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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노트] “체르카!, 트로바!(Cerca! Trova!)” “찾아라!, 그리하면 발견할 것이다!”

K-Classic News  황순학교수 |

 

[다 빈치의 미완성 작품인 앙기아리 전투(Battaglia di Anghiari)는 1440년 피렌체가 밀라노 군을 물리쳤던 순간을 묘사한 미완성 작품이었으며 그 작품 벽면 위쪽에 G. 바사리가 다시 자신의 마르시아노 전투 (Battaglia di Marciano] 그림을 그린 후 다 빈치의 그림이 후대에 발견되기를 바라며 그림 속에 새겨 놓은 유명한 문구가 바로 체르카, 트로바이다. 최근에 다 빈치의 그림이 내시경을 통해 확인되었다.]

 

[G. 바사리의 마르시아노 전투 작품 속 체르카!, 트로바! 문구와

다 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장면을 후대에 루벤스가 복제 묘사한 작품]

 

계묘년 새해 2023년이 밝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서 새해 벽두에 꿈꾸었던 소망을 잘 이루어 가시길 기원하며, 여러분께서 꿈꾸는 것 중의 하나가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미뤄 두었던 해외여행 계획이 많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이번 이야기는 여행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자 합니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은 짧은 여행을 뜻하는 Trip과는 다르게 비교적 긴 여행인 해외여행을 떠날 때 사용되며,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발견하다’란 뜻의 트로바(Trova)가 그 기원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파생된 단어 중 하나가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의미 있게 새롭게 느끼는 것 즉 ‘다시 발견하다’란 뜻의 리트로바(Ritrova)가 있다. 이 리트로바(Ritrova)가 요즘 복고풍 패션을 뜻하는 영어 Retro의 어원이 되며 뉴트로(newtro: 옛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란 신조어로 우리 생활 속 곳곳에 침투해 있는 것이다.

 

유럽 여행이 선사하는 장점 중 하나는 우리처럼 무분별한 도시 재개발이 없었던 관계로 자신들의 전통과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우리는 유럽 여행에서 무언가를 찾고 발견할 수 있는 리트로바(Ritrova)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어 여행을 통해 인류가 이룩해 온 역사적 발자취를 확인하며 예술적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상상력의 부활과 사유의 대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럽 여행을 한다고 해서 앞서 이야기한 것을 모든 이들이 이룰 수는 없다. 결국 모든 분야에서 상상력의 부재는 무지에서 온다는 점을 깨달아 올해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국내에서도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맛집 탐방이나 핫플레이스에서 아무런 의미를 모르는 것들을 배경 화면으로 기념사진만을 찍고 오는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이제 언제라도 구글 어스에 들어가 스트리트 뷰로 만나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발품까지 팔아가면서 사진만 찍고 온다는 것은 18세기 유럽인들 사이에서 대유행했던 인문학적 여행이었던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의 진정한 의미와 그 여행이 선사했던 가치를 모르는 일이다.

 

18세기 베네치아를 그린 카날레토가 그린 베네치아 총독 관저인 두칼레궁전 (Palazzo Ducale) 그림과 지금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유럽의 도시들은 18세기나 지금이나 크게 변화된 것이 없음이 확인된다.

 

[Palazzo Ducale, Venezia,1755]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의 현재 모습]

 

이런 이유로 유럽 여행에서 만나 보는 것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은 매우 특이한 건축 양식의 전형으로 과거 베네치아 문화만의 특성을 건축물을 통해 잘 읽어낼 수 있다.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은 베네치아 도제(Doge:국가원수)의 공식적인 주거지로 9세기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309년부터 1424년의 기간에 걸쳐 지어져. 다양한 건축 양식을 만나 볼 수 있으며, 조형미가 베네치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1층의 모습은 장중한 기둥 양식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기둥 위 아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보다 살짝 높아진 고딕 양식으로 배치되어 두 양식이 조화로움을 잘 달성하고 있으며, 2층은 베네치아 고딕 양식으로 얇은 기둥과 좁아진 기둥 간격과 함께 기둥의 상단부는 권력을 뜻하는 클로버 문양의 베네치아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되어 장식적인 화려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건축물의 2층 위의 상단 3층부터의 벽면 장식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핑크색의 기하학적 패턴 장식이 연속되는 모습으로 하나의 건축물 안에 여러 가지 양식으로 절묘하게 혼재된 아름다움들을 찾고 발견(Cerca! Trova!)할 수 있다.

 

즉, 역사적으로 동방과 서방을 연결했던 교역 도시로서의 베네치아가 갖는 특색 중 하나인 문화적 다양성을 두칼레궁전에서 찾고 발견(Cerca! Trova!)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을 그린 작가 카날레토(Giovanni Antonio Canal, 1697~1768)는 18세기 유럽에 불어닥친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의 대유행에 발맞춰 유명해진 화가다.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로 베네치아를 찾은 당시 관광객들에게 그의 사실적인 풍경화는 최고의 기념품이었기 때문이다.

 

1786년에는 드디어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이탈리아로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를 결행하는데 괴테가 이탈리아 로마 입성을 하루 앞두고 다음의 말을 남긴다.

 

“내일 밤은 로마다. 나는 그것이 지금도 거의 믿어지지 않는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면, 나는 그 뒤 도대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괴테는 1829년 로마를 다시 찾을 정도로 로마와 로마 시대의 유적지에서 인류의 유산인 건축, 조각, 그림을 감상하면서 문학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두며 상상력의 부활과 사유의 대전환을 이룬 후 다음처럼 고백한다.

 

“모든 빛(진리)은 동방으로부터, 모든 아름다움은 남방(이탈리아)으로부터”

 

그리고 독일인들에게 다음처럼 고한다.

 

“독일인들은 정말 이상한 운명을 타고났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깊은 이념과 생각을 찾아,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 넣음으로써 쓸데없이 삶을 어렵게 만든다!”

“그저 과감하게 첫인상에 자신을 떠맡겨라!”

“추상적 관념이나 이념이 없다 해서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로마 캄파냐에서 괴테, JHW 티슈바인 (1787)》

 

이처럼 이탈리아 여행 이후 괴테는 상상력의 부활과 사유의 대전환을 이룬 후 《이피게니에, Iphigenie auf Tauris》를 과감히 운문 형식으로 다시 고쳐 썼고, 집필의 방향성을 잃고 있었던 《에그몬트, Egmont》를 마침내 탈고하고, 이후 베토벤은 괴테의 이 희곡에 크게 감명받아, 에그몬트 서곡을 작곡한 사실에서도 확인되듯이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 자신뿐만 아니라 독일 문화계와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당시 15년째 완성을 못 하고 있던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 Faust》를 다시 꺼내 몇 장면을 덧붙이며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

 

괴테와 마찬가지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으로 우리에게 유명한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역시 다섯 번의 도전 끝에 1744년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공모전에서 로마대상을 수상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 작의《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Le Premier Consul franchissant les Alpes au col du Grand Saint-Bernard, 1801~1805)》

 

자크 루이 다비드는 당시 프랑스를 떠날 때 "고대 예술은 활기가 부족하므로 나를 유혹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묻혀 사라졌다가 18세기에 발굴된 나폴리 지역의 고대 로마 도시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의 유적과 파에스툼(Paestum)의 도리아식 신전 앞에서 그는 “방금 백내장 수술을 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하며 열렬한 고전주의 애호가로 탈바꿈해 신고전주의 회화의 역사를 열어간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자크 루이 다비드는 로마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고전주의적인 주제들을 많이 그린 프랑스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차분한 느낌의 구도와 어두운 색조로 유명한 17세기 볼로냐 유파 그리고 극적인 표현으로 유명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로부터 골고루 영향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카라바조의 강렬한 색조와 명암 대비 효과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Black & White) 양식을 가장 좋아했음을 다음의 그의 화풍 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왼쪽부터 1774년 로마대상을 수상한 안티오쿠스와 스트라토니체(Antiochus et Stratocène) 그리고 가운데 작품은 1779년 이탈리아 여행 시기에 제작해 파리의 아카데미에 제출한 파트로클레스의 장례식(Les funérailles de Patrocle)이며, 제일 오른쪽은 카라바조의 키아로스쿠로 양식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의심하는 도마(Incredulità di san Tommaso)로 1602년의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파리의 아카데미로 보냈고,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명암효과는 구성을 명료하게 하는 데는 적절한 방법이지만 명암을 좀 더 정교하게 표현해야 하고 공간적인 모호함을 지적하면서 심오한 관망을 더 연구해야 한다는 요구를 했지만, 이 작품은 다비드가 장식적인 배경을 없애고 보여주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단순한 구도와 강력한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Black & White)로 대표되는 카라바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추종했음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그의 카라바조의 명쾌하고 단순한 화풍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어, 다비드의 작품 중 가장 으뜸으로 평가받는 《마라의 죽음, Mortee di Marat》이 1793년에 완성된다.

 

아래 왼쪽 그림은 전형적인 18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스타일로 《마라의 죽음》을 그린 장 조제프 베어츠(Jean-Joseph Weerts)의 1880년 작품으로 19세기 작품이다. 그리고 오른쪽 그림은 이보다 거의 100년 앞선 1793년에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이다.

 

 

 

위의 그림을 통해 약 100년 후 작품이 다비드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는 《마라의 죽음》을 기독교의 순교자를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키아로스쿠로 양식의 선명한 빛과 강렬한 명암 대비로 마라를 혁명의 순교자처럼 그려내는데, 이는 이전 군주제와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성한 상징적 모습들을 프랑스 혁명으로 이관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그림 역시 이탈리아에서 만난 고전적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화풍으로 구현해 냈다는 점이다. 다음의 작품들에서 자크 루이 다비드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고전 예술에서 《마라의 죽음》의 모티브를 찾아냈음이 확인된다.

 

 

왼쪽부터 차례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카라바조의 작품이며 라파엘로와 카라바조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구현한 예수의 죽음이라는 구도를 따라 했음을 알 수 있다. 다비드 역시 그의 《마라의 죽음》에서 그린 마라의 늘어진 팔근육의 전체적 모양새를 볼 때, 전체적으로 카라바조의 작품이 연상되고 따라 그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단순하고 명쾌한 화풍은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를 통해 고대 로마 양식과 카라바조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새로움으로 리트로바(Retrova)된 결과이다.

 

그리고 자크 루이 다비드의 명쾌함과 단순함을 추구한 화풍의 신고전주의 양식은 지금의 현대인에게 다시 찾고 발견(Cerca! Trova!)되어 최소주의를 뜻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재탄생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만나 본 고전 예술에서 무언가를 찾고 발견해 뉴트로(newtro)하게 구현해 낸 것이다. 즉 체르카! 트로바! (Cerca! Trova!, 찾으면 발견하리라)가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의 모던한 현대 건축물을 사전 지식 없이 바라보면, 과거의 역사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과거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신라호텔 면세점의 모습]

 

전체적으로 보면 앞서 살펴본 베네치아 총독 관저인 두칼레궁전처럼 건축물의 하층부와 상층부가 아름다운 비례로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는 점이 서로 흡사하다.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의 모습]

 

그리고 두칼레궁전의 상단부 중앙의 발코니 창은 18세기 당시에는 도제(Doge:국가원수)가 연설할 때나 정부 관리가 포고문이나 법령 등을 알리는 역할을 했던 곳이다. 호텔 신라 면세점 상단부 중앙 역시 광고판이 대신할 뿐 PR을 위한 건축물의 기능과 역할의 기본 구성은 서로 일치한다.

 

두칼레궁전 상단부의 기하학적 핑크색의 독특한 패턴 역시 호텔 신라 면세점 상단부의 모던한 패턴 장식으로 대체된 점 또한 확인된다. 이처럼 과거의 아름다움에서 무언가를 찾고 발견(Cerca! Trova!)해, 미니멀리즘으로 재구성했을 뿐이다.

 

즉, 현대의 것들이라 해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과거에서 아직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서도 앞서 살펴본 자크 루이 다비드나 괴테의 사례처럼 인문적 소양 형성을 목표로 하는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를 통해 체르카! 트로바! (Cerca! Trova!)를 경험하는 뜻깊고 의미 있는 여행을 꼭 결행해 보길 기원해 드리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여행 전에 예술사를 이론적 접근이 아닌 감각적으로 접근해 큰 그림으로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자들이 여행을 통해 만나는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리트로바(Ritrova)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에 숨어 있으며, 우리의 미래 역시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인 유럽의 도시들 속에 숨어 있는 인류가 이룩해 온 발자취를 확인해 보는 멋진 그란투리스모를 올해 꼭 결행에 보시길 응원해 드립니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 윈스턴 처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