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탁계석 칼럼] 국립 예술단체의 지방 이전, 창작 생태계를 위한 100년의 선택

지역은 K콘텐츠의 보고 , 함께 사는 공존의 길

K-Classic News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

 


도시는 아파트와 소비 중심의 구조로 재편된 지 오래다. 서울은 이미 초과잉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일자리를 좇아 여전히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몰린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지역은 인구가 빠져나가고, 경제는 위축되며, 환경과 삶의 질은 점점 더 열악해진다. 이러한 흐름을 방치한 채 100년 대계의 국가 경영을 논할 수 있을까. 공존할 수 없는 생태계는 결국 모두가 살아남지 못하는 구조로 귀결된다.

지금은 균형의 힘을 발휘할 때다. 경제적 균형, 인구의 분산, 그리고 문화 창작의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 도시는 생산보다는 소비 중심의 구조다. 창작의 출발점이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세계를 향해 진출하려는 K-콘텐츠의 미래는 단순한 소비가 아닌, 새로운 창작의 힘에 달려 있다. 해방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서구의 예술을 수입하고 모방했다. 이제는 우리 안의 원형을 바탕으로, 한국형 콘텐츠의 뿌리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내야 할 시점이다. K-Arts, K-Classic의 자립은 곧 예술주권의 회복이며,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문화 항로다.

그 원형은 지역에 있다. 각 지역에 산재한 전통문화, 생활예술, 민속 자원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미래 창작의 재료다. 때문에 국립 예술단체의 지방 이전은 단순한 거리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 생태계의 방향 전환이며, 서울 중심 구조에서 탈피한 문화 균형 전략의 출발점이 된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

프랑스는 오랜 시간 ‘파리 중심주의’로 문화 수도의 위상을 누려왔지만, 1980년대 이후 ‘문화 분권’을 선언하며 지방에 국립급 문화기관을 설립했다. 리옹 국립오페라, 마르세유 국립발레단, 스트라스부르의 연극센터 등은 지금도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는 파리의 대체가 아니라 프랑스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문화 분산 전략이다.

독일은 애초부터 연방국가답게 문화 중심이 분산돼 있다. 베를린뿐 아니라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함부르크, 뮌헨 등 각 도시가 독자적 예술 기관과 창작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연방과 주 정부의 문화예산이 지역 자립도를 높인다. 특히 이들 도시의 오페라하우스, 교향악단은 세계적인 평가를 받으면서도 수도권 집중과는 거리를 두고 성장해왔다. 독일은 창작의 핵심이 지역성과 전문성임을 증명하는 국가다.

지역은 창작의 보물창고다

한국 역시 이제 문화 균형의 체계를 설계할 때다. 국립 예술단체를 서울이 아닌 지역에 배치하는 것은, 단지 수도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 아니라 문화 생산의 근본을 재설계하는 전략이다. 향토 곳곳에 숨은 전통과 보물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재창조하는 힘은 오히려 지역에서 더 강하게 살아날 수 있다.

지역은 멀지 않다. 지역은 느린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이다. 우리가 지금 균형을 택하지 않으면, 미래는 중심의 붕괴로 응답할 것이다. 문화예술이 균형을 이끌고, 창작이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한국은 다시 문화강국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