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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 노트 ] 경제 활동에만 전념했던 지중해 거점 무역 도시들은 모두 역사에서 사라졌다!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지난 9월 12일 <오징어 게임>이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주연상과 감독상 수상과 함께 에미상 6관왕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은 전 국민을 들뜨게 만들고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우수성과 위상을 새롭게 가늠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소 우리 문화계에서 생각도 못 했을 일들이 요즘엔 대한민국 문화계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다.  이번 <오징어 게임>이 거둔 쾌거와 함께 드는 생각은 K-Classic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이 그동안 에미상과 아카데미상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콩쿠르나 세계적인 무대에서 거둔 성과는 대중문화에 비하면 많은 국민께서 잘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아 기쁨과 동시에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풍요와 기술 발전이후 다음 시대를 어떻게 준비했나? 


개인적 속상한 마음을 잠깐 뒤로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면, 5천 년의 한반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으며 이제는 문화적으로도 충분히 세계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가로 급격히 성장 중이란 점에서 무척 뿌듯하다. 이런 시대적 전환의 시점에서 과거 유럽의 패권을 차지했던 국가들이 경제적 풍요와 기술적 발전을 이룬 후에 다음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해 나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846년 6월 13일은 파리와 브뤼셀을 잇는 프랑스 최초의 증기 기관차가 엄청난 군중들의 환호와 초청된 악단의 떠들썩한 축하 연주 세례를 받으며 생라자르 역을 천천히 빠져나간 날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벨기에의 삼색 국기로 화려하게 장식된 열차 안에는 남부철도회사 사장이었던 제임스 드 로스차일드 남작이 초청한 하객들이 이 최초의 기차에 탑승하게 되는데, 하객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 1세의 두 아들인 네무르 공작과 몽팡시에 공작, 프랑스와 벨기에의 양국 장관, 경찰청장 등 다수의 고위 관료와 함께 눈에 띄는 특별한 점은 예술가들이 고위 관료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초청되었다는 사실이다. 

 

 베를리오즈에게 <철도를 찬양하는 노래> 칸타타도 

 

그들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를 위시해 빅토르 위고, 테오필 고티에 그리고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등이었다. 한 열차 안에 탑승하고 있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들의 작품이 주는 강렬한 인상만큼 경이로운 모습으로 떠오른다. 당시 마차로 이동할 때보다 4배 빠르게 시간을 단축한 프랑스 최초의 이 열차는 벨기에 브뤼셀 릴의 중세 성벽 밖에 마련된 임시 정거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날 릴에서는 2천 명의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를리오즈가 직접 선발한 400명의 오케스트라 악단원과 12대의 실제 대포가 동원되어 베를리오즈의 <장송과 승리의 대 심포니>가 초연된다. 하지만 격발 장치가 준비되지 못해 대포가 발포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발생한다. 

 

 

 

이후 이 기념비적 날을 기억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베를리오즈에게 <철도를 찬양하는 노래>라는 칸타타를 의뢰하게 되고 베를리오즈는 쥘 자냉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철도가 가져올 국제적 평화와 우애를 노래하는 칸타타를 작곡해 이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프랑스 최초의 철도 개통 날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고 1846년 6월 13일의 프랑스 최초의 철도 개통의 기념비적 날을 프랑스 언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서특필한다.

 

철도 개통에 예술가를 최고로 우대한 프랑스

 

“새로운 철도가 프랑스의 문화적 지배 아래 유럽을 통합하는 대사업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을 초청하여 우리의 예술, 우리의 제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위대한 것들을 직접 보게 하는 것은, 유럽 전역이 우리나라에 호감을 느끼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란 논평을 게재한다. 

 

우리 언론이었으면 철도 개통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만을 다루었을 텐데,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 예술이 앞으로의 유럽 사회에 미칠 파급력을 기대하는 글로 기사 첫머리로 장식하며 대서특필한다. 이후 프랑스 언론의 예언은 적중해,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은 유럽 각국에서 문화예술의 모범적 전형의 기준이 되어 사랑받게 된다. 이후 프랑스가 끼친 영향으로 유럽 각국은 빠르게 문화 국가들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유럽이 문화적으로 하나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 결과 이후 탄생하는 유럽 연합 집행 기구들이나 특히 유네스코 같은 문화예술 관련 국제기구 그리고 올림픽 위원회의 공식 언어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로 자리 잡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 된다. 

 

이처럼 최초의 프랑스 철도 개통이라는 기술적 혁신의 기념비적 날에 기술을 제쳐두고, 예술이 앞으로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예술의 중요성을 기사 첫머리로 장식한 당시 프랑스 언론의 예술을 대하는 언론 환경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곧 만연하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이 시기 도버해협 건너편 영국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서막을 알리는 영국 경제 최대 절정기인 빅토리안 시대가 개막한다. 당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루어 빅토리안 시대를 개막한 영국 또한 앞선 프스의 문화국가 표방을 교훈 삼아 문화와 예술을 차세대 국가경쟁력의 발판으로 삼는다.  

 

대영 박물관은 무료 관람 통해 문화국가의 초석다져 

 

이를 위해 영국은 그동안 유럽 사교계에서 문화어로 인식되어 온 프랑스어의 위상에 맞서기 위해 1884년부터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편찬에 들어가 영국 영어의 문화적 고급화 전략을 꾀하게 된다.  이와 함께 당시 프랑스와 비교해 내세울 만한 자국의 예술품이 별로 없었던 영국은 식민지에서 예술품들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와 1866년에는 대영 박물관이 약 1만여 점의 소장품들을 소장하게 된다. 이후 대영 박물관은 무료 관람을 통해 국민에게 개방되며 이를 통해 문화국가의 초석을 다져진다. 그리고 1831년 런던에서 펼쳐진 파가니니의 광기 가득한 신들린 연주에 깜짝 놀란 런던 시민들은 당시 인종차별적이고 야만적이었던 모습의 프릭쇼(기형쇼)에만 열광했던 자신들의 지난날을 부끄러워하며 단숨에 클래식 음악 시장의 주 고객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처럼 당시 파가니니의 공연의 대성공과 그 여파는 영국에 클래식 음악 열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이후 쉽사리 꺼지지 않는 클래식 음악 열풍에 힘입어 1858년 런던에 제대로 된 오페라극장인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코벤트가든에 들어서게 되고, 제2의 파가니니를 꿈꾸던 프란츠 리스트 역시 1886년에 이 극장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고, 이 음악회는 그의 생애 마지막 연주로 기록된다. 이후 유럽 최고의 클래식 연주자들 역시 앞다투어 런던을 찾아 제2의 파가니니를 꿈꾸게 된다.

 

대영박물관 

 

이처럼 역사적으로 문화국가를 표방한 프랑스가 유럽에 끼친 문화예술에 관한 독특한 견해와 인식 그리고 그 영향력은 최근의 독일 연방 정부의 예술인 지원 정책에서도 확인된다. 팬데믹으로 독일 사회의 모든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일시 중단되어 예술인들의 삶이 궁핍해지자, 독일 연방정부는 문화 예술인만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5백억 유로(약 67조 원) 규모의 국가 예산을 즉시 지원금 형식으로 즉각적으로 집행한다.  

 

그리고 문화예술과 창조 산업 분야가 1천억 유로(한화 약 133조 원) 이상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독일 산업의 핵심 분야이며, 이 금액은 금융, 에너지, 화학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더 크다는 매우 독특한 인식 아래 당시 독일 문화부 장관 모니카 그뤼터스는 예술인만을 위한 지원사업의 타당성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문화가 결코 좋은 시절에만 누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인류의 표현 방식이다.” 위기의 시기일수록 예술가들이 창조적인 힘을 발휘해 왔다.” “이런 전례 없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 사회는 고유하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의 지형을 지켜내야만 한다.” 팬데믹 위기에서 독일 연방정부의 이러한 예술의 영향력에 관한 인식과 판단 그리고 대처는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유럽에선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프랑스를 시작으로 영국과 독일이 문화와 예술이 자국의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분명히 경험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제 세계가 한류의 팬이 되어, 우리 문화와 예술에 혼이 나가 정신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이 역적 변환의 시점에서 우리 사회도 과거 프랑스나 영국 그리고 팬데믹 시기의 독일의 사례처럼 더욱 큰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을 원한다면, 모든 기술의 영감이 되는 예술이 우리를 밥 먹여 줄 수 있다는 점을 곱씹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프랑스 문화부 예산 우리보다 2배 이상

 

예술을 개인적 취향의 심미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거나, 특히 예술을 어려운 용어와 개념으로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는 풍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술을 너무 어렵고 개념적으로만 이해시키는 풍토일수록 그 사회의 대중은 예술을 어려워하게 되고 아무도 클래식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를 찾지 않게 되며, 대중음악 콘서트장이나 대중문화를 만나 볼 수 있는 매체에만 관심을 두고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런 우리 사회의 예술을 너무 어렵게만 대하는 풍토에서 살짝만 빠져나와 순수예술이 선사하는 깊이 있고 가치 있는 영감들을 대중 또한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국가적 차원에서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고, 전문화된 인력을 통해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모든 요소가 철저하게 잘 기획되어야 한다. 참고로 2022년 기준으로 프랑스의 GDP는 44,747불 그리고 우리나라의 GDP 34,994불로 두 나라의 격차는 이제 1만 불 정도의 차이지만 문화부 예산만큼은 프랑스가 우리보다 2배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은 유럽 국가들의 GDP와 우리의 GDP는 단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유럽 국가들의 GDP는 문화국가만이 갖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환경적 혜택으로 인해 우리보다 딱 절반만 일하고 벌어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보편적으로 8주의 유급 휴가가 보장되는 유럽 사회의 독특한 근무 환경을 먼저 따져보고 비교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이처럼 유럽의 GDP가 갖는 성질을 이해하게 되면, 예술 작품 향유가 선사하는 가치 있는 영감들이 결국 기술의 혁신과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노동 시간을 절대적으로 감소시켜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결국 우리와는 너무 다른 유럽인들의 예술에 관한 독특한 사고를 참고해 예술의 순수성과 함께 실용적 차원에서 예술이 다루어져야 대중이 음악회장이나 미술 전시장 찾게 된다. 그래야만 예술가들의 삶이 유럽 사회처럼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예술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한때 경제 활동에만 전념했던 지중해 거점 무역 도시들은 모두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가득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아직도 문화적으로 건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파리를 만나면 모든 것은 예술이 된다!”란 주제로 음악회를 기획해 큰 반향과 공감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음악회를 마무리하며 문화국가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현재 예술의 대명사로 불리기에 절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관객들이 크게 호응했다.

우리 사회 역시 새로운 시대로의 전한의 시점에서 예술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며, 고부가가치 사회로의 전환을 도와 밥도 먹여 줄 수 있으며, 팬데믹 시기 독일 연방정부의 예술인 지원정책이 시사하는 바를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음악, 미술 시간에 수능을 위해 자습하는 나라에서 벗어나, 프랑스가 문화국가를 표방하며 엄청난 예산을 투여하며 자국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다음 시대를 위한 잠재적 가치로 성장시켰듯이, 우리 사회도 이를 교훈 삼아 대중문화예술과 함께 K-Classic에도 관심이 커지고, 충분한 예산 집행을 통해 K-Classic을 더욱 발전적으로 육성해 나가길 소망해 본다. 

 

세계 곳곳에 K클래식 확산되도록 지원해야 

 

K-Classic이 전 세계인이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우리 작곡가의 음악이나 우리말로 작곡된 가곡이, 칸타타 등이 K-Pop과 함께 전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고, 불리게 될 때를 상상해 보라.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아지지 않을 나라로 우뚝 솟을 수 있다는 점을 예술에 관한 관심과 인식이 우리와는 현저히 다른 프랑스, 영국, 독일의 사례가 이를 잘 증명해준다. 지금처럼 계속 경제 활동에만 전념하면, 우리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황순학 

예술경영학 박사/황순학.
서울과학기술대학교/융합교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