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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라는 한국적 감각의 두 얼굴

― 주도성과 독창성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손’을 넘어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대중은 결코 진리를 낳지 않는다. 오직 개인만이 그것을 품는다. — 쇠렌 키르케고르

 

 ‘절에 가서 새우젓을 먹는’ 능력

 

‘눈치(nunchi)’는 직역하면 ‘눈으로 재는 치수’입니다. 말없이도 표정과 분위기를 읽어 사람들의 마음속 거리까지 재보는 섬세한 감각이죠. 덕분에 우리는 갈등을 줄이고, 협업을 매끄럽게 이어 갈 수 있습니다.

 

고맥락 문화가 키운 사회적 레이더

 

조선 유교 전통, 산업화기의 ‘빨리빨리’, ‘정(情)’ 문화는 관계의 온도를 지키는 일을 개인의 의견보다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말보다 눈빛이 먼저 흐르고, 단 한마디 없이도 “다 알아들었지?”가 가능해졌죠.

 

눈치의 빛과 그늘

 

밝은 면 / 그늘

 

빠른 공감과 조율 결정이 미뤄지고 속도가 늦어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암묵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트기도 전에 꺾임
조직 분위기 읽는 능력 “내가 누구지?”라는 자기 상실감

 

회의 자리에서 다섯 번쯤 “이 말을 해도 될까?” 머뭇거리다 아이디어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그 순간 창조적 ‘불온함’은 사라지고 모두가 안전한 평균값으로 모여듭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눈치’

줌 화면에 켜진 마이크 표시를 보며 눈치만 살피다 정적이 길어지는 회의, 단체 채팅방에서 “먼저 쓰면 튀는 것 아닐까?” 하며 망설이는 모습. 온라인 세상에도 눈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철학이 건네는 작은 자극

니체는 “무리와 동화되면 영혼이 시들기 시작한다”고 했고, 베르그송은 “창조적 충동은 흐름을 거스르는 작은 일탈에서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눈치’의 달콤한 안전망을 살짝 벗어날 용기, 거기서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눈치를 넘어서는 여섯 가지 습관

 

1. 정보를 투명하게 — 회의 자료와 결정 과정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열어두기
2. 심리적 안전장치 — “틀려도 괜찮다”는 문화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
3. 돌림 발언제 — 회의 초반, 모두가 1분씩 꼭 의견을 말하도록 설계하기
4. 익명 제안함 — 발화자 이름을 가려놓고 아이디어 자체로 토론하기
5. 외부 바람 넣기 — 다른 문화권 멘토를 초청해 굳은 관습을 흔들기
6. 하루 세 줄 일기 — 남의 시선 대신, 내 기준을 글로 다지는 작은 훈련

7. 예술가에게 보내는 짧은 주문

 

프리모 레비는 “창조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규칙을 만드는 일”이라 했습니다. 관객의 시선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작품의 뼈대까지 눈치가 점령하게 두면 예술은 더 이상 숨 쉬지 못합니다. 눈치를 느끼되, 그 위를 가볍게 뛰어넘어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는 것—바로 그 순간이 예술의 탄생점입니다.

 

 “자신이 되려면, 모두와 달라져야 한다.”— 랄프 월도 에머슨

 

맺음말

눈치는 한국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온 정교한 사회적 GPS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밀한 GPS라도, 지도에 없는 길은 첫 걸음의 불확실성에서 시작됩니다. 공감과 조율의 미덕을 품되, ‘창조적 돌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그 균형이야말로 눈치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이끄는 열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