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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교수의 詩 치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K-Classic News 이백화기자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白石이 27살이던 1938년에 발표한 시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시詩 그야말로 K-Classic 입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압박이 점차 수위를 높여갈 때였습니다. 현실을 초월한 이상과 사랑에 대한 의지 그리고 생의 소망을 실은 노래가 오늘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이국적 정취를 담고 토속적 세계에서 벗어난 노마드Nomad 의식과 모더니즘Modernism 시풍으로 그의 후기 시에 속합니다. 

 

백석(1912~1995, 본명 백기행 白夔行)은 워낙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무척 심했습니다. 그는 당대 셀럽celebrity에 패셔니스타fashionista로, 물질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모던보이의 대명사로 워낙 잘 꾸미고 다녔습니다. 영어와 러시아어에도 능했고 시詩 잘 쓰고 핸섬한 모던보이 백석 주변엔 늘 여인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도 통영 처녀 ‘란蘭 박경련’과 기생 ‘자야 김영한’의 인연은 특별해 보입니다. 

 

누런 미농지 봉투 속에든 이 시를 백석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전하는 자야 여사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고 유언했고, 그리 되었습니다. 한 여인의 이름이 자야子夜와 진향眞香과 나타샤Natasha와 길상화吉祥華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시인 백석을 사랑했고, 평생 모은 1,000억대가 넘는 돈을 길상사에 기증합니다. 생사를 알 길 없이 남과 북에 헤어져 살면서도 백석의 생일날이 돌아오면 금식하며 그를 기렸다는 한 여인이 첫눈 속에 돌아간 흔적이 아득합니다.

 

백석의 여인관계를 표현이라도 하듯이 상당히 다양한 여성들이 자기가 저 시의 주인공인 ‘나타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백석이 러시아 문학을 동경해 러시아 문학 번역에 남긴 상당한 족적을 보았을 때 실존 인물이 아닌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등장인물인 ‘나타샤 로스토바’를 모델로 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흰 눈과 결합해 순수한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흰 당나귀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당나귀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시적 화자의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인간 모두의 마음속에 근원적으로 내재하는 사랑에의 환상적인 꿈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서정시의 한 진실한 풍경입니다. 

 

원종섭 Won Jong-Sup            

시인, 제주대 교수
제주대 영미시전공 교육학박사
WVC in Washington TESOL Edu
NAPT 미국시치료학회이사, 시치료전문가
한국시치료연구소 제주지소장
중학영어1, 고등학교관광영어교과서집필
사)제주마을문화진흥원 연구소장
한국UNESCO연맹 문화교육전문위원

한국예술비평가협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