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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오늘의 시 ] 산불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산불

 

 

타는 것이 어디 산불 뿐이랴
속도 타고 마음도 타고
마을도 타고, 시냇가의 물도 탄다

 

타는 것이 어디 산불뿐이랴
온 나라가 찌꺼기 욕망을 태우지 못해
거들이 나고 있다

 

산천 경계가 불타고 있다
너와 내가 갈라져서 서로에게 불을 뿜고
위와 아래가 경계가 없이 불을 뿜어내고 있다

 

나라도 타고, 정치도 타고

재판도 타고 잿더미를 향해 달리고 있다 

불이 어디 산불뿐이랴
역사가 타고, 정체성이 타고, 국론이 타고

 

어찌 강 건너 불일까. 어찌 마을 건너 불일까
내가 타고 우리가 타고 전 세계가 타고 있다

 

어찌 산만 타고만 있을까

새까맣게 황소 울음이 타고 있다

돼지들이 고성을 지르며 타고 있다 

얼이 빠진 동네 강아지들이 혼비백산 들길로 도망치고 있다

 

<詩評>

 

이 시 「산불」은 단지 자연재해로서의 산불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총체적 불안과 파괴의 은유로서 ‘불’을 활용한 강렬한 사회비판시입니다.

 

 산불, 은유로 확장된 재앙의 이미지

 

“타는 것이 어디 산불뿐이랴”라는 반복은 이 시의 핵심적 구조이자 리듬입니다. 이는 산불을 넘어서 속, 마음, 마을, 시냇가의 물까지 불에 타고 있다는 이미지로 확장되며, 공간적 경계를 허물고 감정과 공동체, 자연까지 불태우는 불길로 묘사합니다. 산불이 단지 물리적 화재가 아닌 사회적, 감정적, 정치적 불길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욕망과 분열, 불의 원인에 대한 성찰

 

“온 나라가 찌꺼기 욕망을 태우지 못해 거들이 나고 있다”는 구절은 이 시가 단순한 자연비유가 아닌 인간 내부의 문제—욕망과 불균형, 탐욕과 이기—를 지적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태워 없애야 할 것은 산이 아니라, 해소되지 못한 욕망과 갈등, 억눌린 감정의 잔재들입니다.

 

경계의 파괴와 전방위적 불꽃

 

“산천 경계가 불타고 있다 / 너와 나가 갈라져서 서로에게 불을 뿜고”라는 구절은 이 시가 사회적 분열과 증오의 불꽃에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단지 물리적 화재가 아닌, 인간 관계, 계층, 이념, 지역, 세대 간의 대립이 불길로 번지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경계가 불탄다는 것은 곧 사회적 질서와 정체성의 붕괴를 암시합니다.

 

종말적 풍경과 절규의 언어

 

후반부로 갈수록 시어는 더욱 격렬해지고 종말적 풍경이 펼쳐집니다. “정치도 타고, 재판도 타고…역사가 타고, 정체성이 타고”라는 구절은 국가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비극적으로 드러냅니다. “황소 울음이 타고, 돼지들이 고성을 지르며 타고 있다”는 구절은 민중의 고통과 절규가 짐승의 소리로 전이되며, 더 이상 말로 표현되지 않는 본능적 두려움과 공포를 그립니다.

 

비극의 동시대성

 

“어찌 강 건너 불일까. 어찌 마을 건너 불일까 / 내가 타고 우리가 타고 전 세계가 타고 있다”는 시적 자각은 공감의 윤리를 요청합니다. 산불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공통 운명에 대한 절박한 외침입니다. 이는 기후, 전쟁, 사회 붕괴 등 현대적 재앙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총평>

 

이 시는 사회 전체가 욕망의 불길에 휩싸인 상태를 강한 비유와 반복 구조를 통해 압도적으로 전달합니다. 산불은 단지 배경이 아닌 사유의 촉매이며, 독자로 하여금 ‘무엇이 타고 있는가’를 되묻게 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의 병리와 전 세계적 위기의 공명을 함축적으로 담은 시로,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날 선 감각과 책임의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8년 3.1절 기념 칸타타 [달의 춤] 중에서 환영, '불과 불'  우효원 작곡, 탁계석 대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