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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정책 칼럼] 숨 쉬는 예술, 살아있는 관객, 선순환 생태계로 가는 길

관객 개발이 선순한 생태의 기준이다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공연예술진흥 기본 계획 2025-2029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월 27일 오후 3시~5시)

 

“예술은 공급이 아니라 숨결이다. 예술이 숨을 쉬려면, 관객이 숨을 쉬어야 한다.”


“진짜 관객을 길러내는 것, 이것이 문화 강국의 시작.”

 

‘선순환 생태계’는 원래 자연의 개념에서 유래한 말이다. 태양, 비, 땅,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순환 구조 안에서 공존하는 유기적 흐름. 그것은 곧 균형이고, 건강함이며, 지속 가능성이다. 이 개념은 예술 생태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우리 예술 생태계는 과연 선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공급자 중심의 편중’이라는 악순환 구조에 갇혀 있다. 그 중심에는 관객 부재라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지역의 예술계는 ‘관객 기반’의 부재가 심각하다. 공연을 준비하고도, 무대 아래 채워질 자리가 없다면 그 예술은 호흡조차 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단순히 시민들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공공 예술단체들이 초대권과 무료 티켓을 무분별하게 배포하며, 관객의 가치를 스스로 저하시키는 관행이 뿌리내려 왔기 때문이다. 선순환 생태계의 핵심은 ‘관객 개발’이다. 단지 수요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고, 성장시키며, 참여하게 하는 것. 선진국들은 이미 이 구조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왔다.

 

독일은 공식 등록 합창단 55,700개 한국은 3,000개(?)

 

독일의 경우 독일연방합창협회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55,700개의 합창단이 있고, 2백10만명의 합창인구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유년시절부터 합창단 활동을 통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기며, 성인이 되어서도 각종 직업군에 종사하는 가운데도 주 2회 가량 합창단 활동을 하며, 노래을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활화 되어 있다. 합창을 하며 스스로를 힐링하고, 또 합창단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회활동을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이다. 독일 합창은 뿌리가 워낙 깊어 906년이나 된 합창단 등 그 역사가 어마하다.


일본은 철저한 유료 관객 중심으로 극장 문화를 정착시켰다. 초대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공연에 가는 것은 '교양 활동'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는 지역 문화 센터와 동호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시민 스스로 예술을 창작하고 소비하는 ‘생활 예술’ 구조를 만들었다. 예술가는 지도자이고, 시민은 예술의 공동 제작자다.

 

평생 단원보다 명퇴 단축. 지도자로 변신해 청년 일자리 숨통 틔워줘야 

 

우리나라는 어떤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가무 민족이지만, 합창단은 3천여 개 남짓이다. 흥과 끼는 넘치지만, 구조와 시장은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전환점이다. 시립 예술단체의 기능 일부를 민간과 지역 동호인으로 확장할 수 있다. 전문 단원과 지휘자를 ‘지도자’로 양성하고, 읍면동 단위의 생활예술단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 예술가들은 강사와 기획자가 되고, 지역은 일자리와 관객을 동시에 얻는다. 이렇게 되면 한국도 합창 강국이 되고 일자리 해소도 풀리게 된다. 10년 계획을 세워 장기 프로젝트로 가면 될 것이다. 서울시만 해도 25개구 동합창단 424개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지방도시에서는 동호인 예술단체와 함께 청년 예술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델이 이미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합창, 무용, 연극,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드는 생활예술단이 공공 인프라를 활용해 자생적으로 운영된다.

 

그렇다면 이제 국립 예술단체의 지방 이전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관객 개발과 지역 생태계 구축이라는 문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단원 중심에서 ‘시민 예술가’ 중심으로, 공급 중심에서 ‘참여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원 교육과정의 개편, 연수 프로그램의 신설, 지도자 자격 인증, 생활예술단 연계 플랫폼 설계 등 다층적인 정책 디자인이 필요하다. 퇴직 단원이 아닌 ‘새로운 역할을 가진 전문가’로 전환하는 시스템, 그것이야말로 선순환의 핵심이다.

 

고속도로 전용차선제처럼 패러다임 바꾸면 문화 생태계 확 살아난다 

 

코로나 이후 위축된 노래방 문화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며 삶을 표현해왔다. 이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도 고속도로처럼 숨통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막힌 고속도로에 전용차선제차럼 만든다면, 예술 생태계가 살아날 것이다. 진정한 관객을 위한 개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지역이 살아 숨쉬는 토양으로, 예술이 깊게 숨 쉴 수 있는 환경으로. 국립 예술단체의 지역 이동이 그 숨결의 시작이다.  

 

한국의 창작 K클래식 콘서트에 매진을 한 베를린 쳄버 콘체르트하우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