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송인호 칼럼 ]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다. 국립예술단체 지방 이전이 필요하다

이해 안돠는 어느 신문 기자의 해법??

[ 송인호 칼럼 ]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다. 국립예술단체 지방 이전이 필요하다

K-Classic News 송인호 (굿스테이지 편집장) l 작금의 시대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국립예술단체도 변해야 살아남는다. 물은 흐르면 항상 맑은 물이지만 고이면 썩는다. 혁신은 항상 발전을 모태로 하고 있다. 얼마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한국 2035'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혁신'을 하겠다는 소리다. 여기에는 아주 방대한 계획을 담고 있다. 이 계획에는 국립예술단체의 지방 이전을 담고 있는 혁신의 방안을 담고 있다. 문제는 현재 국립예술단체들의 반발이다. 그들은 왜 반발하고 있는걸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혁신이 싫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대로 잘 먹고 잘 살아 왔는데 왜 굳이 혁신을 해야하며 변화를 가져야 하나? 이다. 이것은 국립예술단체로서는 참 어쩌구니 없는 변명이다. 국립예술단체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즉, 국민을 위한 단체이다. 그런 국민을 위한 단체가 혁신을 거부한다는 것은 정부시책에 역행을 하겠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논리의 신문기사 제목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반대하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많은 언론에는 국립예술단체에서 뿌린 보도자료가 기사화 되어 나왔다. 자세히 읽어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것은 완전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모 언론사 기사제목을 보면 아연실색 할 정도다. "가난한 예술인, 더 가난해질 '문화한국 2035'"으로 뽑았다. '가난한 예술인'이라니? 국립예술단체에 소속된 예술인이 가난하다는 말인가? 그들은 월급이 보장된 예술인이다. 공연을 하면 공연수당도 따로 받는다. 물론 액수야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건 다른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국립예술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민간예술단체의 예술인들은 월급이란 개념이 없다. 공연수당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보자면 국립예술단체 예술인들은 민간단체 예술인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 않나.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가난한 예술인'인가? 민간단체 예술인들이 보면 분연히 들고 일어날 일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가난해질'이라고 한다. 어떤 근거로 더 가난해 진다고 확정을 하나? 지방에 내려가면 더 가난해지나? 이건 지방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지방은 다 못 살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다 부자다' 라는 무지몽매의 인식이다. 국립단체 예술가들이 지방에 내려간다고 가난해 진다면 국가가 일부러 가난하게 만든다는 논리인데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망발인가. 기사 서두에 보면 "정작 현장 예술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 추진이라며 국립예술단체 소속 예술인들은 단체 성명을 통해 정책 철회를 요구,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 예술인의 의견이 왜 필요한가. 그들은 국가가 월급을 주는 국가 공무원임을 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방사람들도 우리 국민이다. 라는 것이다. 서울사람만 대한민국 국민인가. 전라도 광주사람은 다른 나라 국민인가? 대전 사람은? 부산 사람은? 강원도 강릉 사람은? 경북 안동 사람은? 다 우리 국민이다. 그래서 지방사람도 국가가 주는 문화예술향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오히려 지방에 있는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뿐만아니라 예술향유를 넘어서 그것을 유치시켜 뿌리내리게 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도 있다. 지금 지방은 죽어가고 있다. 어떤 처방을 내려서라도 살려야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이다. 그런데 지방으로 내려가면 안된다고 하다니 이건 결국 저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집단이기주의 아닌가. 그들의 월급은 누가 주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기들만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 무슨 근거로 '단체 성명을 통해 정책 철회를 요구'한단 말인가. 정책이 잘못돼 사지(死地)로 몬다면 몰라도 지방에 있는 우리 국민들을 위한 이동인데 그게 왜 잘못된 정책일까? 이것은 자신들이 내려가기 싫은 변명에 불과하다. 기사에서는 또 "국립예술단체의 법인화는 예술인들의 고용 불안을 증식시키고 있다."고 썼다. 이것도 어떤 근거로 국립예술단체가 법인화가 되면 고용 불안이 될까? 법인화가 된다고 예술가들 없이 공연을 할 수 있나? 기사는 연달아 이렇게 썼다. "정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창작 활성화'라는 전략 목표와 '청년예술인 기회 확대 및 신진창작자 발굴 양성'이라는 추진 과제를 내놓았는데, 이는 사실상 정단원 채용을 중단하고 프로젝트 단위 운영해 결국 시장의 고용 불안을 높일 것이란 게 예술계의 지적이다. " 정단원 채용을 중단하고 프로젝트 단위 운영해 결국 시장의 고용 불안을 높일 것이라 했는데 이게 또 무슨 앞뒤가 안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프로젝트 단위 운영이 왜 나쁜가? 지금 국립단체들 중에는 '국립오페라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프로젝트 공연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두 단체는 기존 고정 정단원보다 훨씬 더 많은 예술가들이 고용되어 작품을 만들었다. 고용이 더 늘었다는 말이다. 고용불안은 정단원이 느낀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정단원은 평생직으로 생활한다. 문제는 되려 고용이 안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정년까지 보장이 되기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질 않는다는 것이다. 매해 수많은 청년예술가가 사회에 나오고 있다. 이들은 갈데가 없다. 왜? 제대로 번듯하게 월급을 주는 공연단체는 국립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저 들어간 예술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빈자리가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결원이 생기면 수백대의 일의 경쟁률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젊은 청년예술가들은 어떻게 일자리를 얻겠나? 예술직종은 나이와 경력에 따라 종신 고용이 힘든 직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보장이란 이름 아래 능력치에도 훨씬 못미쳐 작품 질적 저하가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법인화가 자생력을 키우는 조건이 될수도 기사는 또 "또한 법인화에 따른 정부 지원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예술 활동이 수익성이 낮아 결국은 정부 지원이 축소, 예술단체의 자생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고 썼다. 이것도 논리가 맞지 않는다. 법인화를 한다고 무조건 정부지원이 축소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나? 그리고 예술단체의 자생력 강조는 당연하지 않나? 국민의 세금을 쓰는 단체가 편안하게 돈 걱정없이 작품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도태되어도 좋다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돈 걱정없이 편안하게 작품하도록 해 줄테니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지 않는가? 결국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편안하게 서울에서 누릴것 다 누리면서 살겠다는 이기주의가 아닌가. 또 기사를 살펴보면, "문체부가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조치라는 명목 아래 국립예술단체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는 것 또한 기대보다 걱정이 큰 상황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예술 생태계를 고려해 봤을 때, 단순한 물리적 이전만으로 지방 문화 활성화가 가능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라고 썼는데 단순히 물리적 이전만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싶다. 국립예술단체가 내려가게 되면 그에 딸린 인프라가 다 내려간다. 당연히 국립의 노하우와 자원이 함께 내려가 그 지역의 예술가와 함께 동반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 기사는 또 "문화예술뿐 아니라 한국의 핵심 경제, 산업 시선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의 단체들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건 지역 문화 융성이 아닌 공연 기회 감소, 연습 환경 악화, 생활 기반 붕괴 등 현실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라고 했는데 이것도 해괴한 논리다. 한국의 핵심 경제와 산업 시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서 꼭 문화예술이 서울에 있어야 하는가? 지금의 시대는 옛날 속칭 쌍팔년시대가 아니다. 이때는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서 그렇다고 치지만 지금은 지방에도 훌륭한 극장도 많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도 많다. 그런데 공연기회 감소와 연습환경 악화라니 그럼 지방에 있는 시립예술단체는 공연을 하지 않나? 연습도 제대로 못하나? 오히려 국립예술단체가 지방으로 내려감으로 공연도 더 많아지고 연습환경도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공연기회 감소는 단체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안하려고 하는게 문제지 공연을 하겠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생활기반 붕괴'의 현실적인 문제라고 적시했는데 이것도 결국 자기들의 생활터전이 서울 중심으로 해 왔기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면 불편하다는 것이 아닌가. 지방에도 사람이 잘 살고 있다. 결국 자신들의 생활이 불편하다는 얘기 기사는 또 "또한 기존 지방에 자리 잡은 국가예술단체들이 그동안 쌓아 놓은 체계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 문화계 침식이란 비난마저 나온다." 라고 썼는데 지방의 시립예술단체들이 그동안 쌓아 놓은 체계 자체를 뒤흔다고 했는데 이 또한 무슨 근거로 말하는가. 국립예술단체가 내려감으로 서로 상생효과는 없다고 보는가. 모 지방의 시립예술단체 예술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예산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가 힘들다고 했다. 예산의 대부분 인건비로 지급되고 10%정도가 작품비에 투입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예산 확보를 위해 매번 시의회에 찾아가 읍소도 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회식자리에도 찾아가 속된 표현으로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야 그나마 있는 예산도 감축되지 않고 받을수 있다고 한다. 이런것들이 국립예술단체가 내려가 서로 협업관계를 유지한다면 더 많은 예산을 지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할까. 연이은 기사에 "문체부에서 발표한 2024년도 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1인당 평균 연 소득은 1055만 원으로, 이는 전 국민 1인당 평균 연 소득인 2554만 원의 41.3%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예술인들은 '수입'에 연연하지 않아 왔다. 자신의 창작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표현하는 데에 몰두하고, 이를 위해 지갑 속 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라고 적었다. 맞다. 예술인의 월소득이 1백만원도 안된다. 그런데 국립예술단체 소속 예술인들은 월 3백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다. 공연을 하면 공연수당도 따로 받는다. 물론 직급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민간예술인에 비해 월등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나? 그런데 이들이 편안하게 '국립'이란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면서 정작 국민들을 위한 지방 이전은 반대한다는 것은 분명 자기모순이며 스스로의 이기주의를 드러낸 것이다. 이들의 월급은 누가 주는가. 또 예술인들은 수입에 연연하지 않아왔다고 하는데 이게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예술인들은 밥도 안먹고 사나? 수입이 없으니 연연하지 않았지 그들이 수입이 늘면 더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지금의 국립예술단체 소속 예술인들은 수입이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기사 말미에 "예술이 살아야 문화가 지속될 수 있다. 문화예술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예술인들의 창작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될 수 있길 바란다." 라고 적었다. 당연하다. 예술이 살아야 문화가 지속될 수 있다. 문화예술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예술인들의 창작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은 민간예술인에 해당된다. 국립예술단체는 이미 충분한 대우와 보호를 받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이 만들어 내는 예술작품의 향유를 지방에 있는 우리 국민들도 누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지방의 민간예술인도 같이 참여하는 상생의 예술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대안이다. 지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지금 지방은 소멸위기에 봉착해 있다. 지난 5년간 지방의 국립대 자퇴생이 평균 7천명이 넘는다. 한해 1천명이 자퇴하고 서울과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하고 있다. 이것은 무얼 말하는가. 서울은 이미 포화상태다. 서울은 국,시립예술단체가 중복되어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민들은 수준높은 서울시예술단체와 고품격의 국립예술단체의 작품을 함께 향유하고 있다. 이것은 편향된 예술향유다. 예전에 노무현정부시절 국가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한 사례가 있다. 당시에는 굉장한 반발이 있었지만 그래도 강행했다. 지금은 자리잡아 잘 운영되고 있다. 이제는 국립예술단체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말이다. 예술의전당에 국립예술단체들이 상주하고 있다

[비평 노트 ]비평이란 무엇인가?

서구의 비평 철학을 참고하여 독창적인 비평 체계를 구축해야

[비평 노트 ]비평이란 무엇인가?

K-Classic News 김은정 기자 | 비평은 서구 선진국에서 문화와 예술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으로 인식되며, 학문적·사회적 가치가 높게 평가됩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등에서 비평은 단순한 감상평이 아니라 예술·철학·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학문적·사상적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각 나라별 비평에 대한 인식과 철학적 어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독일 – 철학적·이론적 비평 전통 독일은 칸트, 헤겔, 벤야민 등 강한 철학적 전통을 바탕으로 비평을 인식론적·미학적 분석의 도구로 활용해 왔습니다. 문학과 예술 비평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작품과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간주됩니다. -어록-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비판(비평)이 없으면, 사유는 방황할 것이다." → 비평은 단순한 감상의 영역이 아니라 사유를 정돈하고 철학적으로 심화하는 과정.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비평은 예술작품을 구제한다." → 작품은 비평을 통해 시대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프리드리히 실러 (Friedrich Schiller) "미(美)는 자유의 형식이며, 예술 비평은 그 자유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 비평은 예술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2. 프랑스 – 사회적·정치적 비평 전통 프랑스는 비평을 정치적·사회적 참여의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문학·예술 비평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며, 철학자들이 문화 전반에 대한 논평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왔습니다. -어록-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비평이란 저자의 죽음 이후 시작되는 독자의 창조적 해석이다." → 텍스트의 의미는 고정되지 않으며, 비평을 통해 독자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것.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문학 비평은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행위이다." → 비평은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변혁하는 과정.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비평은 권력의 기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적 실천이다." → 비평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도구. 3. 오스트리아 – 심미적·형식주의적 비평 전통 오스트리아의 비평은 심미적 탐구와 형식 분석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빈 학파, 비엔나 서클 등의 철학자들은 문학·음악·미술 비평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어록-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예술 비평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드러내는 형식이다." → 예술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으며, 비평은 그것을 탐색하는 도구.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Adorno) "비평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드러내야 한다." → 비평은 단순한 미적 분석이 아니라, 예술이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밝히는 과정. 4. 영국 – 문학 중심의 실천적 비평 전통 영국에서는 비평이 문학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실천적인 접근 방식이 두드러집니다. 고전 비평부터 현대 문예 비평까지, 비평을 통해 문학적 가치를 판단하는 전통이 강합니다. 어록 T.S. 엘리엇 (T.S. Eliot) "비평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창조적 평가이다." → 비평은 작품을 단순히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행위. 매튜 아널드 (Matthew Arnold) "비평은 문학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 비평을 통해 예술과 문학의 가치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관점. 존 러스킨 (John Ruskin) "비평의 목적은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 비평은 작품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 5. 미국 – 대중문화 비평 및 실용적 비평 전통 미국은 대중문화 비평과 실용적 비평이 강한 나라입니다. 영화, 음악, 문학, 시각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록- 수전 손택 (Susan Sontag) "비평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행위이다." → 비평이란 작품을 단순히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할. 해럴드 블룸 (Harold Bloom) "위대한 비평은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는 것이다." → 비평이 문학을 해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적 가치 기준을 만들어간다는 점 강조. 클레멘트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 "비평은 예술을 시장 논리에서 구제하는 것이다." → 상업성이 강한 현대 예술 환경에서 비평이 예술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결론: 비평의 역할과 가치 서구 사회에서 비평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예술·문학·문화·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K-Classic의 경우, 한국적 비평 전통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구의 비평 철학을 참고하여 독창적인 비평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비평이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송인호 칼럼] 공연예술의 백년대계를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

[송인호 칼럼] 공연예술의 백년대계를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

K-Classic News 송인호 굿스테이지 발행인| 전 세계가 이미 K-Culture의 물결에 휩싸인지 한참 됐다. 이제 K-Pop이니 K-Food니 하면 식상한 소재가 될 정도다. 여기에 K-Classic을 추가하는 것도 진부한 얘기가 됐다. 사실 K-Classic은 예전부터 세계무대를 주름잡고 있었다. 몇 해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던 주,조연급 가수들이 한국으로 귀국하자 그 관계자들이 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당장 무대에 오페라를 올릴 수 없다고 걱정들이 태산이었다. 그만큼 한국 성악가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종 세계 성악콩쿠르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내로라하는 콩쿠르에서 죄다 한국성악가가 입상하자 심지어는 이제 그만 나오라는 푸념도 우스갯 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정작 국내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세계무대를 휩쓸고 있는 성악가들이 국내 무대에 설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비단 성악 뿐만아니다. 클래식 음악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 고유성을 지닌 창작의 음악적 활동은 희귀한 상황이 돼 버렸다. 작년 국공립공연 단체의 송년음악회와 올해 신년음악회의 연주 레퍼토리 목록을 보면 거의가 외국곡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세계적인 베를린필의 신년음악회 연주 목록에는 우리나라 작곡가의 곡이 당당히 올라가 있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까. 이것도 K-Classic의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나라 국내 상황이 웃고픈 일인 것이다. 최근 문체부에서 산하 국립공연단체 다섯곳의 사무처를 통합해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각 공연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통합은 장,단점이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각 단체별 고유성과 자율성이 침해된다고 말들을 하는 사람도 있다만 통합이 꼭 고유성과 자율성을 해친다고 보진 않는다. 통합된 속에서도 고유성과 자율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운용의 묘다. 어쩌면 통합이 더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의사결정도 빠르다. 중첩되는 업무를 단일화 함으로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중첩되거나 방만하게 운영되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할 수 있어 낭비적인 요소를 제거 할 수 있기도 하다. 예전에 예술의전당이 지어 지기전에는 모든 단체들이 국립극장 산하에 통합되어 운영된 적이 있다. 이때도 공연단체는 고유성을 갖고 활동했고 사무 행정만 통합으로 운영했다. 이후 예술의전당이 지어지고 기존 국립극장 장소의 협소함과 재단법인화 추진으로 각 단체별 독립적인 기구로 떨어져 나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동안 30여년 넘게 별도로 독립된 단체로활동하면서 어디에 번듯하게 내놓을만한 성과가 없다. 조직만 비대해졌다. 특히 서두에서 얘기한 K-Culture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립공연단체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면서 보여줄 우리의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이란 단체의 성격으로 내세울만한 작품이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이다. 외형으로 비대해졌지만 그에 따른 결과물들은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무대에 자신있게 보여줄 만한 작품이나 공연이 없다는 것이다. 대중문화가 K-Pop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을때 순수공연예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저 서양의 그것들 가져와 연주하기에 바빴다. 몇몇 단체의 눈부신 성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냥 '국립'이란 이름의 단체로만 존재했을 따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것이다. 세계는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 K-Culture의 신드롬이 일어난 것은 인류 역사이래 처음으로 맞는 절대절명의 기회다. 이 기회를 제대로 잡고 계획해야 향후 수백년동안 먹거리가 생긴다. 문화는 한 번 스며들면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이럴때 문화체육관광부가 향후 10년간의 문화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담은 정책안 ‘문화비전 2035’를 발표한다는 것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 ‘문화비전 2035’야 말로 10년으로만 끝낼것이 아니라 향후 100년까지 내다 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 시대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미 세상은 웹으로 네트워킹 되었다. 아직도 예전 방식으로 국민(관객)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바뀌어져야 한다. 국립단체의 통합은 단순한 통합을 너머 전 세계를 네트워킹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원래 개혁은 기득권자의 심한 저항에 부딪히는 법이다. 그동안 방만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된 단체의 업무를 과감하게 통합해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조직으로 태어나야 한다. 당연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Opus

더보기

Opinion

더보기

Hot Issue

더보기

반려 Friends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