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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재독여성작곡가 박영희, 독일 연방공로십자훈장 수훈

[노유경 율모이] 현대음악사적 의미의 확인과 현대음악의 문화정치학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율모이]  재독여성작곡가 박영희, 독일 연방공로십자훈장 수훈

현대음악사적 의미의 확인과 현대음악의 문화정치학

 

 

여성 이주 작곡가의 개척과 공로

 

기쁜 소식을 기록합니다. 작곡가 박영희 (Younghi Pagh-Paan) 선생님이 2025년 10월 29일, 브레멘 시청에서 독일 연방공로십자훈장(Bundesverdienstkreuz)을 받습니다. 이 훈장은 독일 연방대통령 명의로만 수여될 수 있는 국가 최고 등급의 민간 공훈훈장으로, “이 사람의 시간이 이 사회의 구조를 바꾸었다”고 국가가 공식 언어로 승인하는 방식입니다. 예술적 성취 자체가 아니라, 그 성취가 한 도시의 청취, 제도의 언어, 교육의 관습, 그리고 문화기억의 지층을 실제로 변형시켰는지 그 구조적 영향이 장기적으로 입증된 경우에만 부여됩니다. 다시 말해, 이 훈장은 결과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시간이 남긴 구조적 변화에 대한 국가적 인정입니다.

 

그렇다면 독일은 무엇을 본 것인가? 한국 출신의 여성 작곡가를 “외래적 색채”로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박영희의 음악을 이 땅의 제도, 담론, 후속세대를 움직이는 한 축(軸)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음악은 서구 언어 위의 장식이 아니라 서구 언어 그 자체의 구조를 재배열하는 압력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이번 수훈은 바로 그 조용하고 누적된 구조 변형을 국가가 제도적 언어로 승인하는 사건입니다.

 

이번 수훈은 이미 여름에 내부적으로 결정되어 브레멘 시청을 중심으로 비공개 준비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당시에는 행사의 존재 자체가 대외적으로 비공개 상태에 놓여 있었으나, 최근 들어 작곡가 공식 홈페이지와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의 공지를 통해 행사 일정과 수훈 사실이 공식적으로 대외에 공표되었습니다.

 

왜 박영희인가 — 공로의 구조

 

박영희의 이번 수훈은 한 작곡가의 성공담에 대한 장식적 포상이 아닙니다. 그녀의 음악은 수십 년에 걸쳐 독일 현대음악의 내부에서 청취의 기준, 교육의 언어, 제도의 관행, 그리고 미학적 담론의 방향을 실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는 외부에서 객관화된 통계나 수상 경력의 나열로만 설명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창작과 사유가 제도의 심층에 침투하여 구조를 변형시킨 사례라는 점에서 이번 훈장은 분명한 제도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 변형의 첫 번째는 청취의 문법을 바꿔놓은 사건입니다. 박영희는 동양의 미학과 서구의 현대어법을 단순 병치하거나 이식(移植)하지 않고, 서구 언어 자체의 배열과 문법을 다시 짜는 방식으로 작동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녀의 음악은 “한국적 색채를 보여준 작품”이 아니라, “독일 현대음악이 이후를 사유할 때 건너뛸 수 없는 기준점”으로 자리했습니다. 독일은 바로 이 지점을 확인하고, 그것을 국가의 이름으로 승인한 것입니다.

 

왜 지금인가 — 개인의 시간과 제도의 시간이 만나는 시점

 

국가는 공로를 ‘발생과 동시에’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술적 혁신은 발생 순간에는 사건으로 보이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구조적 변화로 판명되기 때문입니다. 박영희의 음악이 독일 사회에 남긴 영향 역시 한 두 작품의 일시적 성취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축적과 침투와 변형의 결과로만 포착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이 수훈은 “지금 막 평가된 성과”의 표지가 아니라, 이미 되돌릴 수없게 정착된 변화의 확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영희의 음악이 남긴 작용은 이제 개별 작품의 성취를 넘어, 청취의 방식, 음악교육과 훈련의 어법, 문화를 업고 사유하는 제도의 언어, 후속 세대의 작곡 실천에까지 이미 구조적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더 이상 개별 평론의 진술로 두지 않고 제도적 언어로 확인하고 승인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국가는 지금 이 결정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훈장은 박영희의 삶과 음악이 “이제서야 인정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간의 노고와 축적된 성취가 국가적 차원에서도 마침내 확인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일생에 걸쳐 쌓아온 음악적 실천이 공공의 언어로 승격되어 기록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이번 수훈은 박영희라는 예술가의 여정에 합당한 자리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예술가의 업적을 행사 이후의 수사적 언어로 요약하는 습관 속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박영희의 이번 수훈은 사후감탄으로 봉합될 성질의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시대의 구조적 변화를 국가가 승인하는 의례이며, 그 승인 앞에서 글은 박수의 언어가 아니라 증언의 질서를 갖춰야 합니다.

 

끝으로, 이번 독일 연방공로십자훈장 수훈 사실을 한국 사회에 공식적으로 알리며, 이 영예가 지닌 의미를 함께 공유합니다.

 

일시: 2025년 10월 29일, 11:00

장소: 브레멘 시청(Rathaus Bremen)

행사: 브레멘 시장 Dr. Andreas Bovenschulte 박사에 의한

박영희(Younghi Pagh-Paan)의 독일 연방 공로 십자훈장( Bundesverdienstkreuz ) 

참석: 제한 50인(시청 시장의 초대를 받은 50명만 입장합니다) 

(당시 비공개였으나 현재는 작곡가 홈페이지 및 주독일 한국대사관 경로로 공개 공지됩니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국제독일교류협회 대표,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겸 단장,  

Ynhovon1@uni-koeln.de ,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 www.kyul.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