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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노트] 상업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서양 예술사- 르네상스(Renaissance)

2. 메디치효과(Medici effect)와 자율권(Autonomy)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메디치효과가 르네상스를 낳았다?” 

 

메디치효과를 단순히 설명하자면,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분야를 접목하여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기업경영방식을 뜻한다. 즉 서로 관련성이 없을 것 같은 이종 간 교류, 융합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뛰어난 생산성으로 나타나고 새로운 시너지가 창출된다는 경영이론이다.

 

이는 15세기 르네상스를 연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후원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피렌체에 모여든 다양한 분야의 이질적 집단 간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역량이 융합되면서 생긴 시너지가 르네상스를 일으켰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다분히 정치적 성공을 위한 사회적 영향력의 기반을 닦기 위한 코시모 데 메디치의 천문학적 투자는 예술가나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를 자신의 돈을 들여 투자해 후원하지만, 후원의 결과물인 작품의 이름들은 고스란히 예술가나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의 몫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코시모의 이런 후원 방식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내는 물론이고 전 유럽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피렌체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피렌체는 베네치아를 넘어 유럽 최고의 도시국가로 부상할 수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돈이 흐르고 모이는 곳에, 인간이 모여들고 그곳에서 인간의 욕망과 욕구가 분출되기 마련이다. 그 욕망과 욕구는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되고 이해된다. 

 

피렌체의 문화적 현상의 하나가 바로 르네상스이다.

 

이처럼 피렌체로 몰려든 서로 이질적인 분야의 전문가 집단의 교류는 자연스레 ‘메디치효과’라는 결과물의 시너지와 함께 피렌체에서 르네상스의 탄생 배경으로 작용하게 되고, 메디치효과 덕분에 르네상스 시기부터는 예술의 역사에서 작품의 작가명이 본격적으로 후대에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지금으로 치면 한 기업의 사원이나 연구원이 특허 기술을 개발하면 특허권을 사원이나 연구원에게 양도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분위기의 회사라면 기술적 혁신이나 신기술 특허가 수없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금의 우리도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르네상스 약 150년 기간 동안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천재들이 수도 없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메디치효과로 설명된다.

 

“자율권이 보장이 메디치효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메디치효과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자율권이다. 자율권을 뜻하는 영어 Autonomy는 어원은 자동(Auto)으로 자신의 이름(Nome Mia)이 거명(nominate)된다는 뜻으로 메디치효과의 핵심 요소 중 가장 돋보이는 요소이다. 단적인 예로 코시모는 경영 능력이 좋은 이들을 발탁해 유럽 주요 10여 개 도시에 메디치 은행 지점을 열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인 금융업을 크게 확장 및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유럽 전역에 걸친 자신의 금융 사업을 당시의 취약한 통신망으로는 충분히 커버할 수 없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아, 자신을 공동 투자자로 자리매김하고, 혈연관계가 아닌 경영 능력으로 발탁한 이들을 현지로 보내 공동 투자자로 대우하고 자율권을 보장하는 등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취한다. 그는 특히 아들 피에로 (Piero di Cosimo de’ Medici, 1416~1469)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자신의 은행 하급 서기로 일을 시작한 조반니 디 아메리고 벤치 (Giovanni di Amerigo Bench)의 경영 능력을 높이 산 너머지 그를 지금의 최고 경영자로 대우하고 은행 일을 전담시켰을 정도로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는데 있어서 동물적 감각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았다.

 

이처럼 코시모 데 메디치가 이루어낸 메디치효과란 것이, 단순히 이질적인 것들이 섞이면 자연스레 훌륭한 시너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코시모처럼 일을 맡길 사람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탁월한 감각이 경영 현장에서 CEO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 요소라는 점을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 역사가 잘 말해 준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코시모가 이런 기질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그가 당시 예술가를 꿈꿀 정도로 예술가적 기질과 감각을 갖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예술적 감각, 즉 예술의 향유를 통해 형성되는 예술적 감수성이 제공하는 것 중 하나인 ‘누군가를 공감시킬 수 있는 감각’에 기반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처럼 예술적 감각과 인문적 지식에 관심이 풍부했던 코시모는 유명해지기 이전의 무명의 예술가나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를 먼저 알아볼 수 있었으며,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면 훌륭한 시너지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단번에 상상할 수 있었고 일을 실행할 때마다 이점이 크게 발휘되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자신의 은행 지점 경영자들을 친족이 아닌 오직 경영 능력으로만 선택해 자율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절대적인 충성심을 요구했다. 코시모에 의해 발탁된 지점 경영자들은 피렌체로 자신들의 활동 사항을 매번 구체적으로 보고하였고 그 충성의 대가로 상당한 수익을 분배해 벤치의 경우 재산의 규모가 메디치 가문 다음으로 성장할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다. 이처럼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충성심 또한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코시모는 잘 알고 있었으며, 사람의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감각과 자율권이 메디치효과를 가져오는 힘이라는 것을 코시모의 성공 사례가 우리에게 훌륭한 교훈을 준다. 

 

하지만 그가 죽고 아들 피에로가 가문의 수장이 되자, 경영 능력보다는 대거 친족들이 지점장을 맡게 된 이후부터 메디치 은행은 급격히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이런 메디치효과의 핵심을 현대의 경영 현장에서 잘 활용한 기업이 알레시(ALESSI)이다. 이탈아산 주방용품 중 명품으로 인정받는 알레시의 알베르토 알레시 (Alberto Alessi)의 경영 철학도 코시모 데 메디치의 독특한 경영방식과 무척 닮았다.

 

“우리는 디자인에 무엇을 더 원하는가?”, “(Cosa vogliamo di più per il nostro disegno?)”란 의문으로 시작된 알베르토 알레시의 새로운 경영방식은 당시 2차 세계 대전 전후 대량 생산 방식의 산업 구조가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알레시만의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하며 기능성과 편리성만이 강조되던 기존의 주방용품 시장에서 예술적 심미성을 더욱 가미해 ‘강렬한 감각 (Sensazione intensa)’을 선사하는 방향으로 알레시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산업 전 분야에서 대량 생산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1960년대에 들어서자, 이탈리아 내에서 누구나 필요한 주방용품은 모두 갖추게 되어 더 이상의 시장 확대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때 알레시의 감각적 반격이 시작된다. 법학을 전공한 알베르토 알레시(Alberto Alessi)가 가업을 이어받아 알레시를 경영하게 되면서 제품에 자신의 철학을 담기 원했고 그는 단순히 예쁜 디자인의 주방용품이 아닌 예술성이 가미된 주방용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한다. 

 

이것은 “예뻐야 살아남는다!” 기존의 알레시의 전통을 진화시키면서도 단순히 예쁜 디자인의 주방용품을 뛰어넘어 ‘하나의 작품’ 즉 예술로 여겨지는 주방용품 제작을 꿈꾼다. 이처럼 알베르토 알레시의 신념은 자신의 평소 생각을 경영 철학에 접목하게 이르는데 그 방식은 바로 ‘협업’이라는 방식이었다. 당시로서는 업계 최초로 시도한 방식이었다. 

 

이처럼 메디치효과의 본질적 특징인 이질적인 요소가 융합되는 협업이라는 개념을 그의 경영 철학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알베르토 알레시가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이 전하는 교훈을 잊지 않고 자신의 경영 철학에 잘 접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알베르토 알레시의 새로운 경영방식의 방향성은 지금껏 알레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알레시(ALESSI)는 ‘강렬한 감각’을 드러내기 위해 업계 최초로 과감히 사내 디자인 부서를 없애고, 코시모 데 메디치가 실행했던 방식으로 기업명 알레시(ALESSI)보다는 제품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제2의 메디치효과를 견인하기 위해 외부 디자이너 영입 및 협업의 경영방식을 통해 알레시만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는데, 그것의 결과는 엄청났다.

 

“업계 최초로 디자이너의 이름을 제품명으로 사용한 알레시(ALESSI)!”

 

알레시 이전까지 전 세계 디자인 시장의 개념은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1896년에 주장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ever follows function)”라는 개념이었다면, 필립 스탁(Philippe Starck)과 알레시(ALESSI)에 의해 “형태는 욕망을 따른다 (form follows desire)”는 개념으로 변화한다. 우리가 평소 알레시(ALESSI)는 잘 모를 수 있지만, 다음의 제품은 알베르토 알레시가 원했던 누구나 한 번쯤은 ‘강렬한 감각’을 느끼기에, 충분한 강렬한 인상의 제품이다. 

 

 

 

알레시 필립 스탁의 레몬 스퀴저 주시 살리프 (Alessi PSJS Juicy Salif Citrus Squeezer Lemon Juicer di Philippe Starck). 바로 1990년대 산업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쥬시 살리프(Juicy Salif)’는 이탈리아어로 ‘과즙 짜는 기구’를 뜻한다. 이 제품은 기능적으로 볼 때 손으로 레몬즙을 짤 때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실내장식 소품으로는 인지도가 매우 높다. 레몬이나 오렌지를 반으로 자른 후 쥬시 살리프 위에 얹고 돌리면 아래로 과즙이 나오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볼 때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간의 평가는 가혹하다. 이런 세간의 평가를 의식했던지 '쥬시 살리프(Juicy Salif)'에 대해 필립 스탁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Juicy Salif’는 레몬을 짜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대화를 시작하자는 의미다!”

 

가령 어떤 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이 ‘Juicy Salif’를 꺼내 들고 레몬을 짜게 되면, 상대방이 “어! 이거 되게 독특하게 생겼네요?”라고 분명 말할 것이고, 이어서 ‘Juicy Salif’의 소유자가 “그렇죠!”라고 답하며 둘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기능 이상의 것을 ‘강렬한 감각’의 디자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궁색하지만 머릴 끄덕일 수밖에 만든다. 그렇다고 ‘Juicy Salif’가 기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쥬시 살리프는 과즙으로 인한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특수 처리된 유광 알루미늄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알레시(ALESSI)는 ‘Juicy Salif’ 출시 10주년에는 금도금을 입힌 한정판 출시로 이 기념비적인 20세기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인의 아이콘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의 이름을 다시 한번 기념한 바가 있다. 

 

알레시는 필립 스탁(Philippe Starck)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론 아라드(Ron Arad) 등 이 시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기용과 동시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그들의 이름이 기억되는 방식을 통해 제2의 메디치효과를 구현해 전 세계 주방용품 시장에서 자유롭고 독창적인 이탈리아만의 예술성으로 알레시 제품을 명품의 반열에 올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메디치효과(Medici effect)는 기업이나 CEO보다는 일반 사원이나 연구원의 자율권(Autonomy)이 보장될 때 놀라운 혁신과 변화를 이끈다는 점을 메디치효과가 잘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