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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노트] 상업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서양 예술사 로코코(Rococo)

 7. “로코코 취향의 무시대 패션의 창시자 알렉산드로 미켈레”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평범한 예술가는 베끼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훔친다!” - 파블로 피카소.

 

일명 ‘무시대 패션’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며 침체에 빠졌던 구찌(Gucci)를 재도약 시킨 인물로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사례는 브랜드 속 예술사가 끼치는 영향을 잘 말해준다. 그에 관한 세간의 평가는 아름다운 것을 골라내는데 타고난 ‘큐레이터’ 같은 눈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그가 인정받는 건, 가장 ‘올드’한 오브제들을 골라내 정신없이 섞어 ‘최신’ 트렌드로 창조해 내는 창의력으로 크게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최신 트랜드를 창조해 내는 그의 창의력의 기반은 평소 가장 ‘올드’한 것과 함께 지낸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거주하고 있는 그의 아파트는 바로크 시기 건축물이다 보니 평소에도 수많은 ‘올드’한 것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그리고 엄청난 빈티지 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그가 좋아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프린트에 관심이 많다.

 

 

이런 결과로 ‘올드’한 패턴 속에서 아름다움을 골라낸 후에 그것을 정신없게 ‘믹스’해 보는 이에게 최신 패턴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빠지게 하는 능력이 탁월할 수밖에 없으며 세상은 이런 그의 능력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즉 미켈레의 작품 탄생 배경을 모르면 다른 말로 예술사를 모르면 세간의 평가처럼 ‘무시대 패션’이라 말하겠지만, 예술사에 평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경우에는 그가 차용한 ‘올드’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은 그의 ‘올드’한 취향이 반영된 이탈리아 밀라노 구찌 본사에 있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사무실의 정경이다. 사무실 내 비치된 모든 오브제가 바로크 시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크와 로코코를 색깔로 세분한다면 바로크는 권력 지향적 색깔인 빨강이며 로코코는 유희적, 쾌락적 느낌의 핑크이다. 다음의 이미지에서 왼쪽 그림의 루이 14세 배경은 왕권을 상징하는 붉은색 커튼이지만 오른쪽 그림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배경의 꽃무늬 벽지에서 확인되듯이 이전 붉은색은 로코코가 선사하는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색깔을 상징하는 핑크, 즉 분홍색으로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로코코는 루이 14세 이후 생겨난 풍조로 비판받지 않는 절대권력 즉 막강한 권력 지배 구조를 이루어 더 이상의 경쟁 상대가 없어진 왕실의 긴장감 없는 분위기가 선사한 나른한 취향의 유희적 쾌락의 길로 빠져든 왕실과 귀족 사회의 풍조로 이 시기 핑크가 사랑받는다. 다음의 로코코를 대표하는 화가인 프라고나르 (Jean Honore Fragonard) 역시 유희적 쾌락적 분위기 연출을 위해 그림의 배경을 핑크로 채색한 모습이 확인된다.

 

 

빨강이 권력적이고 숙명적인 사랑을 상징한다면, 핑크는 나른한 느낌의 다소 유희적인 하룻밤으로 끝나는 쾌락적 사랑을 상징한다. 알렉산드로 미켈레 역시 기존의 보수적 색채가 강해 루이 14세 스타일 같았던 구찌를 탈바꿈시키기 위해 루이 14세 스타일의 바로크 위에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로코코 이미지를 첨가해 다음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한다.

 

 

위의 이미지가 보여 주듯이 권력 지향적인 느낌의 Baroque와 유희와 쾌락을 추구한 Rococo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잘 섞으면 일명 미켈레 스타일이 완성된다.

 

 

 

 

[바로크와 로코코가 융합된 미켈레 스타일]

 

그가 2015년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이후 구찌의 수익은 2015년 39억 유로에서 2021년 97억 유로로 거의 3배나 증가했다. 때로는 분기별 성장률이 50%에 육박하기도 했다. 미켈레는 이탈리아 전통적 예술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헤리티지 구찌 시그니처와 현대적인 미학을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통적 예술에 관한 심미안이 대단한 인물이다. 

 

다음의 미켈레 이전의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쟈니니(Frida Giannini)의 2011년 매장 인테리어 컨셉은 다음의 이미지에서 확인되듯이 다소 보수적이고 권력적인 느낌의 매장 디자인 그러니까 루이 14세 스타일의 장엄한 양식(Grande Maniera)이라는 점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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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리다 쟈니니의 바통을 넘겨받아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후의 구찌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은 다음의 이미지처럼 유희와 쾌락을 추구했던 로코코 분위기로 가득하다.

 

 

 

이처럼 미켈레 이전의 구찌가 절대권력에 취해 고전적 느낌의 클리셰(cliché)에 빠져 있었다면, 미켈레 등장 이후 구찌는 다소 긴장감이 없는 그러니까 명품이라 해서 꼭 고전적 모습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느낌의 재치 발랄한 로코코 취향을 반영해 재해석한 결과이다. 다음의 유희적이고 쾌락 추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2017년 알렉신드로 미켈레의 일명 ‘무시대 패션 스타일’로 로코코적 화려한 장식예술이 숨겨진 스타일의 가방과 스타일이 이런 구찌의 변화를 잘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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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무시대 패션 스타일’은 사실 ‘무시대’가 아닌, 역사적으로 로코코의 장식예술과 자유분방한 히피였던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감각적으로 잘 섞어진 모습이다. 

 

[로코코의 화려한 장식미]

 

 

[자유분방한 히피 문화]

 

[로코코의 장식미와 히피 문화의 자유분방한 색채감이 융합된 미켈레 스타일]

 

 그럼 구찌의 다음 패션 스타일은 어떻게 전개가 되었을까? 예술의 변천사를 적용하면 로코코 다음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전개될 확률이 매우 높다. 바로크와 로코코의 인공미에 의한 화려한 색채에서 탈피해 신고전주의가 지향했던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전개될 확률이 높다. 그 변화를 다음의 이미지가 잘 말해준다.  2021년 미켈레가 구찌를 떠나고 발렌시아가와 협업을 통해 발표되었던 구찌 100주년 기념 컬랙션(Fall 2021-2022 collection)의 스타일처럼 기존의 바로크와 로코코가 선사하는 유희적인 자유분방함과 쾌락적인 화려한 색채감은 사라지고 바로크 다음에 찾아오는 신고전주의적 사고인 단순함과 명쾌함을 지향하는 전통적 구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음이 확인된다. 

 

 

이처럼 서양 예술의 역사를 이론적인 접근이 아닌, 감각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져 보시길 바란다. 2015년 구찌 CEO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의 지지를 받아 미켈레가 액세서리 부문 책임자에서 단숨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이후 세계 패션 업계에 충격을 안겨준 그의 창의적인 작업은 사실 패션업계의 평가처럼 단순히 ‘무시대 패션’이 아닌 전통적 예술사를 감각적으로 훔쳐 재가공한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서양 고전 예술 속에는 인간의 기호와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