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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Arirang Next Song of Arirang K-Classic

광화문 아리랑을 보는 새로운 시선

BTS Arirang Next Song of Arirang K-Classic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BTS(방탄소년단)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며 K-팝 한류의 기폭제가 되었고, 오늘의 문화적 주역이 된 것은 이미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이번에 광화문을 배경으로 펼쳐질 공연(3월 21일)은 단순한 콘서트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벌써부터 수십만 명의 관객과 해외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광화문 일대는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고조되고 있다. 이번 공연의 핵심 테마가 ‘아리랑’이라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우리에게 아리랑은 공기처럼, 물처럼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무덤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 속에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 공동체의 기억이 응축되어 있다. BTS가 이 아리랑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해 세계 무대에 올릴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큰 관심과 궁금증을 갖는 이유다. 아리랑은 한 민족의 얼이자 정서의 표상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집단 감정이 응축된 문화적 DNA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지역마다 다른 선율로 존재하면서도 같은 정서를 공유한다. 그래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그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특히 올해는 미국 선교사이자 한국학자였던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가 아리랑을 서양 음악 기보법으로 채록해 세계에 소개한 지 1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한국인은 망할지라도 아리랑은 남을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이 노래의 가치를 일찍이 발견했다. BTS가 광화문에서 아리랑을 노래하는 장면은, 어쩌면 130년 전 헐버트 박사가 예견했던 그 순간의 또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K-Classic의 ‘송 오브 아리랑’ 개척 K-Classic 역시 아리랑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2013년 국립합창단 위촉으로 임준희 작곡, 탁계석 대본의 칸타타 「Song of Arirang」을 무대에 올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작품은 이후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과 함께 마드리드 마누멘탈 극장 공연을 비롯해 캐나다, 미국,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었고 국내에서도 끊임없이 재공연되면서 아리랑의 새로운 예술적 확장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K-Classic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병직 지휘자와 함께 ‘아리랑 코러스’ 네트워크를 조직해 전국 6개 합창단을 결성하며 아리랑을 합창 문화로 확산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은 무덤덤해진 전통의 일상을 새 얼굴로 만나게 한다 전통은 그대로 두면 박물관 속 유물이 되기 쉽다. 예술의 역할은 바로 무덤덤해진 전통의 일상을 새로운 얼굴로 다시 만나게 하는 것이다. BTS가 아리랑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사건이다. K-팝이라는 대중음악 장르가 전통의 원형과 만나면서 새로운 문화적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한 장르에 묶일 노래가 아니다. 민요, 합창, 오페라, 대중음악, 무용, 영상 등 다양한 장르가 함께 변주할 때 비로소 세계적인 문화 자산으로 살아 움직인다. 한 장르 쏠림을 넘어서는 문화 생태계 그러나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여전히 서구 클래식 레퍼토리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고유의 이야기와 정서를 담은 작품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K-팝의 성공은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문화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K-팝, K-Classic, 전통예술, 창작오페라 등 다양한 층위가 함께 호흡해야 한다. 한쪽으로만 쏠리는 문화 구조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BTS의 아리랑이 대중의 문을 열어준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K-Classic 같은 장르가 미래의 고전이 될 작품을 축적해야 한다. 2017년 9월2일 호주 퀸즈랜드 퍼포밍아트센터(Queensland Performing Arts Centre) 사대주의를 넘어 문화 주권으로 아리랑은 때때로 주변 국가의 문화로 오해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이른바 동북공정의 논리 속에서 우리 문화의 기원을 흔드는 주장도 등장한다. 그러나 문화는 주장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예술로 살아 움직일 때 지켜진다. BTS가 세계 무대에서 아리랑을 노래하고, K-Classic이 아리랑 칸타타를 만들고, 지역마다 새로운 아리랑 변주가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문화적 응답이다. 아리랑의 새로운 시대 때문에 이번 광화문에서 울려 퍼질 BTS의 아리랑은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K-팝과 K-Classic,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하나의 문화적 변곡점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태풍 같은 관객의 열광도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잔잔하지만 오래 지속될 미래의 고전, 즉 K-Classic의 축적 역시 필요하다. 아리랑은 이미 세계의 노래가 되었지만, 그 노래의 중심에는 여전히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 그리고 창조적 예술 정신이 있어야 한다. 광화문에서 시작되는 이 새로운 아리랑의 물결이 K-컬처의 다음 시대를 여는 서곡이 되기를 기대한다.

탁계석 K-Classic 회장 “광화문 600년 서사 노래로 피어난다 "

BTS 광화문 광장 기폭제가 되어 K르네상스 발상지로 승화해야

탁계석 K-Classic 회장 “광화문 600년 서사 노래로 피어난다 "

K-Classic News 김은정 국장 | 대담: 김은정 국장 광화문은 대한민국 역사와 정치, 문화의 중심이다. 그러나 의외로 광화문 자체를 주제로 한 노래는 거의 없었다. K-Classic 회장 탁계석은 이 상징적 공간을 노래로 풀어낸 「오너라 광화문」과 「열어라 광화문(광화문 600주년 찬가)」를 통해 새로운 시민 축제가요를 제안하고 있다. 세종과 한글 문명, 그리고 현대 K-컬처를 연결하는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광화문을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광화문은 조선의 정치 중심이었고 지금도 대한민국의 상징 광장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광화문을 직접 노래한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타령」 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궁궐 풍류에 가까웠지 국가 상징 공간을 노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광화문을 대한민국의 심장, 세종과 한글 문명의 출발점으로 보고 시민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오너라 광화문」은 그런 의미에서 광화문을 노래한 최초의 현대 시민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이라는 이름 자체에도 깊은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광화문이라는 이름 속에 이미 하나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세종 8년, 경복궁 정문은 ‘오문’이라는 이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 이름은 『서경』의 구절 “광천하 화급사해(光天下 化及四海)”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은 덕의 빛이 천하를 비추고 그 교화가 온 세상에 미친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세종에게서 ‘빛’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백성을 무지의 어둠에서 건져내는 지혜의 빛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을 만든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습니다. 저는 이 점에서 광화문 자체가 이미 하나의 문명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래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핵심은 한글 문명입니다.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반포 우리 한글 문명의 빛 되어 온누리 밝히네.” 이 노래는 단순히 광화문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 – 훈민정음 – 한글 – 광화문을 하나의 문명 서사로 연결합니다. 광화문은 왕궁의 문이지만 동시에 문명으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노래에서 ‘춤을 추자’라는 대목이 반복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광화문은 역사적으로 왕의 길이었고 정치의 공간이었으며 때로는 시위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시민이 춤추는 문화 광장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춤을 추자 춤을 춰 덩실덩실 어깨 춤을 춰” 이 부분은 강강술래나 농악처럼 공동체를 부르는 민속적 장단입니다.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를 상상한 것이죠. 광화문 600년이라는 역사적 상징도 강조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이 노래는 세 가지 시간을 함께 기념합니다. 광화문 명명 600년 훈민정음 반포 580년 한글날 제정 100주년 이 세 시간을 합치면 1280년의 역사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언어 문명의 선언으로 보고 있습니다. BTS와 광화문을 연결한 가사도 눈에 띕니다 그렇습니다. 세종의 한글에서 시작된 문화가 오늘날 K-Pop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종 → 한글 문명 BTS → K-Pop 광화문 → 대한민국 중심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연결되면 새로운 문화 서사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것이 K-컬처 르네상스의 상징 장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 노래를 단순한 곡으로 끝내지 않고 K-Classic Masterpiece 프로젝트로 확장하려 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 합창 군악 퍼레이드 청년 스타코러스 세계 시민 참여 이런 형식으로 세계 시민의 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광화문은 더 이상 궁궐의 문이 아니라 문명으로 들어가는 세계의 광장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한 문장으로 평가한다면요 「오너라 광화문」과 「열어라 광화문」은광화문을 역사의 문에서 문명의 광장으로 바꾸는 시민 축제가요이며, 세종과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K-Classic 문명 찬가입니다.역사적 명소나 기념일을 음악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작품이 된 사례도 많습니다. 스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해 만들어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핀란드 독립 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나폴레옹 전쟁 승리를 기념한 차이콥스키의 「1812 서곡」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역사와 문명을 음악으로 승화한 작품들이 세계 명곡이 된 것을 보면, 광화문 600년과 한글 문명을 노래하는 작업 역시 충분히 세계적 문화 콘텐츠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시민가요나 합창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관현악곡, 실내악, 교향곡, 칸타타 등으로도 확장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이미 아홉 편의 칸타타 작품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광화문 서사를 더 큰 K-Classic 레퍼토리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오늘의 시 ] 이사

[오늘의 시 ] 이사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이사 탁계석 핸드폰에 충전 밥을 단단히 먹이고 너도 함께 가자 너마저 연락이 끊기면 세상은 금세 혼돈이 되니까 짐을 싸고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데 멀리 바다 건너 대포 소리가 울려온다 예고 없이 벼락같이 길 떠나는 난민들 보따리 챙길 틈도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줄달음친다 포탄 사이로 공포와 배고픔이 몰려오고 눈물비가 쏟아진다 준비된 이사도 있지만 준비 없이 떠나는 것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 옮기고 또 옮기고 얼마를 더 옮겨야 우리는 당도하는가 마지막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가면 어차피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갈 텐데 욕망의 바다 위에 작은 섬들이 떠 있다 끝없이 쌓아 올린 쓰레기 산 같은 욕망 그 깊이를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오늘 또 이사를 하면 새 동네의 까치가 나를 반겨줄까 살면서 몇 번이나 떠나고 옮겼는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떠나고 또 떠나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는 일은 잠시 머무는 바람의 주소 언젠가 마지막 짐을 내려놓는 날 우리는 가장 가벼운 몸으로 세상 밖으로 이사를 간다 시평 떠남의 문명, 존재의 마지막 이사 탁계석의 시 「이사」는 일상적인 ‘이사’라는 행위를 통해 현대 문명의 불안, 전쟁의 비극,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함께 성찰하는 철학적 시다. 이 작품에서 이사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인간 삶 전체를 관통하는 존재의 이동으로 확장된다. 시의 첫 장면은 매우 현대적이다. “핸드폰에 / 충전 밥을 단단히 먹이고 / 너도 함께 가자” 여기서 핸드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현대 인간의 생존 장치다. 연락이 끊기면 세상이 혼돈이 된다는 표현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얼마나 관계와 연결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 작은 장면을 통해 현대 문명의 취약한 연결 구조를 드러낸다. 그러나 시는 곧 개인적 일상에서 역사적 비극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멀리 바다 건너 / 대포 소리가 울려온다 예고 없이 벼락같이 / 길 떠나는 난민들” 이 순간 이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전쟁 속 난민들의 이동은 생존을 위한 강제된 떠남이다. 준비된 이사와 준비 없는 이사의 대비는 인간 문명의 안정과 붕괴 사이의 경계를 보여준다. 시인은 난민들의 공포와 배고픔, 눈물비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환기시킨다. 시의 중심부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옮기고 / 또 옮기고 얼마를 더 옮겨야 / 우리는 당도하는가” 여기서 ‘당도’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평생 이동하지만 정작 어디에 도착하는지 알지 못한다. 집을 옮기고, 직장을 옮기고, 삶의 자리를 바꾸며 살아가지만 최종 목적지는 늘 미지의 영역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시인은 인간 욕망의 구조를 드러낸다. “욕망의 바다 위에 / 작은 섬들이 떠 있다 끝없이 쌓아 올린 / 쓰레기 산 같은 욕망” 이 이미지는 현대 문명의 과잉을 강하게 비판한다. 인간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끊임없이 쌓아 올리지만, 결국 그것은 쓰레기 산처럼 남는다. 욕망은 섬처럼 고립된 채 바다 위에 떠 있고, 그 깊이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시는 문명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다시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사는 일은 / 잠시 머무는 / 바람의 주소” 이 구절은 시 전체의 핵심 사유다. 인간의 삶은 영구한 거주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바람 같은 체류일 뿐이다. 결국 마지막 순간, “우리는 / 가장 가벼운 몸으로 / 세상 밖으로 / 이사를 간다” 라는 결말은 죽음을 마지막 이사로 바라보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평생 축적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가벼운 몸으로 떠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욕망에서 벗어난다. 탁계석의 「이사」는 일상의 소재를 통해 전쟁, 문명, 욕망,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연결하는 시다. 이 시에서 이사는 단순한 삶의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여정이며, 인간이 끝내 도달해야 할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결국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이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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