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K-Classic 회장· 예술비평가)

2026년은 세 개의 시간이 한 점에서 만나는 해다. 한글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 그리고 ‘광화문’ 명명 600돌. 이 세 시간의 축이 겹치는 지점에서 우리는 묻는다. 대한민국의 얼굴인 광화문은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을 온전히 상징하고 있는가. 3·1절 107돌을 맞은 3월 1일, 경복궁 정문 광화문 광월대 앞에서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설치를 환영하는 범국민 출범식이 열렸다. 이는 단순한 서체 교체 운동이 아니다. 공간의 상징체계를 다시 세우는 문명적 질문이다.
이름과 문자의 만남
세종대왕이 1426년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 붙였을 때, 그 이름에는 통치 철학이 담겨 있었다. ‘밝은 덕으로 세상을 교화한다’는 뜻. 이름은 국가 이념이었다. 그리고 20년 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뜻을 세우는 이름과,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문자. 이름이 방향이라면, 문자는 확산의 도구였다. 그래서 오늘날 광화문은 단순한 궁궐의 정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정문이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류 문화의 관문이다. 그렇다면 그 문에 걸린 현판은 과연 오늘의 주권 국가를 상징하고 있는가.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뜻과 문자의 역사적 합일을 복원하는 일이다. 세종의 뜻을 세종의 문자로 새기는 작업이다.
한글은 문자 이상의 인프라다
한글은 단순한 표기 체계가 아니다. 근대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산업화·대중교육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인프라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가 한글날을 제정했을 때, 그것은 문자 기념일이 아니라 문화 독립 선언이었다. 광복 이후 한글 교과서, 한글 공문서, 한글 행정 체계는 국가 재건의 동력이 되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K-팝과 K-콘텐츠의 확산 역시 한글이라는 자주적 문자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광화문 한글 현판은 이 역사적 흐름의 상징적 완결점이 될 수 있다. 문자 정책이 아니라 문화 정책이며, 정체성 정치의 문제다.
사대의식과 자주정신의 갈림길
역사는 늘 상징을 둘러싼 논쟁을 낳는다. 한글 현판 설치 역시 단순한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사대적 문화 습속을 넘어 자주 문화 국가로 서겠다는 선언이자, 식민 잔재와 문화 종속의 기억을 넘어서는 작업이다. 광화문은 조선 왕조의 정문이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얼굴은 시대의 정신을 드러낸다. 한글이 세계 속에서 당당히 쓰이는 오늘, 대한민국의 정문에 한글이 없다는 사실은 상징적 공백을 남긴다.
광화문, 동방의 K 르네상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이 피렌체였다면, 한글 문명의 중심은 광화문이다. 피렌체가 인간 중심 사유와 예술의 부흥을 이끌었다면, 광화문은 백성 중심 정치와 과학 창조의 상징이다. 세종은 훈민정음뿐 아니라 측우기·앙부일구·혼천의 같은 과학 기구를 통해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 했다. 이는 단순한 군주가 아니라 문명 설계자였다. 오늘 우리는 K-르네상스를 말한다. K-콘텐츠, K-기술, K-컬처가 세계를 향해 확장되는 시대다. 그 중심 광장에 세종의 문자를 다시 세우는 일은 미래로 향하는 선언이 된다.
한글문화 독립의 의미
3·1절에 발표된 ‘한글문화 독립 선언’은 단순한 행사 구호가 아니다. 국운 상승의 바탕으로서 한글을 재인식하고, 광화문 현판을 통해 그 상징을 가시화하자는 제안이다. 광화문 600년과 훈민정음 580년의 역사적 접점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전통을 박물관에 둘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공간에 살아 숨 쉬게 할 것인가. 때문에 광화문에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과거를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다. 세종의 정신을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 속에 재배치하는 작업이다.
세종은 백성을 위해 글을 만들었다. 오늘 우리는 그 글로 세계와 소통한다. 광화문은 문이다. 문은 열려야 한다. 세종의 뜻을 세종의 문자로. 그 문이 열릴 때,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문명의 중심에서 나르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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