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
(사진 굿스테이지) 25일 서울 종로구 진진수라에서 열린 '국립국악원 관치행정 반대' 기자간담회
직무에 대한 평가없이 '국악인 출신' 만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
최근 국립국악원장 인사를 둘러싼 논쟁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전문성’이다. 그러나 이때의 전문성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향한 전문성인가? 가야금을 잘 다루는 연주자, 해금의 기교를 자랑하는 명인, 혹은 국악 이론이나 작곡을 전공한 학자여야만 국립기관의 수장을 맡을 자격이 있는 것인가?
직무에 대한 평가 없이 '국악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문성을 부여하거나, 반대로 행정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예술기관 수장직을 폄훼하는 이분법적 대립은 본질에서 벗어난 소모적 프레임일 수 있다.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렇다. 지금, 국립국악원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국립국악원이 산하 예술단체의 예술총감독 역할을 직접 수행하는 구조라면, 예술적 비전과 창작 능력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립국악원은 보다 복합적이고 전략적인 조직이다. 예산을 확보하고, 해외 문화원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국악의 세계화 전략을 조율해야 하는 기관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전 세대의 감동적 외침에서, ‘우리 것이니까 세계가 함께 누리게 하자!’는 글로벌 통상의 관점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국립국악원장은 예술성과 행정성, 두 개의 날개를 모두 장착한 전략적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예술 생태계의 ‘디자이너’로서 매니지먼트에 능한 국악 행정가, 또는 중립적 관점을 가진 경영 전문가가 조직을 효율적으로 리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전통예술이 특정 계파나 내부 기득권의 굳은 관행 속에만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그 전통의 본질에서 멀어질 수 있다.
눈을 열어 세계를 보는 안목이 필요한 때
프랑스의 국립극장(Théâtre National) 운영은 예술가 출신과 행정가 출신이 번갈아가며 수장을 맡는 교차형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예술적 비전과 제도적 실행력을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설계이다. 이 모델은 특정 집단의 연속적인 지배 구조를 경계하고, 조직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역시 국립예능원에서 예능 전수자와 문화 경영 전문가 간의 협업 체계를 제도화하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 기술자(藝)와 이를 시대에 맞게 포장하고 전달하는 기획자(能)가 공동 책임을 지며 전통의 현재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전통예술이 박제되지 않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우리 역시 이제 묻고 싶다. 전통예술 기관의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전통을 지키는 ‘기술의 전문가’여야만 하는가, 아니면 그 전통을 시대에 맞게 리디자인하고,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전략의 전문가’여야 하는가?
너와 내가 아니라 미래다
국악이 그 험난한 역사를 견뎌내고 오늘의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경이로워해야 한다. 이제는 그 경이로움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조직의 문을 활짝 열고, 내부의 공기를 순환시키며, 외부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리더십이 그래서 필요하다.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처럼, 이제는 관행으로 굳은 논과 밭을 깊이 갈아엎을 시점이다. 그 선택이야말로 용기요, 국악의 운명을 다시 그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 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