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K클래식 회장 |
1차 봉우리에 올라 세계의 지평을 보다
'옛말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있다. 보기만 해도 풍족감이 느껴질 만큼 흐뭇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때가 그다지 많지 않다. 지금처럼 지구촌이 쉼없이 전쟁 중이고, 기후 위기가 가뭄, 홍수, 지진을 일상화 하고 있으니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것이 맞다. 국내 상황도 크게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혼돈속에서 고요한 새벽의 옹달샘을 만난듯 기쁜 소식이 날아 들었다. 장혜원 이사장이 주도하는 한국피아노학회의 콘체르티노 100곡 창작 기념음악회다. 그러니까, 피아노 소협주곡 콘서트는 서양 피아노사에서 한국피아노사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고안한 발명품이다. 결코 우연 발생이 아니다.
거목 장혜원 교수의 기념비적 역작
한국 피아노사의 거목인 장혜원 교수가 평생을 걸어 오신 길 끝에 얻은 내공의 결실이다. 하늘의 별을 따온 것처럼 귀한 열매이자, 우리가 앞으로 먹고 살아 갈 양식이다. 비로서 우리 얼굴을 찾은 것이고, 우리가 그 텃밭의 주인이 되었다. 그동안은 밭이 없어 남의 밭에서 파먹고 산 셈이다. 애초부터 피아노가 우리 것이 아니다 보니까 그들이 만든 명작 틀 안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러나 조상대대로 재능이 탁월한 민족이었기에, 그 DNA 덕분에 조성진, 임윤찬 그밖에도 헤아릴수 없이 많은 콩쿠르 우승자를 배출했다. 영광이고 영광이었다.
때마침 문학에선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타서 순수 예술이 최고봉에 올랐음을 확인시켰다. 이는 K-POP, BTS에 경도된 대중 인식의 한계를 뛰어 넘은 것이다. 그 어느 악기에서보다 가장 많은 인구를 확보한 피아노. 이제 피아노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피아니스트인가? 예술에 경계가 없다지만 예술가에게 국적이 있음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들의 눈에서 우리를 보면 우리가 문화 식민지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서구를 향해 맹렬하게 달음박질쳐야 했던 지난 100의 역사다. 우리 모국어를 상실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그 의심의 화두를 풀어 낸 것이 바로 콘체르티노 소협주곡이다.
명곡들을 배우기 위해 유학 가고, 콩쿠르 따오고, 그 피아노 바다에서 비로서 '우리 섬' 하나를 만들었다. 섬이 멀다고 느꼈다. 가야할지 어색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청중의 반응이 달랐다. 피아노가 들리고 리듬에 맞춰 어깨를 흔드는 청중이 말했다. 갈비탕, 김치찌게, 된장 먹은 것처럼 속이 확 풀린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이 누렸던 위상에 금이 가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아니 필자는 깨질 것이라 믿는다. ㅎㅎ~
그러니까, 바탕화면에 서양 음악사만 깔려있었는데, 판을 바꾸니 한국 피아노사를 그려 넣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능할까? 우리가 가야할 방향에 도로 표지판 하나가 놓였다. 해방 이후 바쳤던 열정과 땀을 다시 쏱는다면 제 2의 한강 작가가 피아노에서도 터질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 작곡에서도 한강 작가 나올수 있을 것
유학 시절, 선생님이 너희 나라 것 한번 쳐보라하면, 아리랑 하나 치지 못해 낯이 붉어졌던 무국적의 피아니스트 시절을 뒤로 하고 새 지평이 열렸다.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머지않아 예술의 전당에 내한하는 외국 피아니스트들이 우리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시대가 올 같다. 이렇게 되려면 연주가나 작곡가 못지않게 똑똑한 극장장들이 나와야 한다. 관행적인 공간 활용이 아니라, 수입 아티스트에게 안방을 몽땅 내주는 대관, 흥행주의가 아니라, 비록 힘들어도 자생의 뿌리를 심으려는 기획하고 철학이 있는 극장 주인들이 나와야 한다. 이게 너무 너무 힘들기에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K클래식이 태동지 양평에 전용 공간 하나를 마련했다. (2025년 8월 기념관 오픈)
열심히 보다 중요한 것은 유턴하지 않는 셀프 네비게이션 필요
그래서 피아노 소 협주곡 콘서트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200곡, 500곡, 1,000 곡으로 이어지면서 세계 콩쿠르에 우리 곡이 지정곡으로 배정이 될 것이다. 이미 중국에선 우리 가곡 악보집이 나왔고, 독창회도 했고, 미국 교수는 가곡을 가르치고 있다. 아는 사람은 보이는 길이 예술의 속성인 창조성이다. 바야흐로 기술의 시대는 지났고 암기의 시대도 지났다. 독주회 프로그램에 한국 곡 하나 넣치 않는 관습법을 따르는 이들의 생존 가능성은 몇 %나 될까? 통계는 없지만 주변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무한 경쟁의 피아노에서 초보 운전자들은 레이스에 참가할 수가 없다. 현명한 피아니스트라면 이제부터라도 국악 장단과 악기들을 배울 것이다. 맛을 내는데 우리 조미료를 써야 한다. 흑백 요리사를 보면 정성에서 맛이 나오는 것을 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자기 눈이 있어야 산다.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블루오션의 땅으로 나오시라!
마냥 치는 것이 피아노가 아니다. 영혼에 호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핏속에 감도는 DNA 정서를 터지하는 것이 공감이 빠르다. 여러 사정으로 경력 단절이 된 어마한 수의 피아니스들이 한국 곡에 집중한다면 일등(?)이 될 수도 있다. 이미 프랑스 샤넬 등이 우리 원형 문화에서 추출한 디자인 상품들로 시장을 점유해 가고 있다. 이제는 당당하게 우리가, 내가 중심이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체된 구도로만 고집한다면, 고생끝에 낙이 오는 것이 아니라, 고생이 X고생으로 끝난다. 꼭 찍어봐야 맛을 안다면, 연비가 낮은 인생이다. 현장 40년을 발로 뛴 평론가가 소협주곡 콘서트를 띄우는 진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아니스트들을 너무 사랑하기에~ㅎㅎ~ ~
중국에서 출판된 한국 가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