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서울 한남동 갤러리 몬트레아에서 오는 3월 5일부터 열리는 'Dear Unsame'는 '같지 않음'을 향한 다정한 인사로 기획된 전시다. 그러나 이 전시를 관통하는 보다 깊은 결은 ADEL LEE(이다혜)가 수년간 집요하게 탐구해온 하나의 질문, 곧 '기억은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닿아 있다. 지난 2011년 첫 개인전 이후 그가 일관되게 붙들어온 주제는 '기억의 조각(Piece of Memory)'이다. 이번 전시는 그 사유가 더욱 응축된 형태로 드러나는 자리다.
ADEL LEE의 화면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둥근 형상들이다. 원(圓)은 완결된 도형처럼 보이지만, 그의 회화에서 그것은 닫힘이 아니라 순환의 구조다. 시작과 끝이 분리되지 않은 시간, 과거와 현재가 포개지는 궤도, 감정과 사유가 중첩되는 층위다. 하나의 기억은 고정된 과거로 남지 않는다. 또 다른 기억을 호출하며 점처럼 번지고, 빛처럼 확산된다. 화면 위에서 증식하는 원형들은 그렇게 독립된 에너지로 살아 움직인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durée)'의 개념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시간은 균질하게 흘러가는 물리적 단위가 아니라, 내면에서 겹겹이 중첩되는 의식의 흐름이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 속에 스며들어 또 다른 현재를 만들어낸다. ADEL LEE의 회화는 바로 그 '지속의 시간'을 시각적 언어로 번안한다. 점과 색의 층위는 시간의 퇴적층처럼 쌓이고, LED 빛과 아크릴의 투명성은 기억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는 찰나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ADEL LEE는 기억을 구체적 서사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의 화면에는 특정 인물도, 명확한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감각의 밀도와 정서의 파동이 자리를 차지한다. 작가는 "눈을 감아야 비로소 또렷해지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간 순간들,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 설명되지 않은 온기들이 그의 화폭 위에서 둥근 형상으로 되살아난다.
이 지점에서 그의 회화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사유와 맞닿는다. 지각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계와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ADEL LEE의 화면은 완성된 의미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경험이 스며들 여백을 남긴다. 작품은 설명을 거부하고 체험을 요구한다. 관객은 화면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호출하게 되고, 그 순간 작품은 하나의 사적인 풍경으로 변모한다.
작가의 작업노트 '스미듯 번지는 기억의 조각'은 그의 예술적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기억의 조각에서 작업의 출발점을 찾는다. 그러나 그 회귀는 낭만적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과정이다. 내밀한 공간에 깔려 있는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 가운데, 찬란한 빛으로 기억될 수 있는 조각을 찾는 일은 일종의 수행에 가깝다.

그는 이를 '자기-의식과 자기-이해의 깨달음'이라고 표현한다. 과거와 현재의 절대적 진리가 사유 속에서 융합되는 순간, 기억은 더 이상 파편이 아니라 하나의 원형으로 완성된다. 화면 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은 바로 그 통합의 상징이다. 그것은 닫힌 원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며 확장되는 우주적 구조다.
ADEL LEE의 이력은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는 동덕여자대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양화를 부전공했으며, 필리핀 St. Mary’s University에서 저널리즘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디자인하우스와 중앙일보 매거진부에서 패션·뷰티 기자로 활동했다.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의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한 셈이다.
그러나 그는 재현의 세계를 떠나 추상의 언어를 선택했다. 표면의 화려함 대신 내면의 시간으로, 소비의 속도 대신 지속의 밀도로 방향을 틀었다. 2012년 제3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 부문 특선, 2013년 중외제약 영아티스트 공모전 특선 등 수상 경력은 그의 조형적 완성도를 입증한다. 작품은 서울시청, 명동성당 서울대교구, 엘지생활건강 등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외적 성취보다 내적 응시의 깊이에 있다.

'Dear Unsame'라는 전시 제목은 '같지 않음'을 향한 애정 어린 호명이다. ADEL LEE의 화면에서 각각의 점과 원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서로 다른 밝기와 다른 호흡, 다른 밀도를 지닌다. 그러나 그 차이들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장(場)을 이루며 공존한다. 균질한 통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화해의 구조다.
전시장에는 관객이 잠시 앉아 작품을 응시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고요히 호흡하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작품은 더 이상 낯선 추상이 아니다. 잊힌 줄 알았던 장면 하나가 떠오르고, 오래전의 감정이 미세한 빛으로 되살아난다. 그 순간 관객은 깨닫게 된다.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아 있었음을.

ADEL LEE는 거창한 선언을 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제안한다. 설령 우리의 기억이 지금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반짝이는 조각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조각을 끝내 빛으로 완성해내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그의 원형은 그렇게 말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은 흩어지지만 소멸하지 않는다. 어둠을 통과한 빛만이 진정한 빛이 되듯,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간 자만이 가장 선명한 원을 그릴 수 있다. ADEL LEE의 회화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그 원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