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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시 100선]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A Better Me
꿈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부정적 현실의 극복

 

K-Classic News 원종섭 詩 칼럼|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75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 분도 

 

 

 

 

 

 

 

 

시인은 죽었지만 그의 시는 살아서 구천을 날읍니다

 

 

 

 

 

 

 

 

민주를 향한 간절한 바람

열망의 절규 소명

긴박한 공포와 시대적 아픔

처절한 절규와 비장한 의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지를 안다면

숙연해집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애타게 갈망했던 우리의 시대

그래서 이땅에 민주주의 꽃이 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방황하고 있습니다

 

 

 

 

 

 

70, 80년대 군부 독재시대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시입니다

 

 

 

 

지금은 변절자라 불리워지는 김지하 시인

한 때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표 시인이었습니다. 언젠가 광화문 촛불광장에서 타는 목마름을 절박한심정으로 목청 터지게 불러보았던  우리들의 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이 시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대학생과 지식인 등의 민중들에게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시가 쓰여진 1970년대는 민주주의 운동에 각종 탄압이 들어갔었던 시기

 

 

 

 

 

 

김지하는 암담한 현실에 절규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폭력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사회현실에 대해 흐느끼는 듯 하면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듯한 시의 분위기입니다

 

 

 

다만 이 시는 프랑스의 시인인 '폴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와 매우 흡사해서 유사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김지하 역시 타는 목마름으로 이 시가 폴 엘뤼아르의 자유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1970.06.02
1970년 당대 유력 인사를 풍자한 시인 김지하의 시 ‘오적’이 ‘사상계’를 통해 발표되자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김지하 등 관련자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사상계’는 폐간되었습니다

 

 

 

 

 

오적 五賊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 질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신새벽'과 '뒷골목'이라는 시·공간이 창작 당시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살아오는 삶의 아픔 /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이 공존하는 상황이며 '외로운 눈부심'의 역설이 성립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발자국'에서부터 '탄식'에 이르기까지 나열된 '소리'는 긴박한 공포와 시대적 아픔과 처절한 절규와 비장한 의지를 보여 줍니다.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저 푸르른 자유'는 '벗들의 피'와 '치떨리는 노여움'이 만들어 낸 '전설'임을 

 

 

 

 

 

 

 

 

경계 넓히기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에서는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 부러워하던 /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 /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안다면, 단지 부러워해서만은 안 되고 그것을 얻기 위한 치열한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요.

 

 

 

 

 

 

 

 

 

김지하 金芝河

 1941년생.  대한민국의 시인입니다. 본관은 김해이며,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영일입이다. 《토지》를 저술한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입니다. 중동고등학교 서울대 미학과에서 공부했습니다. 1970년대 유신 독재에 저항하여 투옥됐습니다. 1980년부터는 동서양의 철학과 한국의 전통 사상을 아우르는 '생명 사상'을 제창하였습니다. 2022년 5월 사망했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폭력에 온몸으로 부딪친 투사이자 전통 사상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선구적 생명사상을 설파한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반독재 투쟁을 벌이다가 7년을 옥에서 보낸 그는 그러나 1991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이어진 학생·청년들의 분신 자살을 질타하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실었으며,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자신을 탄압했던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변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1964년 대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의 일환으로 서울 문리대에서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의 조사를 쓰는 등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4개월 간 투옥됩니다. 1966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9년 조태일이 주재하던 시 전문지 <시인>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서울길’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공식 등단했습니다.

 

 

 

 

 

등단 이듬해인 1970년 5월호 <사상계>에 권력형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에 얹어 통렬히 비판한 담시 ‘오적’(五賊)을 발표하고 야당인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이 이 작품을 전재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 시가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한 것이라며 반공법 위반으로 김지하를 잡아 가두고 <사상계> 발행인과 편집인, <민주전선> 편집인 등 역시 구속했습니다.

 

이 사건이 국회에서 문제가 되자 그는 옥살이 한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지만, 이를 계기로 그의 이름은 일약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것다
볼기가 확확 불이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겄다.  

 

 

1970년 6월 2일, 시인 김지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오적’의 도입부입니다. 김지하는 유신을 앞둔 3공화국 정부의 1970년 5월 월간 ‘사상계’에 권력상층부의 부패상을 비판하며 조롱한 풍자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사회 상층부를 구한말 한일합방 을사오적에 비유한 것. 이는 민심의 폭발적 지지를 받았다. 처음엔 조용했다. 하지만 이를 야당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이 전재함으로써 문제가 불거졌다. 



판소리 형식을 빌린 이 풍자시에 등장하는 ‘다섯 도둑’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나라 곳곳에 관직과 재물, 허황된 권세로 위장한 도적들이 영양분을 빨아먹기에 나라가 피골이 상접했다고 시인은 혀를 찼습니다.

 

 

 

 

 


현대문학 풍자시의 백미로 꼽히는‘오적’은 저항의 시대적 의미와 함께 문학적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담시라는 독특한 양식의 서사구조를 통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지다시피 한 민중의 가락을 되살려냈다는 것. 무엇보다 판소리 사설조로 거침없이 풀어내는 운율을 타고 읽어가다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촌철살인 해학이 지금 다시 읽어도 압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시가 총칼보다 더 강하다”

 


종합교양지이자 문예지로 지식인들 사이에 폭넓게 읽혀왔던 ‘사상계’는 판매금지를 당했고 끝내 당국에 의해 폐간됐다. 고 장준하 선생이 1953년 4월호로 창간한 월간 ‘사상계’는 이렇게 사라졌다.

 

 

 

 

 

 

 

 

 

 

 

 

 

 

 

 

 

 

 

 

 

이 변덕스러운 세상에서

당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뜻밖의 능력자 입니다

 

 

 

 

원종섭   Won  Jong -Sup

詩人, 영미시전공 교육학 박사, 대중예술 비평가  

K-Classic News 문화예술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