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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칼럼] 티켓이 춤을 추면 흥과 감동이 돌아 온다

공짜 티켓은 예술가를 더욱 고통에 빠트린다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티켓 문화가 잘 정착된 선진국들. 월트디즈니홀 

 

지난해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진입했습니다. 국가가 한 단계 승급(昇級)을 한 것이어서 너무 기쁜일 입니다. 문화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때에 바람직한 공연장 문화와 예술가의 생태적 환경을 위해 공짜 티켓과 습관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생산자인 예술가가 건강해야 멋지고 좋은 예술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시인이 고통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 했습니다. 억압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우리 예술가들도 이런 저런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그 중심에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분들이 힘들게 해서야  

 

공연은 티켓을 매개로 공연물이 공존하는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티켓을 공짜로 얻는 것은 예술가를 고통에 빠트리는 일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가장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감증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콘서트가 가족, 잔치와 이웃의 주변이 관객입니다.

 

경계가 모호하면서 생긴 문제죠. 나한테 티켓을 팔 수가 있어? 날 뭐로 보는거야?  체면과 권위, 우월주의 등이 혼합되어 나쁜 습관, 공짜 습관의 뿌리가 깊고 깊어 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습관을 제 2의 천성이라고 합니다.  그 굵은 밧줄은 스스로 끊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공짜 티켓의 불감증(不感症), 중증(重症) 현상에 누구도 손을 댈 엄두를 못내고 있고 과거에도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별 성과를 못보았죠.   

 

선진국 진입이 되었으니 이 기회를 빌어 서양 예술만 받아 들일 것이 아니라 극장문화도 받아 들여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마당놀이 문화니까 티켓 개념이 없었던 것이니까 익숙치 않은 문화라 하겠지만, 지금의 젊은 층은 매표 문화가 빠르게 정착되어 가고 있지요.  공짜의 원천 제공에 예술가도 잘못은  큽니다. 제 형편에 맞지 않는 큰 공연장을 채우려다보니 표를 먼저 뿌려댔고, 뿌린 표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티켓을 사는게 두려워집니다.  공짜가 습관이 되면 다시는 티켓을 사기가 힘듭니다. 

 

솔직히 거지도 식당에 그냥 들어가지 않습니다. 돈으로 사먹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음악회장은 귀로 먹는 식당입니다. 프로그램은 메뉴이고요.  이제 선진국 진입했으니 과거 탓하지 말고, 내 주변의 이웃, 가족, 친지들부터 티켓 사는 운동을 펼쳐야 겠습니다. 

 

고래 힘 줄 보다 더 질긴 공짜 습관을 끊어야 예술이 산다

 

고래 힘 줄 보다 더 질긴 공짜 습관을 끊기위해 비평의 칼을 쓰고자 합니다. 예술가는 관객의 박수 소리와 티켓으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티켓을 사는 것은  행복을  성숙시키는 지름길입니다. 어릴 때 부터 음악 하나를 붙들고 수많은 난관과 콩쿠르를 거쳐 무대에 서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해도 무대의 화려한 드레스 이면을 읽는 성숙함과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로 얻은 것은 쉽게 잃으며, 감동은 덜하게 만듭니다. '십시일반'이란 말처럼 내가 사는 한 장의 티켓이야말로 사랑의 표시이자 배려와 정성입니다. 

 

한국 문화와 역사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는 '여근하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공짜 티켓 습관을 청산하는 신호탄으로 쓰려고 합니다. 바야흐로 대중한류에 이어 고급 신한류로  문화 수출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공짜가 만연한 이런 상태에서 상품의 경쟁력은 방지턱이 많은 도로와 다르지 않습니다. K클래식과 예술비평가협회가  티켓 사는 문화 정착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 지금은 이 말이 어느정도 사라진듯 하지만, 사실은 그 변종은 살아있지요.  공짜 티켓은 체면을 구기는 무식입니다. 교양과 품격, 배려와 원숙함이 선진국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니까요. 티켓을 사서 예술을 존중하고, 아티스트를 아끼는 문화로 가야 합니다. 티켓이 춤을 추면 예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흥과 기쁨을 주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