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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문화심리 ]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 한나 아렌트

A Better Me
죄책감은 권위 앞에서 쉽게 마비된다
평범한 사람이 악마가 되는 과정

K-Classic News 원종섭  문화심리학 기자 |

 

 


 

 

 

 

 

나는 미소 지을 수 있고

미소 지으며 살인도 할 수 있지

I can smile, and I can kill with a smile.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6세』 (1591)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뉴욕에 거주했던 기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나치 독일에서  6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의 실무 총책임자

홀로코스트의 주동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양심사를

추적하고 분석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다.

 

 

 

 

 

해당 용어는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결말부에 나오는데,

아이히만의 ‘악’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무사유(thoughtlessness)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여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훗날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평가하면서

“아이히만은 전형적인 공무원이었다.

 

악은 타인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항변해봤자

무죄가 될 수는 없다”라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아이히만은 나치 실무자였지만, 훗날 법정에서

자신은 그저 명령받은 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도의상 잘못은 했으나 법적으로는 무죄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나치의 명령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모르는 듯 보였다.

 

 

아이히만은 종종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현실을 마주 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도 상투어(Klischee)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을 위로함으로써, 자신의 죽음마저

잊어버리고는 곧 의기양양해질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악마가 되는 과정

The process of becoming a devil

 

 

1961년 미국 예일대학에서 진행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충격적인 실험이 하나 있다.

 

이 실험은 '타인의 신체에 위해행위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권위자의 지시를 받았을 때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지시에 따를까'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되었다.

 

실험 결과, 40명 중 25명이나 되는 참가자가

실험실 전기 충격기의 최고치인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이는 사람에게 아주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치였다.

교사 역의 참가자들은 학생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면서도

직접 자기 손으로 전기 충격기 버튼을 눌렀다.

 

 

 

 

 

더는 무리라며 도중에 그만둔 15명도 학생역의 배우가

기절을 연기한 300볼트가 될 때까지는 계속했다.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잔혹하게 행동했을까?

 

바로 다음과 같은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실험을 그만두자고 호소했다.

그런데 실험 담당자가 그만두지 못하게 했다.

그러므로 나는 잘못이 없다.

잘못은 담당자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둘째, 고통스러워하는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셋째, 어디까지나 실험이니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설마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처럼 특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아주 평범한 인간도 극도로 잔혹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더욱 이 사실을 명심해두어야 할 것이다.

 

 

 

 

 

 

 

죄책감은 권위 앞에서 쉽게 마비된다

Guilt is easily paralyzed.

 

 

사람은 누구나 잔혹해질 수 있다.

아이히만 그는 지적으로 어리석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투어가 아니고서는 단 한 구절도 말할 능력이

정말 없었을 뿐이다.

 

그의 ‘말하는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그의 심리 앞에서는

그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상투어와 관용어라는 튼튼한 벽 뒤에 숨어서

다른 사람들의 현존에 대한 현실 자체를

깊이 생각해볼 의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타인의 현실적인 입장에 대한

그의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는

그 자신을 그 시대의 가장 끔찍한 범죄자 중 한 명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의 인간이지만,

그 알 수 없는 존재이다. 

 

 

 

 

WJS © the Poems.  Redfox © Healing Poem of KAPT 

 

 

 

 

 

 

 

 

 

 

 

 

 

 

 

사랑할 땐 살기를 바라고

미워할 땐 죽기를 바라는

그  변덕스러운 모순

인간 그 알 수 없는 존재 

 

 

 

가끔 불안한 꿈속에서 홀로 걸었지만

 

 

 

 

당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뜻밖의 능력자 입니다

 

 

 

칼럼니스트  원종섭   Won  Jong -Sup

詩人 / 길위의 인문학자 / K-Classic News 문화예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