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강남구 선정릉 근처 '하다 아트홀'에서 희수 연주회
테너 박준영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군인의 길에서, 경찰관으로, 그리고 암 투병 중이면서도 무대 위의 동호인 성악가로 오기까지, 그의 인생을 관통한 한 줄의 선율은 ‘노래’였다.
“중학교 때 송창식 씨가 부르는 〈산들바람〉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3학년, 저는 2학년, 그리고 누나가 네 분 있었는데 다들 교회를 다니며 찬송가와 아리아를 불렀어요. 자연히 따라 부르다 보니 노래가 제 삶에 스며들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동이 여전히 묻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엔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선생의 독일 유학 귀국 독창회를 직접 관람하며 성악의 세계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군인의 길에서 동호인 성악가로
박준영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병으로 인해 졸업은 하지 못했다. 이후 경찰청 치안본부 외사과에서 근무하며 국제선 탑승 보안관 등의 임무를 맡았다. “그 시절엔 노래보다는 국가와 조직이 먼저였죠.” 1998년 퇴직 후에는 조경과 용역, 경비업, 행사, 소독업 등 다양한 일을 했다. 하지만 2016년, 우연히 참여한 합창단 활동이 그의 인생을 다시 음악으로 이끌었다.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미8군 군악대와 함께한 송년의 밤, 그때의 무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암 투병 중이면서 부르는 인생의 노래
작년 봄, 원인을 알 수 없는 귀와 코의 이상 증세로 시작된 병은 결국 암 진단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동네 병원에서 중이염이나 축농증으로 오진했어요. 1년 가까이 그 말을 믿고 다녔죠. 그런데 우연히 다른 병원에서 CT를 찍었더니 코 안에 이물질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큰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7월부터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담담히 회상하지만, 그 안엔 깊은 고통과 싸워온 흔적이 배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노래가 제 병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노래를 하면 마음이 살아나는 느낌이었어요.”
동료들과 함께한 ‘희수 콘서트’
이번 콘서트는 그의 인생 77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수많은 직업과 역할을 지나 이제 그는 ‘노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관객이 많진 않을 겁니다. 평소에 일에 몰두하느라 다른 행사에 참여를 잘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무대는 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정리하는 변곡점이 될 것 같습니다.” 박준영의 노래에는 인생의 무게가, 그리고 감사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의 희수 무대는 단순한 축하의 자리가 아니라, 인간 박준영이 삶과 병, 그리고 음악을 통해 완성한 한 편의 감동 서사로 기억될 것이다.
“노래는 제게 생명이고, 희망입니다. 무대에 서는 한 순간, 저는 다시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