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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철 리뷰] 잘 준비되어 섬세하게 연출된 ‘바로크의 언어’

‘우직하고 당돌’한 건반악기 연주자 송은주 클라비코드 & 하프시코드 독주회

K-Classic News 정교철  음악학자( 전 수원 과학대 교수) |

 

 

오랜만에 찾은 예술의전당 리싸이틀홀 무대에 바로크-로코코 스타일의 기품 있는 건반악기 두 종류가 놓여있다. 뒤편에 (아직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작고 가냘픈 그랜드 피아노 모양에 (요즘 피아노와는 다르게 흑백이 바뀐) 건반이 2층으로 겹쳐진 악기가 있다. 그 앞에 더 작고 더 보기 드문 (화려한 무늬로 채색되고 납작한 직사각형 상자 몸체의 열린 뚜껑 안쪽 면 중앙에, 그리이스 신화 장면이 폼페이 벽화 풍으로 그려지고, 뒤 악기에 비해 옥타브가 좁은 단층 건반을 지닌) 우아한 악기가 뚜껑이 열려 비스듬히 놓여있다. 

 

뒤 악기는 독일어권에선 쳄발로(Cembalo), 이탈리아에선 클라비쳄발로(Clavicembalo), 영어권에선 하프시코드(Harpsichord), 프랑스어권에선 클라브쌍(Clavecin)이라는 다양한 명칭으로 알려진 17~18세기 건반악기다. 물론 200-300년 전에 제작된 오리지널 악기는 아니지만, 악기박물관에 보존된 장인 명품 악기의 구조와 재료, 제작방식 그대로 최근에 제작된 것이다. 비발디 바흐 헨델로 대표되는 바로크음악 시대에 유럽에서 사용되었고, 하이든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고전음악 시대 초기까지도 가끔씩 쓰였다. 이 건반악기는 (베토벤 이후 점차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된 그랜드 피아노의 전신으로, 음량을 크고(forte) 작게(piano) 다이나믹을 표현할 수 있는) 작은 햄머 액션 방식의 포르테피아노(Fortepiano) 또는 피아노포르테(Pianoforte)로 대체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쳄발로는 그러나, 20세기 중반 “악곡이 쓰여진 시대의 악기로, 그 시대의 연주방식으로 연주한다“는 이른바 <원전(原典)연주> 운동으로 다시 주목을 받으며 학구적인 연주가들과 고(古)음악 애호가들에 의해 부활했다. 우리나라에 들어 온 시기는 1970~80년 이후로 추정된다. 필자가 쳄발로를 실물로 보고 라이브 연주를 들은 것은, 1970년대 (서울 한국일보 건물 최상층 연주홀에서) 빈(Wien)에서 온 쳄발리스트 연주회가 처음이다. 독일 유학시절인 1980년대 쾰른대학교 음악학과 계단강의실 그랜드 피아노 옆에 있는 쳄발로(복제품)를 본 것이 두 번째 만남이다. 작은 파이프오르간도 있는 계단강의실에서 수업이 있는 날 (물론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나가면)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1권 1번 C장조 프렐류드를 더듬더듬 눌러 보며 섬세한 그 음향과 피아노와 전혀 다른 작동 방식에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만져보기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고음악 연주회가 아니면 라이브 연주음향을 듣기도 쉽지 않던 (음악사 서적에서 사진으로만 보고 음반으로만 듣던) 악기를, 한국 연주장에서 실물로 보며 연주음향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고음악 애호가인 필자로선 행복이다. 

 

 

리싸이틀 홀 무대 쳄발로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납작하고 우아한 직사각형 나무상자’는 후기 르네쌍스에서 바로크까지 사용된 클라비코드(Clavichord)다. 쳄발로가 궁정이나 대저택 살롱의 넓은 홀에서 연주용으로 주로 쓰인 반면, 다리도 없고 쳄발로 보다 음량도 몸체도 작은 클라비코드는 주로 가정에서 연습 또는 작곡을 위한 용도로 쓰였다. J.S.바흐는 집의 작업실에서 악보를 적는 책상 위에 클라비코드를 올려놓고 곡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독주회 무대 뒷면에 원본 악보와 함께 빔프로젝터로 보여준) 가정음악 연주장면이 그려진 17~18세기 바로크시대 그림들을 봐도 클라비코드가 가정음악 악기였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유학 시절 (수업의 일부로 지도 교수 인솔로 옆 나라 수도) 브뤼셀의 악기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클라비코드를 처음 실물로 접했다. “곤돌라가 있는 운하 그림으로 봐서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듯하다”는 설명과 함께 인솔교수가 클라비코드 특유의 건반 비브라토 효과를 섞어 짧게 연주한 스카를라티 소나타의 가녀린 음향이 아직 기억된다. 학업을 마치고 2년간 모교 강단에 섰을 때 혼자 들어 갈 수 있었던 음악학과 악기 창고엔 모짜르트, 슈베르트 시대의 먼지 쌓인 포르테피아노, 베토벤 이후 19세기 피아노도 여러 대 있었지만 클라비코드는 없었다. 오리지널 악기는 악기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악기가 클라비코드다. 이 악기를 (복제품이라도) 이제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하지가 하루 지난 여름날 저녁에 열렸던, 이 연주회는 기획이나 컨셉, 악기와 프로그램 구성, (음악대학 강의 수준으로 고급지면서도)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진행된 차분한 해설, 페이지 디자인, 표지사진까지 거의 완벽하다. 프로그램(브로셔)에 실린 작곡가와 악곡에 대한,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학구적인 해설은, 필자가 이 연주평에서 프로그램 악곡들을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1부에서 클라비코드로 연주된 두 작곡가들의 다른 악곡을 2부에서 쳄발로 연주로 들려주며 두 건반악기의 특성을 청중이 비교하게 하는 컨셉이 참신하다. 

 

“독주회“의 1부와 2부 마지막을 다른 원전 바로크 목관악기들이 참여하는 앙상블 소나타로 배치한 기획은 교과서적이지만, 바로크 원전음악을 건반악기 외에도 다양하게 경험하려는 청중들에게 교육적인 관점에서 탁월하다. 

 

19세기 후반 이후 은이나 금으로 제작되어 재질로는 ”금관악기“인 풀륫이, 원래 목관악기였음을 보여주는, 나무로 만들어진 바로크 플륫(Traverso)이 청중들에겐 흥미롭게 다가갔을 것이다. 또 (초등학교 음악실에서 쓰이는 플라스틱 재질의 리코더가 원래는 나무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러 음역대와 크기의 르네쌍스•바로크 목관악기였음을 보여주는) 리코더(Recorder) 연주도 어린 청중들의 관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2부 시작을 현존 한국 작곡가(탁현욱, 1982生)의 탁월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음악언어로 만들어진 악곡으로 배치하는 프로그램 구성도 신선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1부와 2부 마지막 J.S.바흐, J.J.크반츠의 Basso Continuo 악곡에서 (필자의 관점에선 음악미학적으로나 음향학적으로나 꼭 필요한) 저음 현악기가 빠진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 연주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앞으론 (바로크)첼로 또는 콘트라베이스를 추가했으면 한다. 쳄발로 앞면에 관객 방향으로 배치하지 않고, 쳄발리스트 왼손 건반 뒤로 배치해, 쳄발리스트와 쳄발로 악보를 (“구차스럽고 힘들게“, 그러나 일심동체로) 같이 보는 방식으로. <원전연주는 그 시대 방식으로 그 시대 악기로 하는> 우직하고 학구적인 연주이기 때문에.

 

글 부제에 필자가 연주자 송은주를 왜 ‘우직하고 당돌’한 건반악기 연주자라 했는가를 설명하며 이제 이 어설픈 연주회 평을 마무리한다.

 

 

그녀가 ‘당돌(唐突)한 음악가‘인 이유는, 그녀가 (귀국 후 지금까지 일부 렉쳐 콘서트 성격의 국내 연주 프로그램이나 대학 강의에서 잠깐씩 선 보였던) 클라비코드를 이번 독주회에선 1부 전체로 꾸몄다는 이유에서다. 17~18세기까지 가정음악 또는 작곡가 작업용으로 작은 공간에서 사용되다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정말 작은 음량의 (음악사 책에서나 보는) 희귀 악기를 큰 공간의 콘서트홀로 가져와 전반 프로그램으로 채운 것은 신선하고 당돌하다. 이전 연주에서 쳄발로, 특히 클라비코드 연주음향이 객석에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문제는 이번 연주에선 해결됐다. 물론 마이크를 활용해서지만. 수십 년 전부터 국내에서 가야금, 해금과 같은 작은 음량의 현악기들에 마이킹을 활용한 예도 있어, “순수음악, 그것도 서양 클래식에 마이크를 사용하느냐“는 지적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미련할 정도로) ’우직(愚直)한 음악가‘인 이유다. 쳄발로, 클라비코드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음악대학 정규 악기전공에 없는 희귀하고 ’우아한’ 전공이다. 국내 음악대학들은 교수인력 확보가 어려워서 라기 보다는, 학교에 비싼 악기를 구비해야한다는 부담으로 전공개설을 못하는 듯하다. 피아니스트로 성장해 유학 가서 이런 악기로 전공을 바꾸면 귀국 후 후학 양성의 기회를 잡기 어렵고 연주가로만 활동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걸어간 길이기에 그녀는 미련하고 우직하다. 언어장벽도 극복해야하는 외국인 만학도 유학생으로 한참 어린 띠동갑 현지 음악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기죽지 않고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힘들다는) 빈(Wien)음악대학 기초과정 첫 학기부터 마지막 학기까지, “소처럼 우직하게 산을 옮기듯이(愚公移山)” 모든 수업과정을 빠짐없이 밟아가며 충실하게 배웠다. 이렇게 미련하고 우직하기에 보기 드물게 탄탄한 기량의 건반악기 원전연주자다.  

 

건반악기 연주자 송은주가 귀국한 이후 지난 수년 간 기회 되는대로 지켜 본 그녀의 연주무대들과 비교해 이번 독주회는 모든 면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