득력을 가진다. 이를 기반으로 시장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유통 구조 속에서 자생력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예술은 보존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계망을 넓히고 변화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시장이란 토양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영양분을 확보해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말했다. “모든 창조 행위는 먼저 파괴하는 행위다.” 기존 틀, 기존 미학, 기존 노선을 파괴해야만 새로운 질서와 미학이 탄생한다. AI는 바로 그 파괴의 시작점이며, 예술을 다시 정의하는 거대한 촉매다. 예술은 더 이상 ‘작품 생산’이 아니다 AI 시대의 예술 생태계는 단순히 작품을 제작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예술은 작품을 둘러싼 관계를 생산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작품–창작자–관객–시장–기술–스토리–데이터가 얽히며 새로운 소비자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예술의 권위주의는 이미 퇴장했다.이제는 실용과 생존의 시대다. 그림 한 점, 공연 한 편, 음악 한 곡이 시대의 정서와 언어, 그리고 기술을 만나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한다. 예술가가 AI를 활용하고, 관객의 데이터를 분석하며,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관계망을 구축하는 시대가 왔다. 예술의 노선은 단 하나다.스스로 생존 가능한 자생력 그리고 교류와 공감이 만드는 미래 수요층의 창출이 두 가지를 갖춘 예술만이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된다. 예술은 시대의 풍경을 반영하고, 시대의 질문을 증언한다. 노선이란 결국 예술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누구와 함께 생태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디지털 유통, AI 창작, 글로벌 소통, 교류 시장, 그리고 실증 데이터에 근거한 전략. 이 모든 것을 결합한 노선만이 예술을 생존의 장르가 아니라 미래 문명의 동력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2025.2 신사동 정 갤러리- 대만 작가 초대전 음악가들의 자생 프로젝트 제 2회 마스터피스 페스티벌 K 가곡 콘서트

[탁계석 오늘의 시] 눈물

손영미 시인의 시집 '자클린의 눈물'에 영감을 받아 쓴 시

[탁계석 오늘의 시] 눈물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눈물 나는 몰랐네 내 안에 있는 너를 몰랐네 눈 감은듯 잠자는듯 그 한 방울의 촉촉한 너를 비온 후 무지개를 보았을 때 저것봐, 저것봐, 내 몸을 흔들던 너 갈대처럼 아파도 울지 않으려 입술 깨물던 착한 이슬의 눈동자 너 살아 가노라면 통곡의 밤도, 벅찬 기쁨의 날도 있으리 그때마다 가슴속 깊은 샘이 되어 쿵쿵, 등을 두드려주던 너 거짓없는 동행자여 진실의 기도문이여 들풀을 스치는 바람처럼 내 안에서 흐느끼며 나를 깨우는 새벽의 노래 불러도 마르지 않을 내 가슴의 노래여, 영혼의 노래여~ 〈눈물〉 詩評 내면의 발견 — “눈물”의 실체화 시의 첫머리에서 화자는 ‘나는 몰랐네 / 내 안에 있는 너를 몰랐네’라고 고백합니다. 이미 인간 내면에 존재하면서도 오래도록 간과되거나 외면받았던 정서를, ‘너’라는 인격적 대상화로 불러내며 시가 시작됩니다. 이 ‘너’는 단순한 생리적 분비물로서의 눈물이 아니라, 감정의 원형(Archetype) 혹은 인간의 영적 감수성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눈물은 ‘잠자는 듯’, ‘한 방울의 촉촉한 너’ 라는 표현으로 은밀하고도 생명성을 지닌 살아있는 개체로 묘사됩니다. 이는 파스칼이 말한 “인간 내면의 깊은 우물”을 연상시키며, 눈물이 내면의 각성 장치이자 정서의 원형임을 은유합니다. 자연 이미지와의 대응 — 눈물과 바람, 비, 무지개의 상관 ‘비온 후 무지개’, ‘갈대’, ‘이슬’, ‘들풀’, ‘바람’ 등 자연적 소재들이 눈물과 공명하며 전체 시의 시적 밀도를 구성합니다. 비와 눈물: 정화(淨化)의 상징 무지개: 고난 후 찾아오는 희망 갈대: 고통 속 흔들리는 인간 존재 이슬: 작고 맑은 진실의 결정 바람: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내면의 소리 시인은 눈물을 자연의 생명 순환 속 한 요소로 배치합니다. 그리하여 눈물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삶 전체를 통과하는 보편적 증명이 됩니다. 고통을 견딘 존재로서의 눈물 “갈대처럼 아파도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던 착한 이슬의 눈동자 너” 이 대목은 인간이 슬픔을 억누르며 살아온 시간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눈물은 억압된 감정의 순수함, 혹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의지의 흔적”으로 재정의됩니다. '착한 이슬의 눈동자’라는 표현은 눈물이 가진 도덕성과 영혼의 정결함을 암시합니다. 고통 속에서조차 부정과 왜곡으로 흐르지 않는 진정성의 결정체가 여기 있습니다. 생의 순간마다 드러나는 진실의 친구 “살아가노라면 통곡의 밤도, 벅찬 기쁨의 날도 있으리” 눈물은 기쁨과 슬픔, 절망과 환희의 양극을 모두 통과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가슴속 깊은 샘’이라는 표현은눈물이 단절되지 않는 영적인 수원이며,삶의 부침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을 일으켜 세운 원천임을 드러냅니다.그러니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결국 인간을 버티게 하는 강한 힘입니다. 눈물의 윤리적 성격 — ‘진실’과 ‘기도문’ “거짓없는 동행자여, 진실의 기도문이여”이 구절이 시의 미학적 핵심입니다.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배출이 아니라, 내면에서 울리는 윤리적 언어입니다. 거짓이 배제된 감정의 증언 기도처럼 순수하고 간절한 영혼의 고백 인간이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 눈물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기 존재의 깊은 근원을 마주합니다. 새벽의 은유 — 눈물과 각성 “내 안에서 흐느끼며 나를 깨우는 새벽의 노래” 새벽은 밤을 넘은 뒤의 깨달음, 희망의 서광, 새로움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이 새벽을 부르는 것은 눈물입니다. 고통과 절망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숙명적인 깨달음, 그 순간이 눈물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결말 — 영혼의 노래로 남은 눈물 “불러도 마르지 않을 내 영혼의 노래여~” 마지막 문장은 시 전체를 구현하는 아름다운 결론입니다. 눈물은 더 이상 비극의 흔적이 아니라 영혼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존재의 음악입니다. 여기서 눈물은 생의 증언,영혼의 진동,인간됨의 최종 가치로 승화됩니다. 눈물은 사라지지 않는 노래이고, 그 노래는 우리 삶을 계속 움직이는 힘입니다. <종합 평가> 이 시는 눈물을 '약함'이 아닌 존재의 정직함과 생의 증거로 바라보는 작품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서정적이면서도 간결한 언어를 견지하고, 내용적으로는 자연 이미지와 인간의 영혼을 정교하게 병치하여 매우 높은 상징적 밀도를 보여줍니다. 특히 인칭 전환 없이 ‘너’라는 존재를 시종 일관하게 눈물에 부여함으로써 눈물이 지닌 '인격적 정령(Spirit)'의 느낌을 형성합니다.고통과 기쁨을 모두 지나온 눈물은 결국 인간의 가장 순수한 ‘본심(本心)’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눈물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이 작품은 그 사실을 조용하면서도 단단하게 선언하고 있는 시입니다.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 신간 시집’ 『자클린의 눈물』 손영미 작가 인터뷰

자클린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 오늘 현대인의 상실과 소외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 신간 시집’ 『자클린의 눈물』 손영미 작가 인터뷰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자클린의 눈물』을 출간하셨는데, 몇 번째 시집인가요? 첫 번째 시집입니다. 이미 여러 권을 내신 줄 알았어요. 아 ,네~ 대학에서는 극작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소설과 드라마를 공부했습니다. 희곡과 소설을 쓰고, 칼럼과 음악 감상집을 집필하며 장르를 넘나들다 보니 , 많은 분들이 저를 전문 시인으로 알고 계시더군요. 시 공부는 10년 넘게 했지만, 정작 시집은 이제 첫 권을 냈습니다. 시, 등단도 2021년 이구요. 첫 시집의 구성에 대하여 첫 시집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총 , 4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1부는 <사랑의 비유법>사랑에 관한 시선 2부는 <네일아트 >창작과 예술가로 사는 고충 시선, 3부는 〈노래가 자살한다면〉팬데믹의 고립과 정서적 단절, 4부는 <고고학적인 하루>로 고향 어머니·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로 구성했습니다. 시집을 만드는 과정 첫 시집인 만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었겠네요. 그렇죠. 코로나 시기에 사회 전체가 멈춰선 것처럼 보였던 그 시간에, 저는 오히려 200여 편의 시를 정리하고 다듬었습니다. 극작이나 소설을 쓰다가도 ‘시의 언어’로만 도달할 수 있는 문장이 오곤 했어요. 그때마다 메모하며 모아두었죠. 그 시기 작품을 여러 문예단체에 응모했더니 운 좋게도 3~4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시 관련 수업을 들으며 제 나이 50이 되면 시 장르를 하나 더 뚫어보자 했는데 늦어졌다 생각했는데 때마침 코로나로 시를 정리하고 다시 교수님들께 보여드리니 “소설보다 시에 더 큰 재능이 있다, 이제는 시를 더 해봐라”는 격려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간에 시를 묶어보니 제 마음에 드는 시는 40편 정도뿐이더군요. 더구나 문예지 수상작 투고 작 빼고나니 더 아쉽고요. 그래서 좀 더 숙성시키고, 정리하고 신작들을 엮어 2025가을 100여편을 만들어 다시 또 그중 출판사와 논의후 50여편을 선정한 후에야 시집을 내게 되었지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힘 극작,소설·에세이·시…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저도 설명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시는 어느 순간 ‘받아지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신을 받는다고도 하잖아요. 저는 시가 제게 먼저 와서 말을 걸어온 경험이 있어요. 또 제 삶에도 큰 사건들이 있었죠. 여동생의 죽음, 또 어머니의 노환과 치매와 요양원에 입소후 지내신 날들… 특히 어머니가 요양원 입소후 점점 생명이 소멸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들이었습니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가족이 죽어가는 시간을 지켜보는 일이더군요. 그 경계의 시간을 지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시선이 깊어졌습니다. 그 경험이 언어의 밀도로 스며들었고, 시는 그 무게를 받아낼 수 있는 형식이었어요. 문학과 음악의 미학적 공명 문학뿐 아니라 음악과도 깊이 연결되어 계십니다. 그 상호 예술의 경험이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글로 버티고, 음악으로 숨을 쉬었다고 해야 할까요. 특히 시집의 대표작 <자클린의 눈물〉은프랑스 작곡가 오펜바흐가 영국의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기리며 작곡한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열린 시학 등단작이기도 하는데요. 그녀의 병, 사랑, 배신, 존엄, 침묵 등… 그 음악 속으로 제가 걸어 들어가 그녀의 영혼과 함께 울게 됐어요. 문학이 구조와 사유의 예술이라면, 음악은 영혼의 호흡이죠. 두 예술은 제 안에서 늘 서로를 부축하며 성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말합니다. “예술가는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라고 문학·음악·연극· 오페라 시등이 네 갈래는 결국 한 나무의 다른 가지라고 생각해요.소설도… 가곡 비평과 창작의 시너지 오랫동안 ‘가곡 칼럼’을 연재하시며 성악가들과도 만나셨죠? 네.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며 우리 소리 및 구전민요를 연구하며 우리 민족의 정서와 맞닿은 우리 가곡 시와 노래에 관심 많았어요. 그 가곡들이 변하여 아트팝으로 현대 가곡으로 이어지면서 멜로디가 다채로워지고 리듬도 빨라짐이 흥미로웠죠. 그래서 누군가는 홍보하고 전도하며 보급이 필요한거 같아 제가 적극 나섰지요. 성악도 배우며 수련하면서요. 하여 작곡가·연주자·시인·애호가들을 만나며 배운 것이 많아요. 어떤 곡을 해설하기 위해 , 100번씩 듣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시의 모티브가 자연스럽게 생겨나죠. 이 작업은 제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문학과 음악을 잇는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시집 표지와 ‘존엄’의 미학 시집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청동빛의 침묵과 시간의 냄새가 나요. 대표작 〈자클린의 눈물〉의 시대적 배경이 19세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존엄’을 담고 싶었습니다. 자클린은 병으로 뼈와 척수가 녹아가며 눈물이 고여도 떨어지지 않는 병을 앓았습니다. 사랑하던 이는 떠났고, 연주도 할 수 없었죠. 그럼에도 그녀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연주를 반복해 들으며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표지의 청동빛 얼굴은 고통과 사랑, 배신과 기억을 품고 마지막까지 ‘침묵의 존엄’을 지킨 성자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음악과 시가 주는 치유 고통과 병, 고독, 단절…. 음악과 문학은 이런 인간의 상태를 어떻게 위로한다고 보십니까? 네, 제 시중 ‘노래가 자살한다면’ 에서도 거론 하였듯이 문학은 깊은 사유로 언어로 우리를 붙들고, 음악은 그 사유 가장 깊은 곳까지 직접적으로 스며들며 노래하게 합니다. 세상이 점점 폭력적이고, 정보는 넘치고, 인간은 기계처럼 피폐해져 가죠. 그럴 때 시는 마음의 구조를 세우고,우리의 노래는 음악은 영혼의 방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시와 음악이 없는 세상은 철판 앞에 선 로봇의 세계와도 같아요. 예술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남게 하는 힘입니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지하철 스크린에 시가 붙어 있어도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너무 빠른 편리함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텍스트를 읽는 힘이 사라지고 있죠. 두 줄 이상이면 피로하고, 한 문단만 돼도 넘겨버립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편리함은 결국 싫증을 낳고, 인간은 다시 책의 방식, 사유의 방식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고전이 언제나 돌아오는 것처럼요. 시를 읽는 행위는 마음의 생태계를 가꾸는 작업이니까요. 자클린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울지 않아도 마음속에서는 울고 있습니다. 자클린의 눈물도 그런 눈물 아닐까요? 맞습니다. “눈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빛을 향한 시작이다.”라 봅니다. 눈물은 한 사람의 아픔을 씻어내는 의식이며,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다리입니다. 자클린의 눈물은 곧 당신의 눈물이고, 나의 눈물입니다. 마무리 문학을 읽는 힘, 마음의 뿌리를 다시 세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운의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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