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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교수의 詩 치료]  멀리 떠나가지 마세요 

K-Classic News  관리자 기자 | 

 

 

 

 

멀리 떠나가지 마세요

- 파블로 네루다

 

 

 

단 하루라도 멀리 가지 마세요, 왜냐하면 -

왜냐하면-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나, 하루가 기니까요  

이건 마치 기차가 다른 데 정차해서 쉬는 줄 모르고,

텅 빈 정거장에 당신을 기다리는 것 같으니까요.

 

단 한 시간이라도 날 떠나지 마세요. 왜냐하면,

괴로움의 작은 물방울이 한 번에 우수수 쏟아져 내릴 테니까요

집을 찾아 헤매는 연기가 내 속으로 스며들어

내 길 잃은 심장을 질식하게 만들 테니까요.

 

아, 당신의 모습이 절대 해변에 녹아들게 하지 마시고

당신의 눈꺼풀이 먼 허공을 보느라 파닥이게 하지 마세요

날 일 초라도 떠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왜냐하면 당신이 가버린 그 순간에

난 온 땅을 미로처럼 헤매며 물을 테니까요

“돌아오실 건가요? 날 여기 죽게 내버려 두실 건가요?”

 

 

Don't Go Far off

- Pablo Neruda

 

 

Don't go far off, not even for a day, because -

because I don't know how to say it: a day is long and

I will be waiting for you, as in an empty station

when the trains are parked off somewhere else, asleep.

 

 

Don't leave me, even for an hour, because

then the little drops of anguish will all run together,

the smoke that roams looking for a home will drift

into me, choking my lost heart.

 

Oh, may your silhouette never dissolve on the beach;

may your eyelids never flutter into the empty distance.

Don't leave me for a second, my dearest,

 

because in that moment you'll have gone so far

I'll wander mazily over all the earth, asking,

Will you come back? Will you leave me here,

dying?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1904-1973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입니다. 반군사적 평화주의자 파블로 네루다는 필명이고 본명은 리카르도 바소알토 Ricardo Basoalto입니다. 13세 무렵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시를 썼으며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독재자 피노체트Pinochet에 의해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Look at me, but look past me 나를 보되 나를 지나쳐 보세요. 

마치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이 말한 “진실을 말하되, 비스듬히 말하세요”를 생각나게 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시에서 종종 – 데쉬dash를 쓰는 것도 그러합니다. 사랑이 눈으로 들어오고, 그대가 마음에 차오르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지고 더 많이 알고 싶어집니다. 모두에게 눈이 있고 모두가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과시된 자기애narcissism에 불과하기도 하고, 어떤 사랑은 자기애를 넘어서기도 합니다. 모든 사랑이 자기애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 딱 머무르지 않고, 보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더욱 다가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놀라운 방식으로 지구에서 살아남은 우리 인간입니다. 시에서도 두드러지는 자기애는 나의 사랑이 아름답기 위하여 평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모습입니다. 이 사랑에는 “미학적인 거리두기aesthetic distance”가 보입니다. 시적 화자가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그대는 먼 곳에 있고 화자는 텅 빈 플랫폼을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리움에 파묻힌 화자에게 저 멀리 떨어진 대상은 가까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 표정, 몸짓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화자와 대상의 거리는 비와 연기로 점점 더 뿌옇게 가려집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떠오르는 그대와 나 사이의 거리. 그래서 비로소 “아름다운 사랑의 거리”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애의 표상입니다. 사랑에 대한 내 아름다운 마음이 당신의 완벽한 모습을 훼손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 발현되는 미감이기 때문입니다(Joyce Parker). 가까이 보면, 가까이 갈수록 결점이 보입니다. 사랑의 딜레마는 “그립다, 그리워.” 부르면서도 정작 가까이 마주하게 되면 사그라지곤 합니다. 내 안으로 불러들인 사랑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사랑을 늘 저 멀리에 둡니다. 그게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처럼, 오래 보고, 자세히 보게 되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관계에서 자기애에 매몰된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자신이 추억하는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일상에서 동떨어지게 만드는 것이죠. 많은 사랑이 그러하고, 이 시의 사랑도 그러합니다. 멀리 있는 사랑이기에 넘쳐났고, 멀리 보느라 이곳을 기만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They look at me but look past me. 그들은 나를 보지만 나를 지나쳐 봅니다. 

대부분은 나를 보되 나를 지나쳐 봅니다. 그들은 저 멀리 자신들이 만든 환상을 봅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기narcissism 때문입니다. 여기, 내 가까이에서 주름 하나하나를 낱낱이 드러내고 흘러내리는 살과 손톱의 거스러미, 몸의 냄새를 풍기는 그대를 두고두고 아름답다 하는 것은 정말 다른 경지의 사랑입니다. 이와 같은 시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대개 시인의 보기 아니, 우리의 보기의 사랑은 자기애의 현현epiphany이 됩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애를 넘어선 “다가가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스치면 우연 스며들면 운명”이 됩니다. 그래도 아직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희생”입니다. “삶의 무늬가 참 예쁘다” 하는 그 지점입니다. 

 

 

원종섭 Won Jong-Sup            

시인, 제주대 교수
제주대 영미시전공 교육학박사
WVC in Washington TESOL Edu
NAPT 미국시치료학회이사, 시치료전문가
한국시치료연구소 제주지소장
중학영어1, 고등학교관광영어교과서집필
사)제주마을문화진흥원 연구소장
한국UNESCO연맹 문화교육전문위원

한국예술비평가협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