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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노트] 상업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서양 예술사. 르네상스(Renaissance)

“르네상스적 혁신은 무언가를 싹 다 바꾸는 것이 아니다!”

K-Classic News 황순학교수 |

 

3. 르네상스가 전하는 혁신의 본질 

 

“르네상스적 혁신은 무언가를 싹 다 바꾸는 것이 아니다!” 

 

서양 예술사에서 두 번의, 혁신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그것을 고전주의(Classicism)라 지칭한다.

첫 번째 고전주의는 중세 암흑기를 극복한 15세기 르네상스(Renaissance)의 혁신이며, 두 번째 고전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재(舊體制)) 즉 절대왕정 체재의 몰락을 가져온 혁신인 18세기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이다. 여기서 고전주의(Classicism)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와 예술을 뜻하며, 이처럼 고전주의, 즉 클래식(Classic)은 유럽의 역사에서 늘 혼돈의 시기를 정화하는 요소로 고대 그리스가 소환된다는 점이다.즉 서양 역사에서 혁신은 늘 자신들의 과거 즉 서양 인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의 본향인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순환적 구조의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혁신의 의미는 몇 년 전 모 회장님께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마누라 빼고, 싹 다 바꿔라!”는 발언과 그 기업의 성공 신화 때문에 혁신은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의미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런데 진정한 혁신의 의미는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유명상표 이름 앞에 흔히 발견되는 메종(Maison)이란 단어, 즉 프랑스 말로 집(家)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발견된다. 이 메종(Maison)이란 단어는 많은 명품 업체의 역사적 혁신의 시작은 기존의 것을 싹 다 바꾸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가업, 즉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업화했음을 말해 준다. 이런 이유로 메종(Maison)은 점포를 뜻하는 단어로 자리 잡는다. 즉, 메종(Maison)이란 단어는 가업을 뜻한다. 그럼, 가업은 왜 누군가에게 가업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르네상스가 전하는 혁신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이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구를 더 닮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 발견을 위해 누군가에 묻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을 찾아 어떻게 발현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고대 그리스) 중 자신이 누구를 더 닮았는지는 자신이 더 잘 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물려준 나만의 장점을 새롭게 바라봐야 훌륭한 정체성이 발현된다. 왜냐하면 모든 브랜드 즉 메종(Maison)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능력 즉 자신만의 장점을 가업으로 진화시킨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점에 비추어, 하나의 가족 공동체 DNA 안에는 그 가문만이 잘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동종 업계의 다른 가문이나 다른 인물들보다 탁월했던 무언가가 이식되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며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은 선천적 역량을 기반으로 후천적 학습의 결과와 함께 대를 이어 다른 모습과 형태로 이어지지만, 혁신을 위해 중요한 점은 선천적 기량과 역량을 먼저 발견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다. 

 

결국 르네상스적 혁신은 혁신을 뜻하는 영어 Innovation의 개념을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 아닌, 어원 그대로 ‘Rinnovare ( ~ 연장한다)’ 관점에서 기존의 것이나 나만의 장점을 발견해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영어 ‘리뉴얼 (renewal)’이란 개념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즉 진정한 혁신의 의미는 기존의 것을 싹 다 바꾸는 것이 아닌,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리뉴얼 (renewal)의 개념으로 무언가를 연장한다는 뜻에 그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질 않을 Classic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에르메스!” 

 

진정한 혁신은 기존의 것을 싹 다 바꾸는 개념이 아닌 무언가를 발견해, 생명력을 계속해 연장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는 개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가업의 고유 능력을 리뉴얼(Renewal)해, 가업의 전통적 가치와 생명을 연장한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품 업체인 에르메스이다. 위의 브랜드 로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르메스는 마구 용품 브랜드로 출발해 오늘날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명품 업체로써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핸드백과 스카프를 비롯해 의류, 구두, 시계 및 향수, 테이블 웨어 등 14개의 라인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며 다른 브랜드를 선도하는 기업이다. 

 

파리 중심가에 자신의 가게를 열기를 꿈꿔 오던 티에리 에르메스는 어느 날 파리 중심가에서 루이 필리프 왕의 행렬을 향한 공화주의자들이 테러로 인해 파리 중심가 시내에서, 많은 시민이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파리 중심가의 점포들의 임대료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자, 티에리 에르메스는 작은 점포 규모로 마구상을 열어 말 안장과 마차 부속품 등 당시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말과 마차에 쓰이는 마구 용품을 만들며 사업을 시작한다. 그의 신념은 처음 출발부터 남달랐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는 듯이 튼튼하고 완성도 높은 마구와 안장 고삐 등을 말의 몸과 탑승자의 신체에 서로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부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남다른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다. 

 

이 같은 그의 신념은 곧 빛을 발휘하게 되는데, 1842년에 루이 필리프의 아들 오를레앙 공작이 마차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곧이어 당국이 사고 원인 조사에 들어가 보니 마감 상태가 불량한 안장이 말을 찔러 말이 놀란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마구 용품의 마감처리의 완성도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는데 이 사건은 결국 에르메스가 제작한 마구 용품의 높은 완성도를 다시 보게 되는 결과를 낳으며 당시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마구상 중에서 에르메스가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가는 계기가 된다. 이후 1867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에르메스는 출품작 중 1위를 거머쥐며 명성을 더욱 쌓아갔고 1878년 박람회에서는 티에르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우승하며 에르메스 유명세는 전 유럽에 알려진다.

 

이를 계기로 전 유럽 왕실과 귀족들에게 마구 용품들을 납품하게 되고 1902년 샤를 에밀 에르메스의 두 아들 아돌프와 에밀 모리스가 가업을 이어받게 되는데, 그들은 이제 에르메스를 전 세계 시장에 확대 공급하는 것을 꿈꾼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 당시 에르메스는 프랑스군 기병대에 안장을 공급하며 안정적으로 가업을 이어 가던 차에, 둘째 아들 에밀 모리스는 사업 시장 확장을 위해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자동차 캐딜락을 보게 되고, 캐딜락 오픈카 후드에 달린 지퍼의 기능성과 심미성에 눈을 뜬 에밀 모리스는 당시 지퍼 특허권 소유자인 조지 에드워드 프렌티스로부터 자동차 이외의 지퍼 독점권을 사들여, 프랑스에 지퍼를 최초로 들여와 당시 프랑스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부가티와 손잡고 자동차 여행용 전용 가방을 제작하고 출시하는데 가방 입구를 둥글게 하고 지퍼를 단 모습의 가방으로 당시의 부가티와 잘 어울리는 감각적인 모습으로 볼리드 백이란 세계 최초로 지퍼가 달린 가방을 시장에 출시한다. 

 

[당시의 부가티 타입 57SC 모델의 모습,

 

2010년 경매에서 한화 464억 원에 팔리며 여전히 세계 최고가를 자랑하는 자동차 중 하나이다.]

이처럼 에밀 모리스는 부가티와의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미국 여행을 통해 당시 시대의 변화 즉 자동차 시대의 개막을 남들보다 빠르게 예상하고 마구 용품을 확장해 자동차 여행을 위한 여행 소품 특히 가방, 벨트, 장갑 등 기존의 마구 용품 사업의 주 소재인 가죽을 다양한 분야로 확장 시키며 가업이었던 마구 용품 제작의 생명력을 연장한다.

 

 

볼리드 백의 특징 중 하나는 위의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부가티 자동차의 둥근 곡선미를 살리며, 세계 최초의 지퍼 장착 가방이라는 점과 함께 가방 상단에 타원형의 가죽이 덧붙여져 고객의 이름을 새겨주며 여행용 가방의 목적에 충실하게 디자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에르메스는 이전 마구 용품 제작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대량 생산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한 땀 한 땀 수작업의 전통적 방식을 가방 제작에서도 고스란히 이어가게 된다. 즉, 마구 용품에서의 완성도와 심미성의 상징인 새들 스티칭 방식을 가방 제작에도 응용해 에르메스만의 고급스러움과 아름다움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으며 사업의 생명력을 연장한다. 

 

[새들 스티칭 바느질 방식으로 제작된 에르메스 미니 베안 지갑의 모습]

 

당시 에르메스만의 고유 제작 방식인 새들 스티칭 공정은 미싱 스티칭에 의한 대량 생산 공정보다 제작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져 돈이 있어도 구매하기 힘든 희소성을 자랑하며 대중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후 모든 명품 업체는 이런 에르메스의 새들 스티치 바느질을 따라 하게 된다. 이처럼 에르메스만의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고 싶었던 에밀 모리스의 또 다른 역작은 ‘필레 드 셀’이란 가죽 스트랩에 말 재갈 모양의 실버 장식을 단 팔찌이다. 마구 장식에 사용하던 최고급 금속 장식을 팔찌에 그대로 가죽끈과 함께 투영해 마구 용품 업체이었던 에르메스의 전통과 역사를 연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팔찌이다.

 

[필레 드 셀]

 

현재에도 이 ‘필레 드 셀’의 전통적 영향력은 에르메스와 애플 워치의 콜라보레이션에서도 확인된다. 

 

[Apple Watch series 5 Hermes edition]

 

 이처럼 마구 용품에서 시작해 마구 장식에서 쓰이던 금속과 가죽 소재를 최대한 활용해 에밀 모리스는 팔찌에 이어 시계 라인을 선보이게 되는데, 당시 회중시계가 대부분이었던 시장에 1928년에는 슬라이드 방식의 가죽 덮개가 장식된 ‘에르모토’를 출시하는데 이 시게는 가죽 덮개가 시계 앞면을 덮으면서 시계를 여닫는 독특하고 휴대가 편하며 아름다운 시계였다.

 

 

[에르메스의 공식 첫 시계 Eremoto]

 

에레메스는 에레모토 이후 손목에 찰 필요가 없는 또 다른 독특한 디자인의 벨트 시계를 선보이는데, 이 시계는 당시 과격한 팔 동작으로 인해 손목에 찬 손목시계의 고장이 잦던 골퍼들에게 매우 사랑받게 된다.

 

 

[에르메스의 벨트 시계/ 허리에 벨트를 맨 상태에서 버클을 누르면 숨어 있던 시계가 아래로 열리며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마구 용품에 쓰이던 주요 소재인 가죽과 금속 장식은 고스란히 에르메스의 정체성과 원천기술 그리고 시그니처로 이어지며 에르메스의 생명력은 연장된다. 마구 용품이 또 다른 변신의 사례는 승마용 블라우스에 쓰이던 실크 섬유 소재다. 이 실크는 지금의 에르메스에서 가방과 함께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품목인 스카프로 변신한다. 당시 실크 고장으로 유명했던 리용에 실크 생산 라인을 갖추고 실크 장인들을 영입해 1937년 에르메스 100주년을 기념해 국제 박람회에 에르메스 첫 실크 스카프인 ‘카레’를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는다. 

 

[에르메스 첫 실크 스카프인 ‘카레(carré)’]

 

스카프의 본래 이름은 프랑스어로 ‘주 데 옴니버스 에 담메 블랑쉬; Jeu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로 ‘모두를 위한 게임과 하얀 옷의 숙녀’란 뜻으로 당시 에밀 모리스가 즐겨 하던 보드게임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스카프의 규격이 가로, 세로 90cm로 정사각형 규격이었던 관계로 이후에는 프랑스어로 정사각형을 뜻하는 ‘카레(carré)’로 불리게 되며 에르메스의 스카프 성공 신화를 열어간다. 이처럼 에르메스 브랜드가 전하는 교훈은 원래 가업이었던 마구 용품 제작에서 독보적이었던 가죽 가공 기술과 금속 장식의 완성도 높은 품질 그리고 그것들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려 했던 신념을 바탕으로 마구 용품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대 변화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들만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시대 변화에 맞게 적용해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으로 가업과 사업의 생명력을 연장해 진정한 메종(Maison)기업이 갖는 전통적 가치를 새롭게 연장한 혁신이었다는 점이다.

 

혁신은 마누라 빼고, 싹 다 바꾸는 것일 수만은 없다. 싹 다 바꾸려고만 하면 자신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릴 수 있으며, 이점을 보완하기 위해 또 무언가를 바꿔야 하고 그러다 보면 바꾸기만 하다가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발견해, 이전 신본주의 세상을 리뉴얼(renewal)해 시대를 변화시킨 것처럼, 혁신은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싹 다 바꾸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장점을 제대로 발견해 극대화하며 생명력을 연장해야 한다는 점을 르네상스가 우리에게 잘 말해 준다. 르네상스와 에르메스는 우리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 즉 클래식이 갖는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은 지금의 시대에도 잘 접목하게 되면 새롭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말해 준다.

 

모든 새로움과 혁신의 시작은 서양 예술사가 말해 주듯이, 자신의 내면(고대 그리스)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아름다운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클래식이 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면, 개인이나 기업의 생명력 역시 멋지게 연장될 수 있다며 지금, 이 순간도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