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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예술의 선택이 왜 행복의 조건인가?

예술을 살리는 착한 가게 , 미술 대중화의 새 길로 확산되어야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인생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그 기준과 가치는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된 지점이 있다.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만족과 기쁨, 보람과 긍지로 구성되며, 결국 물질을 넘어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존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은 언제나 다른 길을 보여주어 왔다.

 

선택이 인간을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선택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왔는가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그 선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영역에 속한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에 시간을 쓰는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예술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술은 소비재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선택지다.

 

예술은 조건을 이기는 힘이다

 

역사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창조해 왔는지를 증명한다. 귀가 들리지 않으면서도 합창 교향곡을 완성한 베토벤, 시력을 잃어가며 새로운 과학의 지평을 연 퀴리 부인,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도 자화상을 그린 고호.

 

역경이 예술이 되는 위대함은 그 가치가 개인을 넘어 공익으로, 시대를 넘어 세계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생존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의지다.

 

예술은 배워야 열리는 문이다

 

그렇하기에 예술은 쉽게 자동으로 흡수되지 않는다. 술이나 게임, 대중문화처럼 별다른 학습 없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학습제이자 경험제다. 음악회 티켓을 스스로 한번도 선택해 본 경험이 없다면 공연장은 나와는 무관한 공간이 되기 쉽고, 그림 한 점을 직접 구입해 본 적이 없다면 눈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소유'가 '안목'을 트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전시장을 찾는 습관, 음악을 선택하는 경험이 어릴적 부터 경험되어야 한다.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가정문화의 문제이며, 교육이나 부모의 책임이다. 어떤이는 문화도 유전이라고 말한다. 집안의 분위기가 그대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부모나 집안에 음악, 미술, 무용, 예술하는  경우 적어도 세 집 건너 한 사람 정도의 비율로 예술을 하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술은 삶의 깊이를 확장한다

 

이처럼 영향이나 경험이 없으면 예술은 나와 무관해진다. 오늘날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아무리 시(詩)가 붙어있어도 사람들의 대부분은 읽지 않는다. 한글을 몰라서가 아니라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 본 적이 없다면, 그림은 그저 무관심하게 스치고 만다. 연장선에서 쉬운 음악만 소비하는 환경, 율동적 감각에만 집중된 케이팝 중심의 음악적 경험은 더 깊고 아름다운 미학 세계로 나아갈 사다리를 놓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문화를 접하느냐에 따라 성향과 눈 높이가 좌우되는 것이다.

 

'착한 예술가게'의 생활 밀착형 접근이 대중화에 한 방향이 된다 

 

그림 한 점에 수십억, 수백억의 가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단순한 희소성 때문이 아니다. 예술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미적 이익과 정신적 자산의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술을 선택하지 않아 삶이 편하다 생각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협소하고 다양성을 잃고, 고양된 감각과 사유의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예술의 선택은 수많은 선택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며, 예술은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깊은 통로이다.

 

근자에 '착한 예술가게'가 커피숍 등 생활 공간으로 파고 든다니 달라진 세태 풍경이다. 생일날 케익을 놓고 해피버스데이 노래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에 작은 그림을 선물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웨딩에서 부모가 그림 한 점을 선물한다면 평생 걸어 놓고 기억하지 않겠는가.  백세 시대를 향해 가는 삶과 인생 여정에 난제들이 많지만 인문학과 예술이 주는 깊은 위안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 반복되는 생활의 권태에서 벗어난 신선한 호흡이다. 특히 AI 시대를 살아가야 할 세대들을 위해 예술 동행은 필수가 아니까 한다. 그 출발은 '작은 것'으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기업 브랜드 커피숍 골리앗과 싸우는  개인 창업 커피숍의 차별성을 위하여 

 

기업의 대형 브랜드 커피숍에 맞서야 하는 한 집 건너 생겼다 문을 닫는 개인 커피숍들이 그 경쟁력을 위해서도 차별화를 갖는 것은  윈윈의 선택이다.  작가의 그림이, 작곡가의 악보가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어떤 형태로든 숨을 쉬고 만나 꽃처럼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는 지났고, 실용화 시대가 열렸다. 자꾸보면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보면 사랑하게 된다. 어찌 남녀간의 사랑만 그리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