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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리뷰] 피아노 음악사의 한 봉우리를 만든 피아니스트 서혜경 

라흐마니노프의 서정과 농밀한 탐미(眈美)로 행복감 준 콘서트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역시 서혜경이다. 주 관객이 젊은 층들이어서 그의 연주를 처음 접하는 것 같다. 열기도 가득했고, 라흐마니노프를 테마로 협주곡으로 구성된 적이 전에도 있었던가? 때마침 한러문화수교를 기념해 잘 엮은 기획이었다. 

 

 

‘협주곡’이란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지휘자, 오케스트라, 협연자가 찰떡궁합이어야 하는데 이날 정말 죽이 잘 맞아떨어졌다. 등용의 의미를 잘 살린 피아노 윤아인이 안정적인 호흡으로 제2번을 풀어 1루에 진출하자, 이어 다니엘 하리토노프가 3 루타를 치면서 객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파가니니 주제의 의한 변주곡’의 익살스러운 음형을 시작으로 비르투오조 기술자의 솜씨를 유감없이 펼쳐 나갔다. 마치 피아노가 나비처럼 날아다니듯 그렇게 셈, 여림의 섬세함이 극에 달할 수 있을까. 재밌고 유쾌한 피아노의 즐거움에 옆 자리 앉은 여성은 시종일관 무릎건반(?)을 치면서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주인공 서혜경이 느릿한 걸음으로, 그것은 부풀려진 의상이니까(ㅎㅎ~). 4번 타자가 타석에 등장한 것이다. 그가 페이스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몰고 간 것은 2악장부터다. 전체가 풍경화요, 전체가 대하(大河)가 흐르는 멜로디로 가득 채워진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그는 즐겼고, 청중은 깊이 탐미(眈美)에 빠져들었다. 이토록 행복한 순간이었다.


피아니스트, 지휘자 , 오케스트라의 융합이 돋보인 연주


협연 분위기가 이처럼 완성도 높게 펼쳐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휘자 여자경이 디테일을 까지 잘 살리면서도 전체를 보는 윤곽이 융합적이었다. 유토피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처음 보는 악단이지만 웬만한 시향을 뛰어 넘어 있었다. 현의 사운드가 일품이었다. 혼을 비롯한 관악군도 발군의 솜씨다.

 

이날 서혜경의 연주는 피아노 음악사적 관점이 더 중요하다. 이 땅에 피아노가 들어오고, 건반 위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맹세한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음악을 시작할 때 명성을 얻으려고 피아노를 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일반

대중이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손가락에 꼽힌다.

 

 

그 이름 하나가 서혜경이다. 그러니까 올해가 데뷔 50주년이고 그래서 도하 많은 언론에서 그의 삶과 예술이 걸어온 족적을 그려 놓았다. 그 스토리만으로도 감동이지 않은가. 화려해 보이는 콩쿠르 스타들이 잠시 반짝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없는 경우가 피아노뿐 아니라 바이올린 등 기악이다. 솔리스트 생존율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해도 전혀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다.

서혜경은 피아노가 되었고, 피아노가 그의 살과 피로 만들어졌고, 그 힘으로 8번의 항암치료와 절제 수술,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이겨냈다, 인간 승리요, 진정한 예술가의 표상이다.

 

공연 전 날 밤에사 겨우 티켓 한 장이 날아왔다. 테크닉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날만큼은 가슴으로 듣고, 그래서 눈 감고 들어도 심장에 꽂히는 듯했다. 그의 연주가 행복감을 넘어 예술정신이 가야 할 바른 방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누군가 다시 피아노 음악사의 한 봉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목표를 안겨준 서혜경! 관객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낸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