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황순학의 문화노트] 상업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서양 예술사-바로크(Baroque)-

5. “바로크적 본능과 카라바조가 연상되는 베르사체”

K-Classic News  황순학교수  |

 

앞선 시간을 통해 바로크 예술의 특징 중 하나는 화려한 곡선미를 바탕으로 매우 인공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볼륨감이라는 점을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의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베르니니의 다비드가 보여주는  ‘다이내믹(Dynamic)’이란 점도 알게 되었다.

 

이런 바로크적 다이내믹 예술의 조각가가 로렌초 베르니니라면, 바로크 회화 분야에서 다이내믹을 구현한 화가로는 카라바조를 꼽을 수 있다. 카라바조 역시 앞서 살펴본 베르니니의 사례처럼 10만 리라(Lire) 화폐의 주인공이다. 

 

 

 이처럼 카라바조가 이탈리아 내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크 회화에서 신기원이 된 ‘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기법을 창시한 자이기 때문이다. ‘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기법이란 ‘키아로’는 ‘밝음’을 뜻하고 ‘스쿠로’는 ‘어둠’을 뜻하는데 영어로 말하자면 Black & White 이다. 즉, 밝음과 어둠이란 서로 다른 상극의 요소를 강력한 대비를 통해 다음의 작품처럼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다이내믹하게 전개해 관람자의 뇌리에 깊은 인상으로 심어 주는 기법이다.

 

[의심하는 도마]

 

위의 그림은 요한복음 20장 25절의 내용 즉,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서 못 자국을 보고 거기에 손가락을 넣어 보며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소.”라는 도마의 말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림의 배경은 스쿠로 즉 어두운 배경이고 작품의 주제가 되는 창에 찔린 예수의 상처를 확인해 보는 도마의 손가락 주위는 키아로 즉 밝게 무대 조명이 비추듯 어두운 배경과 강력한 대비를 이루어 결국 말하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가 더욱 선명하게 강조되며 다이내믹한 모습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그림은 이처럼 관람자에게 성서의 내용을 읽지 못하더라도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지금의 증강 현실처럼 성서의 내영을 사실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주고 그 주제에 집중하게 한다.

 

당시 교육받지 못한 일반인들의 경우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고 성경 또한 당시 집 한 채 가격인지라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구교의 상징 교황청으로서는 신자들의 신교로 이탈을 걱정하며 경계하던 반종교개혁의 시대였다. 구교와 신교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교황청은 카라바조의 작품을 글을 읽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구교를 위한 교육용 홍보용 자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교황과 교황청의 입장에서 신자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카라바조의 키아로스쿠로 기량은 당시로서는 구세주나 다름없을 정도로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나머지 교황청은 평소 품행이 좋지 않아 살인까지 일삼았던 카라바조의 기행을 적극적으로 감싸주고 그를 총애하기까지 이른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현대에도 연극 무대나 영화에서 관객들의 집중력을 높일 목적으로 종종 핀 조명 효과를 이용해 구현된다. 그만큼 강력한 화면 몰입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사례로 들 수 있는 조 라이트 감독 연출의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이다.

 

 

아무리 봐도 영화의 장면이 앞서 살펴본 카라바조의 작품이 주는 몰입력을 위한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작품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400년 전 기법이 아직도 유효하게 작동하며, 현실 세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매우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빛과 어둠이라는 대비를 통한 바로크적 인공미가 효과적으로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이런 카라바조의 작품과 기행으로 가득했던 카라바조의 파란만장한 삶과 닮은 브랜드가 바로 ‘베르사체(Versace)’ 이다. 먼저 베르사체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로고를 살펴보자.

 


 
로고에서 알 수 있듯이 카라바조의 작품이라도 된 듯이 키아로스쿠로 즉 흰색과 검은색으로 강력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로고의 심볼은 ‘메두사’임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카라바조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메두사라는 점이다.

 

 

위의 그림에서 카라바조는 메두사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대체해 묘사하고 있다. 메두사는 머리가 잘렸지만 죽기 전 침묵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여전히 의식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잘려 나간 목에선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고 입은 벌려져 이빨을 드러낸다. 눈꼬리를 찌푸리며 또렷한 눈매로 상대를 아찔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카라바조의 작은 염원이 담겨 있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 죽음에 관한 상상이 아니었겠느냐는 생각이다.

 

카라바조는 1606년 말다툼 끝에 상대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후 현상금이 걸린 채 로마에서 도망치며 빠져나온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폭력적 상황들에 개입되었고 1610년 사망하기 전까지 언제가 사형으로 자신의 목이 잘라 나갈 것이 두려워한 나머지 죽기 전 몇 년 동안은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했다 한다. 그의 죽음에 관한 단상을 다음의 또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란 작품으로 그가 죽은 해인 1610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이 그림 역시 메두사처럼 죽은 골리앗의 표정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잘려 나간 골리앗 목에선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지만, 이 작품 역시 메두사처럼 마지막 순간을 여전히 의식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자신을 메두사나 골리앗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적 인물로 그리면서도 끝까지 죽기를 거부하고 영원불변을 꿈꾼 카라바조의 염원이 담겨 있어 보여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바로크 시대 유럽의 절대 군주들이 교황으로부터 얻어낸 왕의 절대권력이 영원하기를 꿈꿨듯이 카라바조 역시 자신의 천재적 기량을 뽐낼 시간이 너무 짧았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한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나머지 메두사나 골리앗처럼 사후에도 강렬한 인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를 의식이 있는 듯 묘사하고 있다. 종교개혁 세력에 맞서 로마 가톨릭 수호의 첨병으로 교황청의 사랑을 받던 카라바조였지만, 기괴한 품성과 품행으로 인해 사후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강력한 대비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다이내믹하게 표현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후대에도 계속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풍운아 같았던 카라바조와 삶을 닮은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잔니 베르사체를 꼽을 수 있다. 앞서 베르사체 로고의 흑백 대비, 브랜드 심볼이 메두사라는 점에서 카라바조와 공통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듯이, 베르사체가 세상에 던진 강렬하고 섹시하며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은 바로크가 지향하던 인공적이며 화려하고 육중하며 다이내믹한 바로크 예술의 특징과 무척 닮아있다. 과도한 장식성에 기반하는 바로크적 인공미가 느껴지는 것들의 경우 대개의 일반인은 착용하거나 사용하기를 꺼린다.

 

즉 베르사체를 입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베르사체가 빛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공연 무대처럼 강렬한 조명 빛 아래에서 더욱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평소 연극, 오페라, 발레 등 공연 예술에 열정이 가득했던 베르사체는 여느 디자이너와는 다르게 무대 의상을 기반으로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창조해 나간 특이한 디자이너였다. 이런 이유로 1997년 그가 죽기 전까지 프랑스의 발레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와의 협업을 통해 수많은 오페라와 발레 의상을 디자인하여 발표해 큰 호응을 받았다. 베르사체 디자인 콘셉트가 무대 의상을 기반으로 하기에 강렬한 색상과 눈에 띄는 화려한 프린팅 패턴 그리고 흔히 쓰이지 않는 소재인 메탈과 플라스틱, 고무, 가죽 등을 이용하는 특징을 갖는 점이 베르사체의 매력이다. 다음은 잔니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오페라 의상이다.

 

 

위의 첫 번째 무대 의상은 바로크 특유의 곡선미를 살린 패턴과 함께 강렬한 흑백의 대비를 이루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디자인임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무대 의상이다. 두 번째 무대 의상에선 바로크를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해 바로크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함께 현대적 패턴으로 디자인한 무대 의상이다. 이처럼 바로크와 밀접한 관계 선상에 놓인 베르사체는 17세기 유럽 왕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로크 패턴 프린트 셔츠에서 그들의 시그니처를 바로크로 결정한 듯 보인다.

 

 

예술사를 알지 못하면, 베르사체가 마치 조물주라도 된 듯이 새로운 패션 콘셉트를 선보였다 오해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예술사를 알게 되면 잔니 베르사체가 그의 삶의 터전에서 오래전 탄생했던 바로크 예술과 카라바조의 열렬한 신봉자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으며, 오페라와 발레가 탄생한 시기 또한 바로크와 겹치며, 잔니 베르사체에게 오페라와 발레는 우리의 판소리나 궁중 무용이며, 이러한 그들 고유의 전통문화와 예술은 한국처럼 단절되지 않고 유럽에서는 후대로부터 계속 사랑받고 있으며, 계승 발전되어 오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