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피카소
원형성의 복원이 예술의 독창성, 창의성, 자생력을 회복
현대사회, 특히 도시화된 사회로 올수록 삶의 방식은 점점 평준화된다. 사람들은 보편적이고 통일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소비자는 광고와 마케팅, 유통 시스템 속에서 정교하게 기획된 상품을 만나고, 핸드폰과 인터넷, 키오스크, 인공지능 등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술을 통해 편리함에 길들여진다. 생활은 더욱 효율적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 고유의 다양성과 고유성은 점점 약화된다.
그러나 예술은 늘 인간의 본질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원초적 삶의 원형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원형성의 복원이 예술의 독창성, 창의성, 자생력을 회복하는 시작점이 된다.
예술사는 이를 증명해왔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토속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입체주의를 창조했고, 코다이와 바르토크는 헝가리의 민속음악을 채집하고 해석하여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 피아졸라는 전통 탱고를 클래식과 재즈 문법으로 재해석해 누에보 탱고라는 장르를 창조했다. 이들은 모두 도시를 떠나 ‘향토성’에서 예술의 씨앗을 발견했고, 그것을 세계 무대에서 꽃피웠다.
우리가 수출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자산으로서의 콘텐츠
해방 이후 우리는 서구 문명과 제도를 빠르게 수용하며 근대화를 이뤄냈다. 철학, 정치, 산업, 예술 모두 서구적 프레임 속에서 모방과 수입을 통해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세계의 기술, 문화, 경제 중심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 기술의 외연이 어느 정도 완성된 지금,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내면의 깊이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지금, 우리가 수출해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정신자산으로서의 콘텐츠이다. 그리고 그 정신의 원류는 바로 ‘원형 문화’와 ‘향토성’이다. 이는 단순히 도시를 벗어나 지방으로 국공립 예술단체를 이전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공급 중심의 일률적 문화 정책에서, 각 지역의 정체성과 원형을 예술로 재해석하는 창조적 복원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안의 편견을 정의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은 그 편견을 깨뜨리고 세계를 다시 볼 수 있게 만드는 독창성에서 비롯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기 위해선 자신만의 강한 원형적 뿌리가 필요하다.
중앙 집중이 아니라 글로컬 세계 예술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앙 집중'이 아니라, 지역에서 출발하는 세계 예술이다. 도시는 소모적이지만, 향토성은 창조적이다. 개별적이지만, 역설적으로 더 보편적인 공감에 닿는다. 따라서 국공립 예술단체의 지역 이전은 ‘거리의 이동’이 아니라, 예술 생태계 전체의 철학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다. 새로운 청중,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정체성의 발견.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문화 정책의 혁신이 아니겠는가.
27일 오후 3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개최된 2025-2029 공연예술 진흥 기본 계획 공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