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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을 위한 코다리찜 콘서트 새로운 대중화의 물꼬텄다

다양한 형태의 식당 콘서트로 변주 이어질 듯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서는 모험이 시장을 만든다  

 

모든 것은 해보지도 않고서 속단하거나 예단해서는 안된다. 내가 모른다고,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그것에 대해 자기 관점만으로 비난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일체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긍정적이고 열린 시선을 갖을 때 변화가 따른다. 그래서 변화의 촉이 발달한 사람은 변화 지수가 높다.

 

동이 트기 전에 새벽별을 보고 나서는 이는  늦잠 자는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선점의 중요성을 잘 안다.  야채시장도 그렇고 어물시장도 그렇고 걸음이 빨라야 신선도를 갖는다. 성공하는 장사의 비결이다.  

 

'코다리찜 콘서트'~!?!! 카톡으로 온 임창배 교수의 포스터를 보고, 이거 큰 것 한방 터트렸군!!  순간 소상공인을 위한 이토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라이브한 시장 전략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평론가 눈에도  이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될 것 같다는 판단이 단 3초만에 왔다.

 

바리톤 윤철연 

 

평론가도 티켓 구매한 콘서트, 성공 콘서트로 확산되었으면  

 

즉시 식사 및 공연 관람비를 합해 2만 5천원인 티켓 구입을 시도했다.  평론가에겐 99.9%의 콘서트가  초대이지만 이 한 장의 티켓은 사는  의미가 있다.  '평론가도 티켓을 구매했다'는 돌직구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다. 그런데기업은행구조번호에 핸드폰 번호만 있다. 아! 이 친구들이 정신없이 하느라 은행계좌 대신에 핸드폰을 번호를 입력했구나! 오타라고  문자보냈더니 전화가 왔다. 기업은행은 핸드폰 번호로 통장을 개설해 준다는 것이다.  서로 돈 받기 위해 뻘쭘한 것을 새 기술로 푼 것이다. 이 역시 허가 찔린 한 수가 아닌가.  

 

사당동 전철역에서 5분 거리 정도인 박은자 맛사랑은 2층에 50~60명 수용이 가능한 일반적인 대중 음식점이다. 임창배 교수의 인력 네트워크가 총동원된 것임을 금새 알 수 있다. 식당은 가득했고  공연전 음식 셋팅으로 주방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일부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어나운서 먼트와 함께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특유의  입담과 순발력있는 애드립으로 콘서트는 웃음소리가 넘쳤다. 연주가 시작되면서 우려했던 클래식을 무슨 식당에서 하는가?  그런 느낌이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 이게 클래식 하는 사람들,  클래식 연주가 입장에서 우리가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되례 궁금증이 생겼다. 여기온 99%의 사람들은 클래식이 뭐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임창배라는 사람과 해설을 통해 웃기는 말에 반응하면서도  음악 그 자체만 듣는 것이었다. 클래식 격조, 폼 이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데 클래식 스스로가 셀프로 자격지심을 갖은 것이구나. 

 

이상야릇하게도 환경이 이런 곳에서 클래식을 들으니 음악 더 빛나보였고, 품격이 더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다함께 노래 부르기 10월의 어느 멋진 날. 진행 임창배, 테너 우명덕, 바리톤 윤철연, 소프라노 김혜정

 

고정관념 버리고 적응력 키워 한국판 클래식 뿌리 만들어야 

 

그러니까 코다리를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온통 음악이  오감을 지배하면서 미각을 뺏아버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설정한 예술의전당 극장이란 우상의 개념이 여기서 무너지고 여기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변모하는 것 아닌가. 

 

바리톤은 말했다. 매번 음악회에는 뭔가 모르는 객석으로 부터 전해오는 파장이 있는데 오늘 이 콘서트의 분위기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뭔가가 느껴져 온다고, 그는 좁은 통로를 무대 옮겨 가면서 온전한 오페라 무대라도 된듯 휘어잡으며 노래를 이어갔다.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환호가 터지고 웃고, 박수치고.,  엄숙한 콘서트장에서 볼 수 없는. 그렇다고 버스킹 거리 음악회에서 보는 썰렁함과는 다른  가족적 분위기의 열기가 더해졌다. 

 

이렇게 한국형 클래식이 정착이 될 수 있겠구나.  원래 마당놀이의 원형을 가진 우리것이란 이처럼  끼어들고 얼쑤하는 추임새가 있어야 하는 DNA인데 이걸 극장문화가 틀어 막아 놓았구나! 그래서 60~70년이 흘렀지만 극장 문화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을 수가 있겠구나.  저변의 바탕화면에 클래식을 다시 깔아야  뿌리가 생길 것이다. 생존에 내 몰린 소상공이나 음악가의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 궁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임창배 톱악기와 임바울의 첼로,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출연진들 역시 임창배 교수의 페밀리에서 설정된 것이다. 첫 식당식 콘서트에 모르는 사람에게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비용부담도 그랬을 것 같다. 

 

그렇다. 해골 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 해탈을 한 스님처럼, 아니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에선가 화장을 하지 않고 시신에 세균을 투입해 퇴비로 쓰는 법이 통과되어 그 운동이 한창이란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 이성이 고집스럽게 지키려고 한 것들, 고정관념, 인식, 제도, 상식, 법규 등이 생존과 어떤 함수관계를 갖어야 하는 것일까?  그 기준은 때 마다 달라진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 오해와 잘못된 것에 의한 희생은 하늘에 닿을 만큼 많다. 중세의 신본주의를 지나 인본주의 르네상스가 오고 경제권을 쥔 자본주의가 산업혁명을 낳고  이제 무한의 자본주의가 상처를 입고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지치고 방황하는 음악가들, 골목골목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전염병처럼 퍼져 200년이나 지속되었던 마녀 사냥. 그 시대 시대 마다  주홍글씨가 두려워 창의력을 덮어야 했던 인간들.  코다리찜 콘서트가 어떻게 변주곡을 이어갈 것인가. 오늘은 그 역사의 첫 출밤점이어서 기록의 의미가 있다.  때마침 개국을 앞둔 키키방송을 부른 이유다. 키키스타방송에 앱을 즉석에서 깔아 부산 등 타 지역 등에서 반응이 들어 오자 청중들은 기술의 급속한 변화에 다시 한번 놀랐다. 뒷풀이 갈 것도 없이 대화는 더 풍성하게 이어졌다. 신나는 한국형 판문화의 재현이다. 극장에서 지속할 수 없어 수많은 음악가가 길을 접기보다 새로운 형태를 통해 

자립 기반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 가능성을 열어준 게 코다리찜 콘서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