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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Note] ‘뜻(意味)’ 보다 득(得)이 더 좋다?

순수성이 살아나려면 껍질이 단단해야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예민하기 이를데 없는 양재 시민의 숲 청솔모! 발소리만 나도 나무위로 도망가는 녀석. 그런데 필자가 달관의 경지에 오른 것일까?  ㅎㅎ  맑은 영(}으로 불렀더니 앉아있는 평상위의 손까지 다가온 모습. 먹이로 유혹한 것이 아니라 아침 햇살에 정말 사랑스럽게  그를 불렀다. 설득의 힘일까? 우연일까? ㅎㅎ  

 

바로도 보고 거꾸로 서보는 입장 다변화가 변화에 꼭 필요 

 

아무리 뜻이 좋아도 득(得)이 없다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창작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새 길을 여는 것, 분명히 뜻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주자들 입장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비해서 득이 없다 생각을 하기때문은 아닐까? 

 

첫째 청중의 반응에서 불리하다. 관객이 지루해 한다. 무대 한 번 서기가 쉽지 않은데 연주자는 곧장 청중의 반응이 오거나 대학 실적에 보탬이 되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이 99% 현상이고, 이런 흐름을 바꾸는 것 역시 1%를 위해 무한 땀을 흘리는 것이다.  


연주가는 분명히 계산을 앞세운다

 

뒤집어 생각하면 명쾌해진다. 효과가 더 낫고, 할 때 마다 이득이 눈 앞에서 카운트가 된다면 하지 말라고 해도 너나없이 할 것이다. 돈이 되는 것은 대중인데 그것을 따르자니 예술이 죽는다? 어떤 경우든  순수성과 엄연히 존재하는 경제 논리의 간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설상가상 세대가 달라지면서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방식과 문법이 발생하므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어떤 경우든 작곡가를 존경하고 창의의 시대가 새 세상을 만든다는 캠페인과 환경 조성을 해나가야 한다. 가치가 득보다 더 훌륭한 것임을  알리는 노력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한편 순수성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객관화하고 상대 입장에서 보는 훈련 또한 필요하다.  

 

자기 중심이 지나치게 발달한 아티스트의 특성상 쉽지는 않겠지만 균형과 효율성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변주가 필요하다.  간을 맞추는 것이 맛집 세프의 센스만이 아닐 것이다. 목숨을 걸고 최고봉을 오르는 알피니스트도 있고, 둘레길을 만들어 카페를 놓을 수도 있다. 선택은 자유이고 그래서 마인드가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늘 생산적이지 않는가. 이 모든 것에  K클래식이 풀어가야할  과제다. 

 

어느 기운이 맑고 상쾌한 비 온 다음날의 아침, 시민의 숲에서 청솔모를 불러 내 손에까지 오게한 영(靈)의 힘을 나는 믿는다. ㅎㅎ~

 

오른손 끝에서 중지로 옮겨와 살짝 깨물어 보는 청솔모 (급히 왼손 폰으로 촬영)

청솔모~^^ 청솔모~^^ 하고 부르자 멀리서 달려 오는 이 놈~! 이후 다시 만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