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미국에서 일시 귀국하여 회포를 풀고 있는 권수정 피아니스트를 1일 오후 1시 나비부인 카페에서 만났다.
지금은 사라진 경기도 호서대학 출신 피아노과 졸업생이 당당한 주류 음악가가 된 사연?
‘피아니스트’이기보다 ‘음악가’여야 하죠. 가장 많은 인구 수를 가진 피아니스트. 그런데 생존율은 가장 희박하다. 피아노가 어떻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데까지 끝까지 피아노를 칠수 있을까? ‘피아니스트’ 란 카테고리에 묶여서 더이상 확장되지 못하는 것에 원인을 찾아보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이기보다 ‘음악가’라는 개념 설정이 좀은 더 폭넓고 그래서 다양한 변화 적응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피아노만으로, 피아니스트 만으로, 사는 것의 절대 희박함은 이미 충분히 검증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연주력, 테크닉, 유학 학위, 최고위과정, 각종 콩쿠르 등의 기술과 경력 쌓기 관행이 우리를 누르고 있다. 가히 획일의 끝판왕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희생이다. 피아노에 수많은 시간을 집중해 쏟았지만 생존이나 확장성의 노력은 발달하지 못했다. 그 이해나 접근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솔직히 독주, 솔로 피아니스트를 일반 음악회에서 초청하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그러다보니 독주회가 아니면, 드물게 오케스트라 협업이 아니면, 설무대가 없다. 해석에 집중하다 보니 창의를 잃어버린 것이다.
또 하나는 피아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다. ‘피아노 반주’를 앙상블로 존중하기 보다 하위 개념에 둔다. 그러니까 죽어도 독자성을 위해 반주로 내려가지 않고 버티려고 솔리스트를 지향한다. 강사라도 하려면 기존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오래 전엔 실내악 하자고 하면 '나를 뭘로 아느냐? 하는 시대가 있었다'고 김영준(바이올린) 원로 교수는 술회한다. 사회적 인식도 그러하지만 대학의 실적 평가 등의 구조적 모순이 1천명 독주자에서 1명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와 환경을 만들고 말았다.
학위, 각종 콩쿠르 획득. 기술, 경력 쌓다 놓쳐버린 사회 적응력
그래서 일부의 피아니스트들은 해설을 병행하거나 각종 기획 콘셉트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사회성과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피아노의 영역을 넘어 포괄적 음악을 보면서 존재를 끌어간다. 때문에 이제는 피아노를 전공했다지만 피아노로 생존할 수 없는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최근에 한국피아노학회 장혜원 이사장이 고안안 콘체르티노 앙상블은 독주 피아노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탁월한 시도로 보인다.
권수정 피아니스트는 지금은 사라진 호서대 피아노과를 졸업했다. 국내에서는 학력의 벽을 극복하기 힘들었기에 독일로 건넜다. 그러나 이곳 좋은 학교들 역시 국내의 우수 대학들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로 낄 틈이 없었다. 그렇지만 편견 없이 잠재력의 가능성을 발견해준 교수를 만나며 그의 피아노 인생은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현재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뽑았다’는 그 한마디에 가슴이 뛰었고 , 이 말이 힘들때 마다 동력이 되어 살아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독일에서 좋은 교수들을 만났지만 이 견고한 독일 사회에 역시 자신이 설 땅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행 비행기를 탓고, 여기서 그는 제2의 피아니스트로 도약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와 접촉한다.
자신을 마음을 열고 받아 준 너무나 훌륭한 교수님들과 좋은 기회에서 그는 자신감을 얻었고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재즈를 비롯해 다양한 뮤지션들과 '나눔 콘서트'를 하면서 사회와 네트워크 형성에 눈을 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독일이나 한국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훨씬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결론은 피아니스트이기보다 음악가여야 한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땀과 정성, 열정을 바친 만큼 '피아니스트 역할'에 대해, 살아가는 존재 방식에 대해 패러다임을 바꾼다면 정말 피아노로 날마다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구체적 제안은 이렇다. 쇼팽이나 브람스, 베토벤은 조성진, 임윤찬, 백건우에게 맡겨두고, 생활음악이 아니라 음악생활로 피아노를 바꾸면 어떨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서양 레퍼토리를 할 때의 스트레스를 잠시 맡겨두고, 그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우리 민요나 우리 역사 스토리를 녹인 K피아노 곡은 어떤까? 여기엔 서열도 없고 비교 대상도 아직은 없다. 블루오션인 셈이다. 우리 것을 지금부터 공부하면 당신이 1등이 된다. 그리고 해외도 유럽도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절이 지나면, 때가 지나면 소비자들은 신상품을 찾는다. 그것이 트랜드의 변화라는 것이다. 어릴적 학교 갈 때,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서 한번도 얼굴을 못본 피아노 치는 소녀를 동경한 적이 있다. 어떻게 생겼을까? 그러니까 60년을 훌쩍 지난 세월의 이야기다. ㅎㅎ~
굳은 손가락 풀고 다시 뛸 찬스가 왔으니, K클래식이 부활이다
내년이면 광복 80주년. 필자가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에 K 클래식 피아노 투어 14개 지역에서 피아노 온(대표 이혜경 교수)과 함께 공연을 펼쳤다. 쇼팽이 폴란드를 떠날 때 한 줌의 흙을 싸들고 간 까닭이 무엇인가? 예술에 국경은 없지만 예술가에게 조국은 있다. 다시 말해 모국어가 살아 있는 예술가, 피아니스트가 나와야 할 때다. 바야흐로 K콘텐츠시대. 우리가 독일, 비엔나가서 베토벤, 모차르트 하는 것 보다 경쟁력이 있지 않겠는가? 당당한 주체성을 가질 때, 우리는 서양클래식도 있고 K클래식도 있으니 둘을 가진 유일한 음악가가 된다. K클래식이 죽어라고 힘을 쓰는 이유다.
‘K 클래식 부활 피아노 콘서트’ 만들어 회복 운동 펼칠 것
건반에서 손뗀 지가 10년 혹은 20년이라 자신이 없다 할지 모른다. 근육은 다시 살리면 되고, 욕심을 던져 버리고, 대신 철이(?) 들지 않았겠는가. 우리 것, K 피아노에세월이 좀 필요하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처럼. 아니 찾았다. 임동창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의 호가 '그냥'이다. 그러니까 '피아니스트'란 말에 너무 현혹되거나 주눅들 필요도 없이, 되는 대로 그냥 그냥 사는 것에서 처럼 힘빼고 즐겁게 사는 것을 찾아 본보자는 것이다.
솔직히 인생 자체가 피아노인 사람들, 평생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던 그 꿈을 살리자는 것이다. 남하는 것만 보면서 안치면 병이 든다. 놀면 뭐하니? 방송 프로그램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권수정 피아니스트는 '나눔'을 키워드로 잡은 것일까? 그 안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 밖에 모르면 '나'만 남는다. 아니 죽는다. 그래서 내가 중심이 아니라 상대가 중심인 것에 시장이 있다. 바로 신의 한 수다! K클래식은 모든 피아니스트의 부활을 꿈꾼다. 실행에 옮기고 싶다. 광복 80주년, 우리 문화 정체성의 독립 전사들을 모우고 있다. 당신은! 나설 것인가!
(* 악보를 원하시면 musictak@hanmail.net)
해피버스데이 권수정 피아니스트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