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연주가들이 톡으로 Jpeg 팜플렛을 보낸다. VVIP 좌석을 마련할 테니 오란다. 초청쪽에서야 일생에 한 번 일수도 있겠으나 평론가 입장에선 하루에도 몇 개씩 까톡~까톡~ 신호음을 낸다~솔직히 평론가는 귀가 좋아서 VVIP석이 필요가 없다. (ㅎㅎ) 3층 맨 꼭대기에서도 다 들으면 안다. 그런데 여기 저기서 오는 공짜표 초청에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을 움직이는게 날이면 날마다 달려가다간 수명 단축과 직결될 수 있다. 권위주의 시절엔 그래도 가끔은 촌지라고 해서 봉투에 담아 주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건 오래 전 아날로그 정서이고, 김영란법이후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 변하지 않으면 고사한다
시절이 이렇게 변했다면 비평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 그렇다고 비평이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존재감이 떨어진 것에는 연주 기술력이 상당한 것도 이유다. 비평이 나서지 않아도 연주회가 잘돌아 가고 그 시절 보다는 100배 이상의 문화 총량이 쏱아져 나오고 있다. 필자는 오래전에 이를 예감해 창작에 돌입했다. 매달 끊이지 않고 오르는 작품이 오페라 5편, 칸타타 9편이니 잘만 키우기만 하면 연금처리도 가능할 것 같기는 하다.
변화란 무서운 것이다. 대학 아카데미도 찬밥 시대가 도래했다. AI가 인정사정없이 직업군을 휩쓸것이란 것도 모르지 않는다. 이처럼 코드 변환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위축되거나 멸종되고 만다. 고민끝에 서로의 입장을 살리는 신의 한수를 찾아냈다. 카카오 평론이다. 콜하면 거리 시간 병산해 요금을 제시하고, 콜이 되면 가고 안되면 엔진에 시동을 걸지 않는다. 괜히 공회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평론가가 관객의 1인분으로 참석하기엔 그래도 할 음악사 저술 등 역사적 작업들이 잔뜩 남아 있다.
AI, 사라지는 직종 일파만파, 그리고 빠르게 올것
생전의 조병화 원로 시인은 시인을 부를 때 소액의 교통비를 주던 시절 늘 가격을 높이 부르셨다. 사석에서 후배 시인들이 말을 못하니 당신께서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다른 것은 몰라도 평론가가 미리 보는 안목으로 살기에 손을 내미는 게 순서다. 이렇게 해서 '카카오 크리틱' 시대란 또 하나의 판이 열린다. 후배들이 혜택을 보았으면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무리 세태가 진흙탕이라 해도 그 진리하나 만큼은 지켜 주고 싶다. 의리가 밥먹여 주는 것 역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다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못된다. 그보다는 용불용설, 쓰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카카오 크리틱스를 창안한 이유다.
눈도장 인사 관행에서 비평을 보호하고, 서로 아는 안면에 난감한 입장으로 부터 서로가 자유로워지는 것의 자구책이다. 어느 때라도 크레이티브가 살아야 호흡이 가능하다. '카카오 크리틱'으로 돈을 벌지는 않더라도 시간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곧 돈이다. 시간의 사용이 달라졌음을 말한다. 돈에 대한 이중적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지식과 평가에 AI가 왔으니 우리는 자기 일을 찾아야 한다. 그 메세지를 알아차린다면 더 좋겠다. 혹시 입금이라도 되면 무가로 운영 서비스하고 있는 K클래식뉴스 신문 발행에 써야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