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모든 사물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보는 위치, 각도, 거리 하나만 달라도 사물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역사를 보는 눈 역시 관점에 따라 갈라진다. 사관이 달라지면 해석도 달라진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연주자, 작곡가, 비평가 — 각자의 관점이 다르고, 그 차이는 예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기록되지 않는다면, 결국 시간 속에 지워지고 만다.
대한민국은 지금 K-POP, K-ART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수많은 연주자, 작곡가, 무대가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정작 이 나라에는 음악을 전문으로 다루는 박물관 하나 없다. 근대 음악사의 귀중한 자료들은 산발적으로 흩어졌고, 수많은 예술인들의 창작 기록은 사라졌다. 무대 위에서 쏟은 수천 수만 번의 연주가 단 한 번의 기록조차 남지 못한 채 잊혀지는 것이다.
"기록하지 않는 예술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 땅의 예술은 찬사를 받고 있지만, 그 찬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기록이 없는 예술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 관점이 해석을 만들듯, 기록은 역사를 만든다. 단발적인 성공은 박수로 끝나지만, 지속 가능한 미래는 기록을 통해 세워진다.
선진국들은 이 점을 누구보다 일찍 인식했다. 예술 기록을 문화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체계적으로 보존해왔다.
미국 스미소니언 재단은 예술가들의 구술 기록(Oral History)을 포함해 무대 예술, 음악, 시각 예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아카이브화한다. 이들은 "한 시대의 예술은 후대의 교과서"라는 철학으로, 공연 한 편, 작품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영국 국립초상화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은 단순한 화가나 모델의 기록을 넘어서, 그 시대 예술계 전체 흐름을 포괄하는 인물 아카이브를 구축해왔다. 이 기록들은 단지 초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활동, 시대 정신, 문화 흐름을 함께 담아낸다.
프랑스 국립시청각연구소(INA, 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는 방송과 공연 예술 기록을 국가 차원에서 보존하는 기관이다. 음악 공연, 연극, 영화, 심지어 뉴스 속 문화 코너까지 꼼꼼히 수집하여 후대 연구자와 예술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들의 예술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에게도 시간이 많지는 않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음악, 오늘 완성되는 작품들, 무대 뒤에서 흘린 수많은 땀방울이 기록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묻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기록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이야말로 미래 예술을 위한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된다.
장혜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한국피아노 학회 이사장과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