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제주의 바람은 거칠고도 깊다. 그 바람을 다스리는 신령이 있었으니, 바로 영등할망(靈登婆娘). 그녀는 매년 정월 초하루 즈음 하늘나라에서 제주 바다로 내려와, 섬 곳곳의 농사와 어업, 바람과 생명을 살피는 여신이었다.
할망이 머무는 기간은 딱 열나흘. 그 기간을 **‘영등잽이’**라 하여, 제주 사람들은 문을 굳게 닫고 불을 삼가며, 조용히 여신의 뜻을 받들었다. 영등할망은 밤마다 바람을 타고 다니며 집집마다 들렀고, 그녀가 흡족해하면 그 해의 바다는 풍어를, 밭은 풍작을 약속했다.
그러나 어느 해, 인간들의 믿음이 흐려지고 제물은 소홀해졌다. 상처받은 영등할망은 열나흘을 채우기도 전에 바다로 향했다. 그녀는 마지막 날,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결에 실어 이별의 말을 남겼다.
"나는 다시 오리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잊는다면,
바람은 길을 잃고 바다는 등을 돌리리라."
이후 사람들은 **‘영등굿’**을 올려 여신의 노여움을 달래며, 이별의식을 치렀다. 지금도 제주 2월의 거센 바람 속에는, 바다를 향해 사라지던 영등할망의 한숨이 실려 있다고 믿는다.
[나레이션 – 서막]
“정월, 바람이 열린다.
하늘의 바람 여신, 영등할망이 열나흘 머무르며
섬과 사람, 바다와 밭을 보살핀다.
그러나 한 해, 인간의 믿음이 가벼웠다.
할망은 조용히 등을 돌렸고, 바람은 길을 잃었다.
이것은 여신의 떠남을 붙드는, 마지막 노래다.”
[아리아 – 영등할망 (메조소프라노 또는 정제된 여창)]
〈나는 바람, 너희의 숨이었으나〉
나는 바람, 너희의 숨이었으나
이젠 잊힌 이름, 이 밤의 메아리로다
돌담을 넘던 나의 바람길,
바다를 적시던 나의 숨결
그 누가 기억하느냐
내게 바쳤던 첫 쌀 한 줌,
문 앞에 놓인 정화수 한 사발
너희의 믿음이 식고 나면
이 바람도 낯선 짐승이 되리라
[합창 – 제주 사람들 (혼성합창 혹은 여성 중심)]
〈바람을 부르며〉
바람이여, 바람이여
되돌아오라, 영등할망이시여
우리가 잊어선 아니 되오
이 바람이 우리 목숨임을
쌀을 올리고 정성을 다하리다
굿을 올려 이별을 막으리다
떠나지 마오, 여신이시여
바람이 잠잠한 그 날까지
우리는, 기도로 길을 여오리다
이 구성은 종교적·무속적 색채와 제주 토속의 서정성을 함께 담고 있으며, 무대 연출 시 바람소리, 물결 효과, 전통 타악기를 활용하면 극적 효과가 극대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