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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경 리뷰] 전승과 도약: 서공철 양금산조 50주년과 한국양금악회 창단연주회

양금, 시대를 관통하는 음색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리뷰]  한국양금악회 창단연주회 

2025년 3월 2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전승과 도약: 서공철 양금산조 50주년과 한국양금악회 창단연주회

 

2025년 3월 2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서공철 양금산조 50주년 기념 및 한국양금악회 창단연주회는 전통의 보존과 창작의 진화를 함께 꾀하는 의미 깊은 자리였다. 이번 연주회는 “전승과 도약”이라는 부제를 내세우며, 한 세대에 걸쳐 계승되어 온 서공철류 양금산조의 예술성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동시에,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여는 출발점으로써 주목할 만하다.

 

 

한국양금악회는 “전통 양금의 전승과 창작 양금의 도약”을 기치로 내건 단체로, 전통 양금 곡의 체계적인 연구와 무대 발표, 그리고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한 창작곡 발표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양금은 아직 전공자와 전문 연주자가 극소수인 악기이지만, 최근 빠르게 확장되는 음악적 영역 속에서 이번 연주회를 통해 양금의 전통적 기량을 다지고 현대음악과의 접점을 넓혀 궁극적으로 ‘양금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에 한국양금악회는 전통 음악뿐 아니라 현대 창작곡의 원활한 연주를 위한 연주자 육성, 악기 개발 등 기반 마련에도 힘쓸 계획이다. 이번 무대는 특히 서공철 명인의 양금산조 발표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명인의 예술세계를 기리며 양금산조의 현대적 재해석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작곡가 박영란과의 협업을 통해 위촉 초연된 신작은, 서공철류 산조의 기법과 미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어를 탐색한 시도로 주목받았다. 이 작품의 실현을 위해 양금산조 복원에 기여한 강정숙, 이지영 두 연주자의 노고도 빛났다. 양금의 전통적 기량을 공고히 하며, 동시에 현대음악과의 접점을 넓혀 궁극적으로는 ‘양금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예술적 비전이 번득였다.

 

양금(洋琴)은 한국 전통 현악기 중에서도 유일하게 쇠줄(금속 현)을 사용하는 타현악기로, 외래 기원 악기이지만, 오랜 세월 한국 음악 속에서 독자적으로 정착해 전통악기의 반열에 오른 사례로 주목된다. 그 유입 시점은 정확히 문헌으로 특정되기 어렵지만, 대체로 조선 후기에 중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1770년 편찬)’에 “양금(洋琴)”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며, 이를 통해 18세기 후반에는 이미 한국 내에서 인지된 악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양금은 서양의 덜시머(dulcimer), 중국의 양친(揚琴, yangqin)과 유사한 구조로, 이들과 같은 계열의 악기로 분류되지만, 한국 양금은 재료, 조율, 연주법에서 다른 양금 문화권과는 차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오랫동안 반주 악기로만 국한되었던 양금의 음악적 기능은, 1970년대 서공철 명인의 ‘양금산조’ 창작을 계기로 독주 악기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고, 그 후 전통과 창작양금을 잇는 여러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1부: 전승 – 가락의 기억, 쇠줄의 온기]

한국양금악회 창단연주회의 전반부는 “전승”이라는 제목 아래, 양금의 정체성과 뿌리를 되새기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특히 무대는 양금의 독주와 병주를 중심으로, 서공철류 양금산조와 서공철류 산조병주로 구성되어 전통의 맥을 고스란히 계승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무대는 단순한 복원이나 재현이 아닌, 가락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현재적 전승의형태를 선보였다.

 

첫 번째 곡은 서공철 명인의 릴테이프를 바탕으로 복원된 서공철류 양금산조로, 무대에는 13명의 양금 연주자가 함께 올랐고, 장구에 김청만이 함께해 장단의 흐름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이 곡은 단순한 유파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각 연주자가 서공철 가락의 구성적 특성과 미감을 체화해 낸 합주 형식의 전승으로 구성되었다. 가락은 유기적이고 구성력 있게 펼쳐졌고, 선율사이의 연결 또한 명확했다. 특히 귀에 띄는 점은 양금의 소리다. 쇠줄로 만들어진 현을 타격해 내는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음색은 차갑다기보다는 따듯하게 열기를 머금은 금속의 울림에 가까웠다. 그 소리에서 마치 반쯤 따뜻해진 철의 엘라스틱과, 가능성을 품은 공간의 역동성을 들렸다. 쇠의 날카로움 대신, 기억과 가능성을 품은 물성의 전율이 전해졌다. 다른 온도가 느껴졌다. 

 

두 번째 곡인 서공철류 산조병주는 가야금 이지영, 양금 김경희, 장구 김청만이 참여해, 산조 가락을 중심으로 한 밀도 있는 삼중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특히 이지영의 가야금은 단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산조의 맛을 품고 있었고, 김경희의 양금은 그에 응답하며 기존 병주에서는 듣기 힘든 재료 간 상호작용의 긴장감과 유희성을 만들어냈다. 가야금의 명주실과 양금의 철현이 주고받으며 음색적 대비를 이루는 순간은, 마치 서로 다른 성격의 친구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다. 산조의 본질인 즉흥성과 흐름의 유기성이 여전히 살아있되, 전혀 다른 두 재료의 음색이 충돌이 아닌 유쾌한 공존으로 이어졌다. 그 순간 양금은 더 이상 반주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 안에서 새롭게 중심을 차지한 악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승”은 단지 과거의 기억을 답습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서공철 명인이 남긴 가락의 원형을 충실히 복원하는 동시에, 이를 살아있는 음악으로 호흡하게 만든 지금의 예술적 태도야말로 전승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1부에서 경험한 13명의 연주자가 쇠줄 위에 다시 올린 그 ‘기억된 가락’은, 오늘 우리에게 따듯한 울림과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전해주었다.

 

 

[2부: 도약 – 새로운 감각, 새로운 언어]

연주의 후반부, “도약”이라는 주제 아래 구성된 프로그램은 양금이라는 악기의 확장 가능성과 현대적 재해석을 탐색하는 무대였다. 특히 두 작품은 단순한 ‘산조의 재현’을 넘어, 양금이 어떻게 시대를 건너 새로운 언어를 가질 수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첫 번째 작품은 서공철류 양금산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트리오 버전으로, 양금 백승희, 김태은, 정난희와 장구 김청만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 곡은 전통 산조에서 가져온 가락을 바탕으로 하되, 가야금 산조 가락 중 양금의 선율이 돋보일 수 있는 부분을 선별해 구성한 산조로 소개되었다. 산조의 기본적 형식 위에 새로운 주법과 음향적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전통과 현대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음악적 실험이 이루어졌다. 실로폰을 연상시키는 듯한 금속성 타격음이 간간히 들리며, 전체적으로 음색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역할을 했고, 기존의 양금산조보다 가락의 구성과 구조가 더욱 단단하게 짜여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눈에 띈 점은 새로운 주법의 도입이었다. 두 손을 번갈아 쓰면서, 한 손으로는 진동을 유도하거나 멈추는 바이브레이션 테크닉은 양금의 물성 자체를 새롭게 해석하게 만든 부분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연주 기술이아니라, 양금이라는 악기를 표현의 악기로 탈바꿈시키는 구체적 실천이었다.

 

마지막 무대로는 작곡가 박영란의 위촉 초연곡 「비상: 지속 가능한 미래」가 이어졌다. 이 곡은 양금, 25현 가야금, 타악기라는 구성으로 무대를 색채화했고, 도입부부터 진양조의 대진(對陣) 구조를 빠른 템포로 해체하며 강렬한 에너지로 출발했다. 음악은 점차 고조되며 양금이 부서질 듯 격렬한 파사제 속에서, 가야금이 획을 그어주듯 선율의 틀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중간중간 태평소와 특수 타악기의 대비 효과는 공간감과 방향감을 뚜렷이 살렸으며, 때로는 리듬이 아라비아 음악처럼 들릴 만큼 이질적이기도 했고, 볼레로를 연상시키는 반복적 리듬이 겹쳐지며 이국적인 감각을 부여했다. 2박, 4박을 넘나드는복합적 리듬 속에서 음악은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았고,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열린 구조로 전개되었다. 이 곡은단순히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양금의 미래가 어디까지 도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운드 드로잉이었다. 리듬의 유동성과 음색의 실험이 맞물리면서, 양금은 더 이상 전통이라는 틀에만 갇혀 있지 않고, 동시대 음악의 주체로서 비상하는 존재가 될 수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양금, 시대를 관통하는 음색 – 하프시코드와의 비유 속에서

공연을 본 뒤, 문득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그리고 양금과 한국 전통 현악기 사이의 관계를 나란히 놓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프시코드는 15세기 유럽에서 발전한 건반악기로, 현을 ‘튕기는’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바로크 시대에는 핵심적인 반주악기였으나, 연주자가 섬세하게 강약을 조절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18세기 초, 이탈리아 파도바 출신 악기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현을 해머로 두드리는 메커니즘을 개발했고, 이것이 바로 피아노의 탄생이었다. 이후 피아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거치며 음악의 중심 악기로 자리 잡았고, 하프시코드는 무대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프시코드는 결코 피아노의 '미완성 단계'에 머물렀던 악기가 아니었다. 그것만의 고유한 음색과 바로크 음악의 해석에 있어 대체 불가능한 특성을 지녔으며, 20세기 이후 다시 조명받으며 독자적인 음악적 위상을 회복하였다. 개인적으로 하프시코드를 들을 때 가끔 ‘혀가 짧은 소리’ 같다고 느꼈고, 그래서 피아노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 양금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가야금이나 거문고처럼 목재에서 비롯되는 깊고 부드러운 울림에 익숙한 필자의 귀에는, 양금의 소리가 다소 날카롭고 차갑게 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양금을 ‘미완성 악기’로 여기는선입견이 있었고, 그것이 나도 모르게 양금을 ‘주인공이 되기 어려운 악기’라고 규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무대에서 이 생각이 얼마나 좁은 시선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시대가 바뀌며 양금 역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양금악회의 활동처럼, 양금은 전통 국악뿐 아니라 현대 창작 국악, 퓨전, 실험음악에서도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독특한 음색은 오히려 음악의 질감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하프시코드가 피아노의 등장으로 인해 역할이 바뀌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해석 방식과 음색으로 다시 존재를 입증한것처럼, 양금도 거문고나 가야금에 대체되는 악기가 아니라, 독창적인 음악적 정체성을 지닌 악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양금은 대체되거나 극복되어야 할 악기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해석되고 변화하며 자신의 음악적 역할을 확장해 온 악기다. 

 

이 날,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진 양금의 소리는 단지 과거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의 기억 속에서 길어 올린 소리였고, 동시에 미지의 시간으로 뻗어가는 가능성의 선율이었다. 쇠줄 위를 타고 흐르는 맑은 떨림은 더 이상 낯설거나 이질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낯설기에 더욱 또렷이 다가오는 미래의 울림이었다.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는 양금의 소리에 대해 “맑고 청아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 이롭다”고 적었다. 오늘의 양금은 그 옛 문인의 문장을 넘어, 음악과 인간, 그리고 시대 사이를 관통하는 깊은 울림의 매개체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었다. 전승과 도약, 그 두 단어가 오늘의 무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 다른 방향이 아니라, 한 몸의 양 날개였다. 이제 양금은 양 날개로, 전통을 품은 채 미래를 향해 비상하고 있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국제독일교류협회대표,

    독일/서울 거주,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