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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칼럼] ‘돌격 앞으로 킬러 입시’를 ‘창의적 스스로 공부 축제’로

정답이 아닌 모두가 답이 달라야 하는 메타버스 세상

K-Classic News 이기영(초록교육연대, 호서대 명예교수)| 

 

 

요즘 윤대통령의 킬러 문항 발언으로 교육계가 떠들썩하다. 창의성, 윤리성 등 교육의 기본목표는 다 사라지고 오로지 의대 점수따기 경쟁만 남은 한국교육의 본모습이다. 0.1%만 이겨도 모든 권력을 싹쓸이하는 소선거구 양당제 선거제도와 더불어 경제선진국이 된 한국 국민들을 출생율 세계 최악의 불행한 오징어 게임 지옥으로 끌어들인 양대 극한 경쟁원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은 교육개혁은 아예 멀리하고 단기적 문제만 해결하는 관리형으로 일관해 오다가 오히려 창의성 교육을 후퇴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젠 우리 사회에서 변별력 중심의 킬러 입시를 속히 없애버리고 여야가 함께 모여 교육의 본질적 가치인 창의성, 윤리성을 비롯한 인성교육을 지향해야 국민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나라로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가 다 할 수 있는 국영수 위주의 전근대적 기능교육보다 질문 및 토론을 중심으로 상상력과 창의력 융합력 등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스스로 공부’로 바뀌어야 한다. 

 

아산 거산초등학교의 기적

 

2000년 초 동화를 쓰면서 독서운동을 해오던 인근 초등교 선생님 몇 분이 내 연구실을 찾았다. 아산 거산분교는 여느 시골학교처럼 학생이 점점 줄어들어 폐교선고를 받았는데 이 선생님들이 시골인 거산초로 전근을 자원해 생태혁신학교로 살리고 싶으니 자문위원장직을 수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1998년 음식물 쓰레기 발효사료화 연구로 천주교 환경상(과학기술부문)을 받은 후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환경십계명’을 만들어 환경문화운동에 나섰던 난 이렇게 자원해 오신 6분의 선생님들과 의기투합해 생태교육중심의 ‘거산혁신교육’을 시작했다.

 

우선 학생들을 위한 재미있는 교재로 ‘환경십계명’을 10챕터로 만들어 챕터마다 각각 주제 노래를 만들어 7살 딸 인아와 함께 노래한 음반CD까지 부친 ‘노래하는 환경교실-현암사’ 책을 출판했다. 마침 임옥상 화백이 직접 삽화를 담당해 힘을 실어줘 수만 부가 판매되자 논술명가 한우리 필독서가 되는 등 환경도서부문 상들을 석권했다.  

 

또한 선생님들과 상의해 우선 아이들 체험학습을 도울 유기농 전문가, 양봉전문가, 숲해설가, 수의사, 건축사 등 전문가들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했다. 봄이면 산에 들에 나가 나물을 채취하고 쑥을 뜯어 운동장에 모여 찐 찹쌀을 떡메로 쳐 쑥인절미도 만들어 먹었다. 산수공부는 예를 들면 모든 학생들이 쑥떡을 5개씩 가지려면 쑥과 찹쌀이 얼마나 필요한가 계산하기 등 이런 체험에 필요한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배웠고 국어는 수업 체험담을 쓰면서 자기 생각을 담기 위한 논술과 일기를 쓰는 실용적 방법으로 배웠다.

 

양봉전문가는 벌에 쐬지 않고 벌통에서 꿀 따는 법을 가르쳐주어 아이들이 직접 꿀을 따 먹도록 해주니 신이 났다. 아이들이 직접 텃밭 농장에 심은 고구마는 물론 가을엔 배추로 절임김치를 담가 우리 집으로도 보내주었다. 급식용 채소들도 아이들이 직접 재배했고 나머진 주변 농민들이 생산한 로컬푸드로 공급해 ‘유기농 무상급식’을 실현했다. 당시 난 환경과학수업을 재미있게 진행하기 위해 나중에 교과서에도 등재된 ‘김치 된장 청국장’ ‘지구를 위하여’ 등 흥겨운 환경노래를 만들어 직접 기타치며 삶의 중요성을 아이들과 공유했다.

 

또한 아이들 수업에 직접 참여해 도와주시던 학부모들에겐 음식과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담은 ‘밥상머리 교육’을 실시했다. 이렇게 자연체험수업을 중심으로 발표와 토론에 아이들이 직접 수업에 참여하면서 공부가 재미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학생들이 전학을 왔다. 게다가 주말이나 방학이면 다른 학교 선생님까지 버스를 대절해 거산초교의 수업방식을 배우러 몰려왔다. 당시 난 뜻을 함께하는 500명이 넘는 초중고 선생님들을 모아 ‘초록교육연대’를 결성해 혁신교육의 전파를 지원했다. 이렇게 시작된 거산분교의 혁신교육은 3년 만에 전교생이 150명을 넘자 2005년 전국 최초로 분교가 본교로 승격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2007년엔 당시 경기교육감 선거에 나선 김상곤 교수가 찾아와 거산의 혁신교육에 대해 들은 뒤 ‘유기농 무상급식’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진보계열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자 혁신학교는 제도권에서 지원해 주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가 700여개의 혁신학교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다음 해 보수정권으로 바뀌자 일제 강점기와 독재정치의 전유물이었던 전국학력고사가 부활되면서 혁신교육은 위축되었고 ‘김치 된장 청국장’ 노래도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게다가 당시 수년간 함께 거산의 교육혁명을 이끌었던 박장진 교장선생님까지 암으로 돌아가시자 난 학교에서 멀어졌다. 

 

학생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되찾아 주자

 

그런데 몇 년 전 아산의 거산초가 전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학교로 뽑히고 미래의 자연학교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특히 십여명 남짓했던 초기 동네 출신 거산 졸업생들이 다들 한국 명문대와 미국 아이비리그에도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더해 주었다. 당시 난 공부의 기쁨을 맛본 이 학생들이 거산 졸업 후 이어지는 입시지옥 생활을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오래 전 졸업식 때 이 학생들이 써서 책으로 묶어준 ‘감사의 편지’를 꺼내 읽어 내려가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마침 당시 거산교의 교육혁신을 취재했던 KBS 방송국 피디출신 교육전문회사 사장이 호서대에 와서 혁신교육특강을 했다. PBL(Project Based Learning, 과제중심교육)과 Flipped Learning(학생들이 주도하는 거꾸로 교육) 특강이 끝난 후 질문 시간에 난 거산의 감동 스토리를 말하며 그 이유를 질문했다. 그러자 강사는 ‘이교수님께서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를 아이들에게 체험을 통해 직접 보여 주셨잖아요!’라고 답했다. 추사 김정희는 유배지에서 돌아와 말년에 서울 과천에서 지내면서 인생3락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성과의 연애, 친구들과 술한잔하며 어울는 일, 독서를 들었는데 그중 독서가 제1이라고 술회했고 이는 거산학생들과 나도 마찬가지이리라.  

 

챗봇이 글을 대신 써주는 세상이 돼버렸는데도 우리 교육엔 아직도 일제 강점기 유물인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변별력 높은 학력평가란 미명하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 결과 한국 학생들은 생각하는 능력과 자존감을 형성하지 못해 질문이나 발표 등 자기표현에 매우 서툴러 외국유학시 애를 먹는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창의력이 필요한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안 나오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밥상머리에서 시작된 질문과 토론 위주의 하부르타 교육을 받아 세계 노벨상의 3분의 1을 싹쓸이 해 가고 있다. 

 

절대 평가로 수능비중 확 줄이고 창의성 교육으로 

 

몇 년 뒤엔 고교졸업생 수가 30만명 부근으로 떨어져 전국의 대학 중 절반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지방대학들은 벌써 긴장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엔 학생 들마다 답이 죄다 다를 수 있는 각자 상상의 메타버스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답이 오직 하나로 사고를 경직시키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킬러문항이나 만드는 전근대적 이상한 교육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한 줄 세우기 위한 상대평가로 원점수조차 공개하지 못하는, 출제위원들의 면피용 킬러문항이 결국 사교육비를 25조 원에 이르게 만들고 아이들을 입시 지옥에 빠뜨린 것이다. 수학의 경우 미국의 SAT는 그저 중학교 수준의 미적분 개념의 이해를 구하는 기본 수준의 학력만을 요구한다. 독일은 의대 등 지원자가 많은 대여섯 개 학과만 입학생 수를 제한하는데 수용가능 인원을 초과할 경우 20%는 아비투어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배정되고, 20%는 입학 대기자에게 돌아가 대기할수록 점수가 높아져 웬만하면 의대도 2~3년 정도 기다리면 들어갈 수 있다. 나머지 60%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선발하는데 일반 학과는 아비투어 성적표와 지원서를 제출하면 대체로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일 고교생들은 도중에 1년을 휴학하고 원하는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해 진로는 정하거나 세계여행을 다니는 등 여유로운 고교시절을 보낸다. 독일은 입학이 쉬운 대신 대학의 학과 시험과 졸업사정이 매우 까다로워 자신의 능력을 넘어 무리하게 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중간에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자연 해소된다. 

 

이젠 선진국반열에 오른 한국도 살인적 오징어 게임 지옥을 만드는 수능중심의 상대평가방식을 버리고 절대 평가로 수능을 참고만 하는 북유럽처럼 대학입시의 지나친 경쟁적 요인들을 없애면서 무상교육으로 바꿔나가야 할 때이다. 일생 단 한번 써먹을 일도 없는 요령만 키우는 킬러문항을 숙지하기 위해 밤 12시까지 학원에 다니는 등 극히 비효율적인 ‘돌격 앞으로 킬러 입시’ 생지옥을 당장 없애자. 이젠 4차산업혁명 사회가 원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입시를 자연체험과 발표·토론 위주의 ‘스스로 공부’ 축제로 바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