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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경 율모이] Partner Country Korea at ANUGA 2025 ,한국, 세계 식탁의 언어로

Korea in the Language of the Global Table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율모이]

 

제목: Partner Country Korea at ANUGA 2025

한국, 세계 식탁의 언어로/ Korea in the Language of the Global Table

장소: 독일 쾰른 2025년 10월 4일-8일 

 

 

아누가(ANUGA, Allgemeine Nahrungs- und Genussmittel-Ausstellung) 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식품 산업 전문박람회이다.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처음 열렸으며, 1951년 이후부터는 쾰른(Cologne)의 쾰른메세(Koelnmesse) 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이 박람회는 ‘음식 산업의 올림픽’이라 불리며, 전 세계 식품기업, 유통업체, 바이어, 셰프, 학자, 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아누가는 단일 전시가 아니라 10개의 전문 테마 전시(10 Trade Shows) 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Fine Food (고급 식품),– Meat (육류),– Dairy (유제품),– Bread & Bakery,– Drinks (음료),– Frozen Food (냉동식품),– Organic,– Hot Beverages,– Culinary Concepts,– Food Service Solutions 등이 그것이다.

 

이 각각의 전시는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세계 식품 산업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2025년 현재, 아누가는 약 200여 개국 8천 개 이상의 기업, 그리고 16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식품 박람회로 자리 잡았다. 행사를 주최하는 쾰른메세(Koelnmesse GmbH) 는 독일의 대표적 국제 전시장 운영기관으로, 식품·디자인·IT·환경 등 80여 개의글로벌 산업 박람회를 개최한다. 아누가는 그중에서도 가장 전통 있고 영향력 있는 행사로, 국가별 산업 전략과 문화적 정체성이 가장생생하게 드러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2025년의 아누가에서 한국이 ‘주빈국(Partner Country)’으로 초청된 것은 한국 식품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신뢰의 증거이자, K-푸드가 단순한 수출품이 아니라 ‘문화와 산업이 결합된 국가 브랜드’ 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흐린 하늘 아래의 인산인해

 

2025년 10월, 쾰른의 하늘은 낮고 흐렸다. 가을비가 그칠 듯 말 듯 공기를 눅눅하게 적시고, 쾰른메세(Koelnmesse)의 유리문 앞에는 사람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졌다. 트롤리를 끄는 바이어, 명찰을 단 기자, 카메라를 든 젊은 관람객들이 하나의 강물처럼 입구를 통과해 흘러들었다. 세계 최대의 식품 박람회 아누가(ANUGA), 그 중심 무대에 올해는 한국이 주빈국(Partner Country)으로 섰다. 전시장입구의 간판은 분명했다. “Flavor Meets Trend — 한국의 맛, 세계의 트렌드와 만나다.” 이 문장은 단순한 홍보 구호가 아니라 하나의 선언같다. 한국이 더 이상 ‘이국적인 음식의 나라’로 머무르지 않고, 세계 식탁의 문법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외교에서 문화로 — 개막식의 언어

 

개막식은 오전 10시, 독일식 정밀함 속에서 시작됐다. 무대 위에는 여러 얼굴이 섰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장의 알로이스 라이너(Alois Rainer), 쾰른 시장 헨리엣테 레커(Henriette Reker), 쾰른메세 대표 게랄트뵈제(Gerald Böse), 사무총장 올리버 프레제(Oliver Frese), 박진선 한국식품산업협회장 (샘표 식품 대표), 이효율 풀무원 의장,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그리고 한국의 송미령(Song Mi-ryeong)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송 장관의 연설은 정치적 수사보다 명확한 철학으로 들렸다. “한국의 식문화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유기적 생명체이며, 세계 미식의 언어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산업 전략이 아니라 문화의 비전으로 받아들여졌다.그는 ‘음식’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 ‘상품’을 넘어 대화의 언어로서의 식문화를 말하고 있었다.. 이날 개막식에는 임상범주독일대사민재훈 본(Bonn) 분관 총영사도 참석했다. 그들의 참여는 외교와 문화, 정책과 현장이 한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상징이었다. 아누가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이 세계와 대화하는 장이었다.

 

 

현장의 발걸음 — 송미령 장관의 순회

 

컨퍼런스가 끝나자 송미령 장관은 곧장 전시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한국관의 첫 부스부터 마지막 부스까지 하나하나 찾아가 인사하고 질문을 건넸다. “오늘 반응이 어땠나요?” “독일 시장에서는 어떤 점이 가장 어렵습니까?” 그 물음은 형식이 아니라 경청이었다. 어떤 부스에서는 직접 시식했고, 어떤 부스에서는 현장 스탭에게 “한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힘내달라”는 격려를 전했다. 그 짧은 대화들이 쌓여 한국관 전체에 조용한 긴장감과 자부심이 번졌다. 그녀의 발걸음은 보고를 위한 순시가 아니라, ‘동행의 현장학’에 가까웠다. 정책보다 태도가, 권위보다 인간이 남는 장면이었다.

 

한국관 — 기술과 감성의 교차점

 

5.2홀, 한국관은 올해 어느 때보다 넓고 밝았다. 입구 위에는 커다란 태극기(Taegukgi) 가 걸려 있었고, 부스 곳곳에는 삼색(blue-red-white) 의 리듬이 살아 있었다. 패널에는 구름무늬와 단청을 응용한 한국 전통 문양이 섬세하게 장식되어, 현대적 구조물 속에서도 고유의 미감을 드러냈다. LED 화면에는 ‘KOREA’라는 영문 로고와 함께 한글 자모가 유연하게 흘러가며 빛을 냈고, 그 앞에서는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장면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국가의 얼굴이 빛으로 말하는 순간이었다. 김치(Kimchi), 고추장(Gochujang), 떡볶이(Tteokbokki), 라면(Ramyeon), 전통차(Traditional Tea), 그리고 식물성 단백질, 기능성 건강식품, 프리미엄 즉석식품...한국의 전통과 기술, 장인정신과 산업이 한 전시장 안에서 공존했다. 스탭들은 능숙하고 정중했다. “맵지만 부드럽습니다(Spicy but soft).” 한 독일인 바이어가 웃으며 “It’s balanced.”라고 답했다. 그 짧은교환 속에, 한국이 더 이상 단순히 음식을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라 ‘맛의 언어’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임이 드러났다.

 

떡볶이 — 형식과 정성의 간극

 

올해 한국관의 대표 중 한 메뉴는 단연 떡볶이(Tteokbokki)였다. 그 붉은 색과 매운 향은 K-푸드의 상징처럼 전시장 한가운데를 채웠다. 유럽인에게는 낯설 법한 질감과 자극적인 맛이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는 ‘경험해보고 싶은 새로움’으로 작용했다. 매운맛은 하나의 모험이었고, 그 모험은 곧 문화적 참여였다. 이 열기에는 K-콘텐츠의 서사가 배경처럼 깔려 있을까 싶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 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 웹툰, 유튜브 속 장면들에서 떡볶이는 이미 ‘이야기가 있는 음식’으로 등장해왔다. 젊은 관람객들은 “이게 바로 그 떡볶이야!”라며 사진을 찍고, 콘텐츠와 현실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미소를 지었다. K-스토리의 한 조각, 한류가 만들어낸 감각적 기억의 매개체였다.

 

그러나 다수의 부스에서 선보인 떡볶이는 질감이 딱딱하거나 국물이 거의 없는 형태였다. 시간이 지나 식어버린 제품들도 있었고, 어떤곳에서는 조리보다 진열이 우선된 듯한 인상도 받았다. 맛이 아닌 형식으로 존재하는 시식대들. 그곳에는 정성의 온도가 빠져 있었다. 그와중에 돋보인 건 농심(Nongshim) 이었다. 그들의 떡볶이는 국물이 넉넉했고, 양념의 농도는 일정하며, 떡의 질감은 부드럽고 쫄깃했다. 조리의 완성도 뿐 아니라 스탭의 태도까지 단정했다. “조금 맵지만, 이게 한국의 표준입니다.” 그 말에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은 브랜드의 품질과 맞닿아 있었다. 농심의 부스는 기술과 정성이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세계의 향연 속의 한국

 

지중해 국가들은 수십 종의 올리브와 오일, 허브와 토마토 가공품으로 향을 펼쳤다. 북아프리카는 곡물과 향신료, 유럽 북부는 유제품과 초콜릿으로 자국의 문화를 증명했다. 그리고 독일 맥주 코너에는 늘 사람의 파도가 몰렸다. 그 향들의 대합주 속에서 한국은 강렬함보다 균형감과 세련됨으로 존재했다. 전통과 산업, 맛과 기술, 인간과 기계 사이의 균형. 그 사이에서 한국은 자신만의 ‘리듬’을 쓰고있었다.

 

Brewguru RYSE — 세대의 감각으로

한국 상품들이 거의 모두 모인 5번 홀에서 떨어진 7번홀에도 또 하나의 한국 부스가 노랗게 자리 잡았다. 그곳은 한국의 신생 주류 브랜드 Brewguru(브루구루) 의 전용 공간이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노란색 가방이 이 부스의 상징처럼 빛났고, 그 가방을 든 관람객들이 전시장 곳곳을 오가며 노란 물결을 이루었다. 브루구루가 선보인 주력 제품은 RYSE Lemon Vodka Soda(라이즈 생레몬 보드카 소다). 캔을 열면 안에는 얇게 저민 신선한 레몬 슬라이스(Fresh Lemon Slice) 가 떠올랐다. 뚜껑이 시원하게 열리며 퍼지는 향기에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음대 앞에는 젊은 관람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누군가는 향을 맡으며 웃었고, 누군가는 “신기하다”고 중얼거렸다.그들의 반응은 자극이 아닌 경험의 기쁨에 가까웠다.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는 태도로 사람을 머물게 했다. RYSE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만든 브랜드라고 한다. 짧고 강렬하며, SNS 감각과 경험경제가 결합된 새로운 주류 문화의 실험같다. 전통의 무게를 벗고, 세련된 일상으로 확장된 ‘한국의 오늘’. 그 부스의 공기는 명랑했고, 스탭들은 유머와 자신감으로 응대했다. K-푸드의 전통적 이미지 옆에 RYSE는 ‘현대적 감각의 한국’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 — 쾰른 타펠(Köln Tafel)

 

박람회의 마지막 날 10월 8일, 전시장 입구로 자원봉사단이 들어왔다. 그들의 조끼에는 Köln Tafel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박람회가 끝난 뒤 남은 식품을 노숙자와 취약계층에게 나누어주는 지역 푸드뱅크 단체이다. 트럭들이 천천히 홀 안으로 들어가고, 부스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며 화려한 소비의 축제는 고요한 나눔으로 끝을 맺었다. 그 장면은 산업의 윤리이자, 인간의 온기가 남는 ‘식문화의 완성’이었다.

 

 

관계의 언어로 존재하는 한국

 

아누가 2025는 단순한 산업 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를 실험하고, 관계를 시험하는 하나의 장(場) 이었다. 한국은 그 무대 위에서 ‘기술의 나라’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나라, 즉 ‘관계의 나라’로 존재했다. 송미령 장관의 부스 순회, 임상범 대사와 민재훈 총영사의 참여, 그리고 수백 명의 기업인과 연구자들이 함께 써 내려간 시간들. 그것은 홍보의 제스처가 아니라, 품격의 언어와 신뢰의 방식이었다.

 

쾰른의 흐린 하늘 아래, 한국은 이번 박람회의 가장 단단한 색이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뚜렷했고, 조용했으나 오래 남았다. 기술이 만든 맛은 리듬이 되었고, 문화가 빚은 신뢰는 화성이 되었으며, 인간이 건넨 미소는 그 모든 소리를 연결하는 쉼표였다. 그 세 겹의 구조가 만들어낸 조화 — 그것이 바로 세계 식탁 위에서 오래 공명한 한국의 소리였다.

 

Wir danken Frau Anja Pittgens von der Koelnmesse ganz herzlich für die großzügige Unterstützung und die zehn Eintrittskarten, die sie dem Haegeum-Ensemble K-YUL zur Verfügung gestellt hat.

케이율 해금 앙상블에게 아누가 입장권을 10장 주신 메세 주관 Anja Pittgens 님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겸 단장, 독일/서울 거주,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