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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향한 긴 호흡

콩쿠르 시대에서 K-Classic의 시대로

K-Classic News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

 

3월 27일 오후 3시 5시. 공연예술진흥 기본계획 2025~2029 공청회 (대학로 예술가의 집)

 

수출 상품은 우리 원형을 해석해 가공한 신상품으로 

 

대한민국은 단연 '콩쿠르 강국'이다. 세계 유수의 음악 콩쿠르 중 손이 닿지 않은 무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수상자가 있는지 통계조차 낼 수 없을 정도다. 그 정점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을 비롯해 바이올린, 성악, 작곡 등 전 장르에서 최고 권위의 상을 거머쥔 한국인들이 있다.

 

이는 우리 예술의 역량을 보여주는 결정체이며,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쳐 각 개인이 흘린 피땀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성취는 대체로 서양 클래식 음악, 즉 서양의 연주 기법과 레퍼토리를 기반으로 이룩된 것이다. 수많은 콩쿠르 수상자들이 귀국 후 교수가 되거나 현장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순수 솔리스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는 드물다.

 

이제 상황은 또 한 번 바뀌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할 무대는 존재하지만, 해외에서의 연주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익히고 연주한 서양 레퍼토리로는 이미 포화 상태인 현지 시장을 돌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문화 수출국으로의 전환점, 그 새로운 입구에 서 있다. 

 

명곡 하나가 세계 지도를 만든다 

 

이제 우리가 세계 무대에 내놓아야 할 것은 ‘K콘텐츠’, ‘K아츠’, 그리고 ‘K클래식’이다. 단순한 국악 수출이 아니다. 서양 음악의 포맷 안에서 우리 고유의 정서와 언어, 리듬, 장단을 재창조해내는 창작 레퍼토리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훈련 체계가 필요하다. 국악과 양악의 통섭, 우리의 리듬과 장단을 이해하고 체화한 아티스트와 지휘자의 양성이 시급하다.

 

피아졸라가 탱고를 현대 음악으로 탈바꿈시켜 아르헨티나를 세계 음악지도에 다시 새겼듯, 프랑스의 플루티스트 Jean-Pierre Rampal은 플루트를 민속과 고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 레퍼토리로 확장시켰다. 이들은 모두 ‘자기 문화의 원형’을 해석하고 재창조하여 세계적 무대를 사로잡은 작곡가들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도전이 필요하다. 한류의 외피를 넘어, 한국적 콘텐츠의 내면을 세계에 통용되는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창작 쿼트제 도입 필요한 때 

 

지금껏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수입된 서양 교육 시스템과 콘텐츠에 의존해왔다. 그 결과, 정작 우리 문화의 원형에 대한 인식은 교육, 연주 현장에서조차 낮은 편이다. 이 구조를 넘어설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 동시에 세계 무대에 진입하기 위해선 글로벌 매니지먼트 시스템, 대관이 가능한 유럽 극장과의 네트워크, 그리고 소통 가능한 공연 문법 또한 함께 구축돼야 한다. 창작 쿼트제의 도입이 반드시 이뤄저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 시작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공연진흥법과 창작 레퍼토리 시스템을 정비하고, 한국문화원과 해외 네트워크,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협력이 더해질 때, 우리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콩쿠르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문화 수출의 시대’다. 한국예술은  바로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