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비평가회장 |
세계의 주역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지금도 그런가? 어색한 물음이다. 이제 모든 길은 K로 통한다. K 이니셜이 보통명사화가 되면서 산업, 국방, 경제, 의료, 문화,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게 K로 통하는 K 돌풍이다. 전(前)시대에 없었던 이와 같은 현상을 크게는 한류 열풍이라고 말한다. 단군 이래 문화의 힘이 이토록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 적이 있었던가?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위상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이는 기업의 역대급 수출 호조로 이어지면서 대박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과 한국 상품에 뜨거운 호응이다. 한글 또한 젊은이들이 아이돌 노래를 배우려고 세종학당과 문화원에 수강 신청 러시를 이룬다. 모두 수용을 못해서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되는 실정이다.
상식이 된 듯한 이와 같은 현상에서 오는 자긍심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 합창계도 눈을 열어 글로벌 마인드로 개선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가 근대화, 현대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오랜 억압이 있었기 때문에 사대주의에 함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빌려온 외투를 벗고 당당하게 우리의 얼굴로, 모습으로 새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때다. 한국합창사의 개척기를 열어 오셨던 1세대 분들이 거의 현장을 떠난 실정이지 않은가. 뉴(New) 리더십의 강력한 성장 엔진이 그래서 필요하다, 누구인가! 설계를 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
어느 분야든, 생존과 경쟁이 치열한 때일수록 리더십에 집중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 종족은 어려워진다. 힘의 응집이 없이 성(城)을 지킬 수 없고, 전투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불문가지다. 마냥 세월아 네월아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듯 하다 갑자기 위기가 오면 모두 휩쓸려 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실현의 중심축은 또 어디여야 하는가? 합창의 방향조차 설정되지 못한 채 각자도생이거나 주인 없는 나룻배 신세라면 합창의 미래는 밝지 못하지 않겠는가? 문화 스펙트럼이 어마하게 확장되고 세대마저 달라지면서 합창이란 장르가 특성을 살려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다시금 묻고 싶다. 누가 한국합창의 도약과 비전을 그려낼 것인가. 오늘 하루가 아니라 지속 성장이 가능한 마스터플랜이 있는가? 오늘 이와 같은 문제를 전문가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이 자리를 만든 주최 측에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필자가 ‘K 콘텐츠 시대의 한국합창 지휘자 역할과 방향이’란 주제를 좀 폭넓게 잡은 것도 합창 내부에 못지않게 외연(外延)의 확장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함께 참여하신 분야의 전문가들 토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문화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변화가 급속한 시대다. 그래서 어느 분야든 지속적인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적응하지 못하면 퇴화하거나 상실의 위기가 온다. 예지력을 갖고 예측하는 촉각 지수를 높여야 발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달리진 상황이란 무엇인가? 또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하겠는가? 그 첫째가 글로벌 환경이다. 그러니까 K팝에서 발화한 대중 한류가 BTS 등으로 확산이 되면서 K 콘텐츠 시대가 활짝 열렸다.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 패션, 화장품, 푸드 등 전 업종이 수출에서 호황을 부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정부의 수출 정책 또한 반도체 중심에서 K 콘텐츠를 산업 영역에 편입했다. 2027년 K 콘텐츠 수출 총액이 270억 달러가 목표라고 한다. 세계 4대 콘텐츠 수출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것이다. 전시대에는 상상할 조차할 수 없었던 문화 다양성과 역량이다. 문화 수출이 산업화의 이름으로 선적한 것이니 우리 합창도 이와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도록 연동성을 개발했으면 한다.
최근의 합창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공공합창단은 의기소침해졌고 민간은 반토막이 나는 등 붕괴의 아픔에서 아직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합창의 전성기 시절이라 할만한 80년대~90년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해도, 밀레니엄 이후에서도 합창은 그런대로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는 사이 요즈음은 중앙, 지역 할 것 없이 방출되는 수준의 문화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양적 고도 비만의 피로감을 겪는 것 같다.
문체부 K 콘텐츠 예산이 1조 7천억 원인 것을 본 적이 있다. 동시에 교류 확대를 위해 국제교류정책국이 만들어졌다. 해외 저명한 인플루언서들이 연중 초청되어 방한하고 있다. 또한 K브랜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올 상반기에만 해도 세계 29개국의 재외 한국문화원장들이 한자리에 했다. K-컬처 수출 역량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문화원이 공연, 전시 등 플랫폼 기능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K-컬처 영업사원 역할을 하자는 다짐이나 격세지감이다. 오늘의 문화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사정이 이러하거늘, 합창계는 어떤 시선과 방향을 갖고 있는 것일까? 국립을 제외하면 모두 시립단체이니까 지역에서 관행으로 해오던 정기연주회, 찾아가는 음악회, 영화와 합창, 합창과 뮤지컬, 카르미나 브라나, 헨델 메시아, 베토벤 합창을 회전시키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가? 합창인 스스로가 물릴만하다면 관객 입장에도 지루하지 않겠는가. 설상가상 무료 티켓이 대부분이니 공짜를 좋아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저, 주는 것에 따른 흥미는 수준이 올라가면서 퇴화한다. 티켓을 판다면 어떻게 될까? 티켓을 팔려면 현재의 몇 배의 행정력과 예산이 필요한데 가능한가? 그래서 시급한 것이 유명 국민 쉐프가 나와 합창계에 신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신선한 새 메뉴 없이 식당은 줄을 서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우리 합창의 정체성과 지휘자, 방향성에 대한 물음의 시작이다.
지휘자의 연륜과 리더십이 합창단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요
이러한 때에 지휘자 선발 과정에서의 지휘자 연령 제한에 따른 비상식적 차별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어서 어리둥절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정작, 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이 아닌데 번지수를 잘못 짚은 행정의 무리수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차별 조항은 기성세대는 물론, 미래 젊은 지휘자들의 앞길을 막고 권익을 침해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때문에 이런 기회에 공청회를 통해 생산적인 논의를 전개해 한국합창의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이런 것을 통해 지휘자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려야 한다. ‘지휘자’=‘카리스마’는 동의어인데 우리 국민들이 합창 지휘자 누구를 알까? 지하철 출구 조사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
직업인으로서의 지휘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이제는 온 세계에 정착되어 뿌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지휘자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대우는 아직도 너무 소홀하다. 80~90년에는 투쟁적 노조 갈등이 있었으나 이제는 한풀 꺾였다. 그렇지만 내적으로 겪는 갈등이 있어 지휘자가 조직을 장악하는 힘이 많이 약화 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생동감 있는 합창을 하기가 어렵다. 눈치만 보고 호형호재로 얌전한(?) 합창단들이 존재할 뿐이라면 합창 활성화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다. 예술이란게 실험으로 왁자지껄하는 것에서 독창성이 나오는 것인데 오늘의 합창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서양 클래식에서 지휘자는 단원들이 예술감독의 리더십에 복종한다. 굳이 카라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휘자가 행정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조직은 탄탄해진다. 예산 등의 문제를 푸는데 연륜이 그래서 필요하다. 동시에 지휘자들이 강력한 정신세계는 예술과 경험의 뿌리에서 걷어 올리는 것이다. 젊고 유능한 지휘자를 발굴하고 기르는 것은 연륜의 경험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대를 달리하는 감각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기 때문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지나치게 획일화, 평준화에 길들여진 예술 생태계를 가진 나라도 없을 것이다. 천차만별의 지휘자 대우도 글로벌 스텐다드를 도입해 파격을 시도할 수는 없을까? 우리와 같은 전국 시립합창단과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장점들을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경우라도 지휘자에 힘을 실어주고 권위를 신장시켜야 조직이 살 수 있다. 지휘자는 그저 손만 흔드는 기계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AI지휘자에게 지휘봉을 넘겨야 한다. 창의와 혁신으로 새로운 합창을 만들어 가야 하는 때다. 더 이상 붕어빵 찍어내기의 평준화 합창을 졸업했으면 한다. 연미복이 아니라 한복을 입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글로벌 K 코러스가 되어야 한다. 글로컬 시대에 맞게 해외 교류를 하는 것도 상황 변화다. K푸드 수출이란 어마한 이익 창출을 합창이 활용할 수는 없을까? 물론 일부 합창단들이 자매결연을 맺는 등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어찌해서든 우리 합창의 외연을 넓히고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직업합창단의 존재 이유가 아마추어 합창단과 차별화된 수준 높은 능력을 위해서 인 것은 틀림이 없다. 때문에 나이를 제한해 차별화하는 것은 지휘자 능력에 불신감을 주는 것이다. 나이에 잣대를 들여 될 것이 아니라 능력을 재는 저울을 개발하고 인재풀의 데이터를 객관화는 작업도 필요하다. 때문에 고령화 사회에서 한창 일할 60세로 지휘력을 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것은 자칫 성숙한 지휘자에 대한 비하이거나 문화 수준 하향일 수도 있다. 몇해 전 모 지역에서 발생한 베토벤 합창이 종교적이라고 금지시킨 사태같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바야흐로 K 콘텐츠 시대에 실제 해외투어가 아니라 해도 우리 것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동영상 작업도 해야 한다. 최근에 우리말로 노래하는 외국인 합창단, 밀레니엄합창단이나 독일의 도르트문트 청소년합창단이 내한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달라진 글로벌 환경을 말해준다.
합창계에 보내는 몇 가지 제안
첫째 글로벌 환경이 설정되면서 합창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전략적 구상이 필요하다, 고유의 향토성 개발과 개성과 특화를 가지는 합창이 필요하다, 둘째, 전통의 이해와 국악기 연구 등이 필요하다. 셋째, 합창을 모르는 MZ 세대들을 끌어들이는 문제다. 음악 수업이 실종되어 가곡은 물론 합창에 개념이 없다, 연장선에서 교회나 불교, 카톨릭 등 종교 합창 레퍼토리 개발에 나서야 한다. 문체부 역시 단체 역량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언제라도 대체가 가능한 합창단이라면 뿌리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아마추어 합창도 일정 수준에 올랐기에 국,시립 합창단과의 합동 공연을 늘렸으면 한다.
2025년 광복 80주년, 생산적인 프로젝트로 르네상스를 맞자
이번 지휘자 연령 제한에 대한 법안 개정이 잘 해결되고, 내년 2025년 광복 80주년의 해를 맞아 모국어로 노래하는 합창단의 특성을 잘 살려 한국합창이 르네상스화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기 바란다. 특히 동호인 합창단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을 개발하여 역사와 보훈의 품격을 노래하며, 동포들과도 함께하는 합창을 한다면 우리 합창이 살아날 것이다. 우리 합창이 좀더 글로벌한 시각을 가진다면 합창은 인간 100세 시대에 국민 행복과 동행할 수 있다.
이의 실행을 위해 K 클래식 콘텐츠를 하나 제안한다면 양평 두물머리에서 평화와 화합을 위한 1천 명 혹 1만 명 합창을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 남북이 하나요, 동서가 하나요, 남녀가 하나요, 있는 자와 가난한 자가 하나로 통합하는 목소리에 우리 합창을 발견할 수 있고 세계에 평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합창 강국으로 10만 합창을 하는 보스니아만 부러워할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중심이 주도권을 가지고 세계 합창을 이끌어 갔으면 한다. 또 하나, 합창계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위해 기존 동호인 합창 카페와는 다른 인터넷 ‘한국합창 뉴스’ 창간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가 3년째 K Classic News를 하고 있고 하루 방문 뷰(view)가 3천명을 넘고 있으니 활용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노하우의 일체를 무상 제공할 용의가 있는 만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통해 우리 합창계가 소통과 성장 동력을 살려 갔으면 한다. 필자 역시 합창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합창의 총체적 역량이 살아나 한국합창의 르네상스가 도래했으면 좋겠다. 간절함이 있다면 이뤄질 것이라 믿으며 오늘의 주제 발표를 맺는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