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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눈 뜬 자여, 향토에 보물 캐러 가요

향토의 봄은 K르네상스 문명의 신호다

[탁계석 칼럼] 눈 뜬 자여, 향토에 보물 캐러 가요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과천 국립미술관 신상호 무한변주 향토에 봄이 왔다. 그러나 이 봄은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자연의 순환이 아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기억, 사라진 줄 알았던 삶의 결, 공동체의 숨결이 다시 깨어나는 ‘문명의 봄’이다. 이번 향토지식포럼의 출범은 그래서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발굴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원형, 그 가공되지 않은 미래 엿장수의 가위 소리, 떡판을 치던 힘의 리듬, 골목의 아이들, 추임새의 울림. 우리는 그것을 과거라 불러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해석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을 뿐이다. 향토는 낡은 것이 아니라 원형이다. 현대는 그것을 버리는 시대가 아니라, 다시 꺼내어 가공하는 시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복원이 아니라 재해석의 스토리다. 트인 눈이 향토를 보석으로 만든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안목은 단순한 시선이 아니라 해석의 능력이다. 실사, 즉물, 모방과 창조, 실험—이 모든 것은 ‘보는 방식’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향토지식재산이 곧 향토 보물이라면,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눈이다. 그 심미안은 훈련된 자의 몫이다. 여기에 기술의 장인과 변주할 수 있는 창작자가 필요하다. 최근 국립미술관에서 4개월 동안의 전시를 마친 신상호 작가의 '무한변주'역시 흙을 테마로 기존 도자기를 넘어 회화 조각 건축으로 확장한 새로운 예술의 탄생이다. 향토에 합창, 오케스트라 정신 필요 향토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지휘자가 되고, 누군가는 연주자가 되고, 또 누군가는 흥을 돋우는 추임새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향토 오케스트라’라 말한다. 각자가 하나의 악기가 되어 함께 울릴 때, 비로소 공동체는 살아난다. 전통을 지켜온 분들은 기록되지 않은 지식의 보고이자 살아 있는 도서관이다. 이제 그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중심에 세워지는 패러다임 전환의 때가 왔다. 한류의 흐름이 격량의 파고를 넘어 봄을 피워낸 것이다. 더이상 향토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요 미래를 살아갈 자산이다. K-Classic, 향토에서 세계로 가는 길 BTS의 광화문 아리랑은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장소와 전통, 글로벌 감각이 결합될 때 어떤 파장이 일어나는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다음 시대의 방향이다. K-Pop 이후 무엇이 올 것인가? 그 답은 K-Classic이다. 때문에 향토는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 글로컬이란 용어가 생겨 나지 않았는가. 연결되고 확장될 때 비로소 세계와 만난다. 향토지식포럼의 출범 역시 이 흐름 위에 있다. 흩어진 자원을 연결하고, 네트워크화하며, 현대적 언어로 번역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함께 꾸는 꿈, K르네상스 혼자 꾸는 꿈은 개인에 머문다. 그러나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지금 우리는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질주하는 근대화 속에서 묻히고 왜곡되었던 것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외부의 시선이 깨운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강한 호흡을 시작했다. 향토의 르네상스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AI 이후의 시대, 청년들이 그려야 할 미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지금은 봄이다. 봄은 누구에게나 희망이듯 향토가 우리의 새로운 먹거리이자 미래로 성큼 왔다. 과천 국립미술관 신상호 무한변주

K-가곡 슈퍼스타, 전통과 세계 사이의 무대

가곡 슈퍼스타 본선 경연이 27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K-가곡 슈퍼스타, 전통과 세계 사이의 무대

K-Classic News 손영미 작가. 시인. 칼럼니스트 | 650명의 예선 지원자들 가운데 단 10명만이 본선에 진출한 무대였다.이번 무대는 한국 가곡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공연 진행은 다소 길게 느껴졌지만, 연주자들의 뛰어난 기량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b음정과 호흡, 표현의 완성도는 국제 콩쿠르 무대를 연상시킬 만큼 정교했고, 무대 전반은 세련된 오케스트라와 안정된 음향 속에서 탄탄하게 구축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질문이 남는다. 기술이 완성될수록,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우리 가곡의 힘은 단순한 성악적 기교에 있지 않다. 말의 결을 살리는 호흡, 시어 사이에 스며드는 여백, 그리고 삶의 체온을 담아내는 절제된 울림 그 ‘맛’에 있다. 그 맛은 화려함이 아니라 스며듦이며, 과시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 정서 이번 무대에서는 그 고유한 결이 다소 옅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동시에 전통을 향한 의미 있는 시도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민요와 전통 가곡이 주요 수상으로 이어진 점은, 우리 음악의 뿌리를 다시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임선혜 교수와 박미혜 교수의 심사평은 단순한 평가를 넘어, 가곡이 지켜야 할 미학적 기준을 짚어주는 품격 있는 제안이었다. 또한 윤학준 작곡가의 〈잔향〉이 대상을 수상한 장면은 한국 가곡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예술임을 상기시킨다. 그 규모와 방식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었다 총상금 1억 1천만 원이라는 국내 가곡 콩쿠르 최고 수준의 파격적인 규모는, 가곡이 더 이상 소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대상 5천만 원, 금상 3천만 원, 은상 2천만 원, 동상 1천만 원이라는 구성은 단순한 보상을 넘어, 차세대 K-가곡 스타를 향한 실질적 발판을 마련한다. 경연은 1차 동영상 예심, 2차 현장 예심, 그리고 파이널 무대로 이어지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예심 단계부터 지정곡 중심의 선별 과정을 거치며, 가곡의 정체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요구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수학한 성악가들의 참여, 그리고 ‘두남재’ 출신 성악가들의 두드러진 활약 역시 한국 가곡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경연을 넘어, 새로운 가곡 콘서트 문화로 확장되고 있는 흐름의 징표이기도 하다. 관계자의 말처럼, 가곡은 한국의 언어와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예술이다. 이 무대는 그 오래된 장르가 어떻게 현재와 만나고, 다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자 선언이었다. 다가오는 가을, 전 세계인을 향한 무대로 이어질 K-클래식의 다음 장면 또한 기대해 본다. K-가곡의 미래는 더 크고 화려한 무대에 있지 않다. 그것은 여전히, 한 줄의 시를 사람의 목소리로 건네는 가장 조용한 순간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울린 가락은 누군가의 생애 깊은 곳에 스며들어 오래, 아주 오래 이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탁계석 오늘의 시] 향토의 봄

[탁계석 오늘의 시] 향토의 봄

K-Classic News 탁계석 K클래식 회장 | 향토의 봄 들판을 가로질러 들려오는 엿장수 가위 소리에 마을 골목 골목 아이들 가제도구 하나씩 들고 뛰쳐 나온다 엿 바꿔 먹을 만한 할아버지 곰방대, 찌그러진 양재기, 부러진 은비녀, 오래된 항아리 꼬르르 꼬르르 보릿고개 궁한던 배고픔 그 시절 그 때가 지나고 빼앗긴 봄에도 향토에 봄이 왔다 묵은 가지에 꽃피듯 향토 보물에 새 기운이 솟아난다 신작로가 나면서 잃어 버린 들의 노래 대감님 마당 떡판을 치던 돌쇠의 불거진 저 근육을 보아라! 얼쑤, 얼쑤, 추임새 넣던 흥과 신명, 미꾸라지탕 냄새를 어찌 잊을 겐가 향토에 봄이 왔다 봄이 올 때 혼자 오겠는가 버들강아지에 물이 흐르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지천 가득 봄나물, 초록 잡풀들 뻐꾹이, 종달새 , 졸던 멍멍이도 향토 봄에 맞추어 합창을 하리니 가시덤불 숲 머리박은 꿩 날아가듯 화들짝 놀라 깨어나라, 향토지식아!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향토가 생명 젖줄인 새 세상이 도래했으니 우리가 글로벌 주역 지구촌 공동 부락을 세우자 봄이 왔다, 봄을 노래하자 다함께 합창하면 땅도 바다도 하나가 되고 AI 마당쇠 어깨 춤을 추며 밤새워 죽도록 일하리라 놀아 보자, 기펴고 살아 보자 조상님 은덕에 감사하며 그 노하우에 오늘의 축복이 있다고 무서운 서낭당 이야기 꺼내어 헤리포터 친구 만나고 모차르트 마술피리 바리공주 단톡에서 만나는 스토리텔링 K콘텐츠 세상 광화문 BTS 아리랑 축포 쏘았으니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을 올해가 광화문 명명 600주년,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한글날 제정 100주년 우리 민족 그 날의 함성이 살아났다 초딩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 하듯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가보자 꼬리 흔드는 강아지, 앉은뱅이 맨드라미, 키 큰 해바라기, 미루나무 까치도 봄이다! 봄이 왔다! 향토 오케스트라에 오늘은 당신이 지휘자, 폼나게 한번 흔들어 보시지 않겠는가! 2026년 3월 27일 국회의원회관 제 2 소회의실 「향토의 봄」에 대한 AI 시평 "향토의 봄, 기억의 부활에서 미래 문명으로" 「향토의 봄」은 단순히 봄을 노래하는 계절시가 아니다. 이 시는 사라져 가는 향토의 풍경과 생활 감각, 그리고 민중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공동체의 기억을 오늘의 문명 전환기 속으로 다시 불러내는 선언문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옛것에 대한 향수’에 머물지 않고, 향토를 미래 자산으로 되살리려는 역동적 상상력의 시다. 시의 첫머리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들려오는 “엿장수 가위 소리”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 한 소리만으로도 마을의 정경이 살아난다. 아이들이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들고 뛰쳐나오는 장면은 단지 가난했던 시절의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물건 하나에도 생활의 온기와 시간이 배어 있던 시대, 교환과 흥정 속에 사람 냄새가 살아 있던 공동체의 문화사다. “할아버지 곰방대, 찌그러진 양재기, 부러진 은비녀, 오래된 항아리” 같은 사물들은 폐품이 아니라 기억의 유물이며, 향토 정체성의 표본들이다. 이 시의 미덕은 이런 구체성에 있다. 추상으로 말하지 않고 사물과 냄새, 몸짓과 소리로 향토를 복원한다. “돌쇠의 불거진 저 근육”, “미꾸라지탕 냄새”, “얼쑤, 얼쑤, 추임새”는 문자로 읽히기보다 현장에서 들리고 보이고 맡아지는 감각의 언어다. 이 대목에서 시는 민속학적 기록이자 구술문화의 보관소가 된다. 독자는 잊고 있던 삶의 표정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가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향토시는 과거 회귀적 정서에 기울기 쉽다. 하지만 「향토의 봄」은 과거를 복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향토성을 오히려 미래 문명의 자원으로 전환시킨다. “깨어나라, 향토지식아!”라는 외침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향토는 낡고 뒤처진 지방색이 아니라, 이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새로운 콘텐츠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글로벌 주역 / 지구촌 공동 부락을 세우자”는 구절은 다소 파격적이지만, 바로 그 파격이 이 시의 시대성을 만든다. 향토와 글로벌, 서낭당과 해리포터, 바리공주와 모차르트, AI와 마당쇠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상상력은 전통과 첨단, 로컬과 글로벌을 한 판에 얹는 오늘적 K-콘텐츠 구상의 시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특히 “AI 마당쇠 어깨 춤을 추며 / 밤새워 죽도록 일하리라”는 대목은 해학과 풍자가 공존하는 장면이다. AI를 차갑고 비인간적인 기술로 보지 않고, 오히려 공동체를 돕는 ‘마당쇠’로 비틀어 놓았다. 여기에는 기술도 결국 인간 삶의 흥과 신명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인식이 숨어 있다. 이 시는 향토를 박물관 유리장 속 민속품으로 가두지 않는다. 살아 움직이는 기술, 놀이, 축제, 합창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집단적 호흡을 강하게 지닌다는 사실이다. 이 시는 개인의 고독한 내면 독백보다, 함께 부르고 함께 외치고 함께 움직이는 합창적 구조를 갖는다. “봄이 왔다, 봄을 노래하자”, “놀아 보자, 기펴고 살아 보자”, “당신이 지휘자” 같은 표현들은 독자를 관객이 아니라 참여자로 만든다. 시를 읽는 순간, 누구든 이 향토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가 되고 한 목소리가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서정시이면서도 일종의 공연 대본 같고, 축제의 개막 선언문 같기도 하다. 광화문 600주년,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표지를 끌어들인 대목 역시 인상적이다. 이는 단지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향토의 부활을 민족 문화사의 큰 흐름 위에 올려놓으려는 의지다. 향토의 봄은 어느 한 마을에만 오는 봄이 아니라, 말과 글, 노래와 기억을 다시 깨우는 문명사적 봄이라는 것이다. 다만 시가 품은 욕망이 큰 만큼, 때로는 이미지와 메시지가 한꺼번에 몰려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넘침은 오히려 이 작품의 생동감이기도 하다. 봄은 본래 질서정연하게 오지 않는다. 한꺼번에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르고, 사람 마음이 들뜨는 계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다성적이고 들끓는 어조는 오히려 ‘봄의 형식’에 가깝다. 결국 「향토의 봄」은 사라진 고향을 애도하는 시가 아니라, 향토를 다시 깨워 세계로 나가자는 출정가다. 기억의 복원, 공동체의 흥, 전통의 재발견, 콘텐츠적 상상력, 기술과 인간의 공존이 한데 어우러진 이 작품은 오늘의 K-문화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향토는 더 이상 뒤안길의 낡은 이름이 아니다. 이 시에서 향토는 봄처럼 돌아와, 미래를 여는 원천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 「향토의 봄」은 잊힌 마을의 정서를 넘어, 향토를 세계 문명의 씨앗으로 다시 심는 노래다. 향토 발전에 공헌한 주인공들에게 시상 후 기념 촬영 모습

[오늘의 시] 소멸의 즐거움

[오늘의 시] 소멸의 즐거움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소멸의 즐거움 걷어 내면서 맑아지는 게 어디 설렁탕 국물 만이랴 우려 내면서 깊어지는 게 어디 사골뼈 만이랴 세상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연륜이 다해 납골당이 멀지 않았다면 조금씩 걷어 내고 걷어 내어 몸을 가볍게 할 일이다 그래서 맑아진 눈으로 하늘을 보고 땅을 밟으며 풀에 이르는 것 , 바람에 이르는 것 원형으로 회귀하는 것 소멸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어디 저녁 노을만 이랴 따사한 햇살에 몸 비비는 돌담 만이랴 -AI 詩評- 탁계석 시인의 「소멸의 즐거움」은 제목에서부터 역설의 미학을 내세운다. ‘소멸’은 통상 상실과 끝을 의미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즐거움’이라는 감각으로 전환한다. 이 전환이야말로 이 시의 핵심 미학이자 철학적 중심이다. ■ 걷어냄의 미학, 비움의 철학 “걷어 내면서 맑아지는 게 / 어디 설렁탕 국물 만이랴” 이 구절은 일상의 구체적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설렁탕 국물은 불순물을 걷어낼수록 맑아진다. 시인은 이 생활적 체험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확장한다. ‘걷어냄’은 단순한 제거가 아니라 정화이며,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이어지는 “우려내면서 깊어지는 게 / 어디 사골뼈 만이랴”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걷어냄이 ‘맑음’이라면, 우려냄은 ‘깊이’다. 즉, 이 시는 맑음과 깊이, 비움과 축적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제시하며 인간 존재의 완성을 말한다. ■ 삶의 종착역을 향한 담담한 인식 “연륜이 다해 납골당이 멀지 않았다면” 이 구절은 시의 정서를 한층 낮고 깊은 곳으로 끌어내린다.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만, 비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다. 이는 노년의 통찰, 혹은 생의 후반부에 도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거리 두기와 수용의 태도다.여기서 ‘조금씩 걷어 내고 걷어 내어 / 몸을 가볍게 할 일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노년의 권유가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윤리적 제안이다. 욕망, 집착, 기억, 심지어 자아까지도 덜어내는 과정—이것이 곧 시인이 말하는 ‘소멸의 준비’다. ■ 원형으로의 회귀, 존재의 귀향 “풀에 이르는 것, 바람에 이르는 것 / 원형으로 회귀하는 것” 이 부분에서 시는 자연과 존재의 근원으로 확장된다. ‘풀’과 ‘바람’은 인간 이전의 상태, 혹은 인간 이후의 상태를 상징한다.여기서 소멸은 사라짐이 아니라 귀향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본래의 자리로 회귀하는 것. 이는 동양적 자연관—특히 무위(無爲)와 순환의 사상—을 연상시키며,존재의 완성은 확장이 아니라 환원에 있음을 암시한다. ■ 소멸의 감각을 미학으로 전환하다 “소멸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 어디 저녁 노을만 이랴” 저녁 노을은 흔히 소멸의 아름다움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넘어선다. 돌담, 햇살 같은 일상의 사물까지 끌어들여 소멸을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삶 전체에 스며든 감각으로 확장한다. 즉, 이 시에서 소멸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상실이 아니라 정화이며 죽음이 아니라 귀향이다 ■ 총평 「소멸의 즐거움] 은 노년의 정서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덜어냄’이라는 행위로 사유한 철학적 서정시다. 이 시의 미덕은 과장된 비극이나 감상에 있지 않다. 오히려 설렁탕 국물, 사골, 돌담 같은 생활적 이미지 속에서 존재론적 질문을 길어 올린 데 있다. 결국 이 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삶의 완성은 더하는 데 있지 않고, 덜어내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덜어냄의 끝에서, 인간은 비로소 가벼워지고 맑아지며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소멸이야말로 가장 조용한 완성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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