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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오페라 ‘운수 좋은 날’ 탁계석 대본

시대의 암울함에 민초들의 밑바닥 생활상을 그려내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1막 1장 : 비 오는 아침의 실랑이

 

여기서는 1막 1장 오프닝의 감정선과 인물 간 갈등, 현실적 압박과 욕망이 드러나는 장면을 오페라적 형식으로 재정리하고, 레치타티보 – 아리아 – 이중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여 음악적·극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토속적 언어와 미니멀리즘 리듬이 강조되며, 이 장면 전체가 ‘설렁탕’이라는 키워드로 중독성과 비극성을 동시에 품게 됩니다.

 

등장인물
김첨지: 인력거꾼. 현실에 지친 가장.
아내: 병색이 짙은 몸으로 설렁탕을 갈망함.
무대 : 낡은 반지하방.
장대비 소리.
벽에는 물자국. 작은 장독대 옆에 수건과 물동이.

 

[레치타티보 – 아내의 간청]

 

아내 (앉은 채로):
오늘은 가지 마세요…
제발 오늘만은 나가지 마세요…
비가 와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그냥, 여기 있어줘요…
이 작은 방에, 나랑 함께 있어줘요

 

김첨지 (모자를 눌러 쓰며):
안 나가면, 누가 밥 먹여 준대
누가 양식 사다 준대
우라질 년, 오늘도 죽만 바라보게?
설렁탕은 어디서 떨어져!

 

[김첨지– 짧은 아리아 (깐쪼네타)]
(느린 왈츠풍 혹은 굿거리 리듬, 하모니카 간주 가능)
(정선 아리랑 차용?)

 

김첨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이놈의 하루살이 인생
인력거 잡고 죽어라 뛰어야
입에 풀칠 한다니까
죽도록 발품을 팔아야
내가 산다, 겨우 내가 산다!

 

[아내–레치타티보 후 이어지는 칸타빌레 아리아]

 

아내 (갈라진 목소리로):
설렁탕이… 먹고 싶어요…
오늘 하루만… 설렁탕 한 그릇이면…

 

[칸타빌레 아리아 – 아버지와 설렁탕]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민요풍 라르고)

 

아내: 옛날에, 내가 어렸을 적에
읍내 장터, 가마솥
김 모락모락 나는 설렁탕 국물

 

후루루 후루룩
게 눈 감추듯 넘기던 그 맛
아버지가, 웃으며
“한 그릇 더 먹을래?”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맴도네

 

맛있던 그 한 그릇
설렁탕…
그거 한 그릇이면…
정말 소원이 없겠어요…

 

[이중창– 실랑이와 집착이 겹쳐지는 절정 장면]
(빠르게 고조되는 템포, 토속적 타악기와 리듬 강조)

 

김첨지: 누가 나가고 싶어서 나가나
비 오는 날, 우라질 인생
설렁탕… 설렁탕 타령 그만 좀 해!

 

아내: 설렁탕! 설렁탕! 따뜻한 국물
그거 하나면 오늘 견딜 수 있어요!

 

김첨지 (폭발하며):
설렁탕! 설렁탕!
탕탕탕탕!
후루룩 후루룩 설렁탕!

 

아내 (반복 후 점점 쇠약하게):
설렁탕… 설렁탕…
후루룩… 탕… 탕… 탕…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김첨지는 얼떨결에 문을 꽝 닫고 나가며 장면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