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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진주에서 뉴욕필까지 —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의 여정

평론가, 오주영 고향 진주에서 독주회에서 발굴해 격려와 시상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한국예술비평가협회 글로벌 아티스트 대상 수여 2010, 6월 부산롯데호텔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하모닉에서 활동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 그의 이름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연주자를 떠올리지만, 그 시작은 경남 진주의 작은 무대에서였다. 어린 시절 이미 남다른 재능을 보이던 그는 지역 공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그때 필자는 그의 연주에서 특별한 가능성을 보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음 하나하나에 음악을 향한 집중과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장래가 있는 연주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언론과 방송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재능을 소개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주영은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재학 중이던 1996년, 14세의 나이로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고(故) 도로시 딜레이와 강효 교수에게 사사하며 음악적 기반을 다졌고, 빠른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력을 갖춘 연주자로 성장했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지만, 음악을 향한 집념은 그를 세계 무대로 이끌었다.

 

세월이 흘러 2010년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필자는 한국예술비평가협회 회장으로서 오주영에게 ‘글로벌 아티스트 대상’을 수여했다.  이 날 부산 웰니스 병원(원장 강동원)이 5년간 아티스트 메세나 후원을 시작했다. 14년 전 처음 만났던 어린 연주자가 이제 세계적 무대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오주영은 천부적인 음악 재능과 강한 집념을 지닌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티스트”라고 평가하며,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날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 무렵 부산 시민회관에서 열린 독주회는 전국 13개 도시 순회 연주의 마지막 무대였다. 그는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생상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밀스타인의 ‘파가니니아나’ 등을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오주영은 2010년 11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종신 단원으로 활동하며 세계 정상급 연주자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현재는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카타르 교향악단)에서 활동하며 중동과 세계 무대에서 한국 바이올리니스트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바이올린 선율 속에는 진주에서 시작된 꿈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한 음악가의 여정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도시의 기억이자 한 나라 음악 문화의 성장 과정이기도 하다.
 

진주에서 시작된 작은 바이올린의 울림이 뉴욕을 지나 세계 여러 무대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과연 우리의 사회는 이런 젊은 예술가들을 얼마나 제대로 발견하고 지켜보고 있는가. 오주영의 여정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