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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노트] 기획이 살아야 예술, 예술가가 산다

굿스 프레스토(Goods Presto), 굿스 ESG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발족한다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새로운 혁신 아이템을 창안하는 K클래식 탁계석 회장 (photo:굿스테이지 송인호)

 

창작 기획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떤 자극이나 스트레스의 반응은 각자 사람마다 다르다. 고통에 저항하거나 비난하거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에너지로,  창의와 영감을 살려서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낼 수 있다. 크레이티브(Creative)란 자극 혹은 충동이 방아쇠 역할을 한다. 역사에서 모든 발명품이 궁핍이나 불편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에디슨의 전기뿐만 아니라 전쟁을 겪거나 참호속에서 아이디어를 건진 것들이 수없이 많음을 본다. 그러니까 발명이 트라우마의 테마 바리에이션인 것이다.  최근 기획사의 늦장처리를 보면서 '기획사'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 기능을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획이 없고, 홍보도 안되고, 마케팅은 언감생심이라면 무늬만 기획사라면 이로 인한 피해는 예술과 예술가의 몫이 된다. 물론 기획력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잘 진행하는 단체들도 더러 있긴 하다. 그 숫자가 적다는 것이고 초대형 상품이 되는 대형 기획사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몰토뉴보이스앙상블(음악감독, 작곡가 김은혜)란 단체를 만났는데 기획 컨셉의 핵심이 창작임을 발견하고 기뻤다. 오래 전의 것을 반복, 재현하는 연주가들과 성악가들이 아니라 새롭게 만든 창작을 모토로 하고 있으니 차별화된 앙상블인 것 같다. 이들은 능동적으로 기획 하고, 공공기금을 따고, 관객에게 늘 신선한 메뉴를 주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공연 무대를 진행해 준다는 개념과 다른 새로운 문법의 기획사가 탄생한 것이다. 

 

10월 23일, 창작으로 신선하게 바람을 몰고있는 몰토뉴보이스앙상블이 이병욱 원로 작곡가의 일생을 조명한 '한숨 돌려도 괜찮네'를 홍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 한 후 포토존에서 기념  촬영. 

 

바야흐로 K콘텐츠 시대, 수입 구조에서 수출 구조로의 패러다임 전환의 때가 오고 있다.  콩쿠르, 에콜노르말, 박사 학위 등이 자랑스러워 보이는 때가 아니다.  때문에 프로필을 전쟁에서 승리한 전리품처럼 나열해서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포스터는 세련되게  많이 달라지고 있다.  모국어 창작 개발을 통해 무한의 시장 개척을 해야 한다. 몰토뉴성악이 이를 보고 있으니 세대가 달라진 것이다. 이름만 기획이 아닌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AI 시대에 언론 매체도 강건너 불보듯 해서는 안된다.  

 

"굿스 프레스토(Goods Fresto), 굿스 ESG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창작 전문 기획사 탄생한다 

 

굿스 프레스토(Goods Fresto) 기획사를 창단하는 이유다. 일처리를 빨리 빨리 할뿐만 아니라 창의력을 부가해 아티스트를 띄우고, 마케팅, 후원에 까지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하는 참기획 프로세스를 만들자는 뜻이겠다. 어느 경우든  근원적인 예산 부족을 기금 지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생력의 뿌리를 길러 주는 따뜻하고 소통이 잘 되는 기획사를 만들어 공익에 보탬이 되려는 것이다. 유명 스타가 아닌 대다수의 개인 발표자들이 기업 대상으로 스폰서나 후원자를 끌어당기는 것이 쉽지 않다. '굿스 ESG 엔터테인먼트'가 기업과의 연계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아시다시피 ESG 경영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마다의 의무이자 쿼트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수출도 못하고, 그 어마한 부담을 국가가 짊어지게 된다. 따라서 ESG를 알리고 이벤트를 만들어 생활속에 파고 들게 하는  것 역시 언론의 새로운 책무다.  종이에서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 바뀌면서 과거 잡지에 얼굴을 싣는 형식은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톡으로 뿌리는 세상이고 손 핸드폰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이것들이 곧바로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검색이 되는 그리고 이것이 지구촌에 확산되는 놀라운 확장력을 이미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설상가상 AI가 무서운 속도로 자기 성장을 하고 있으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과거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 그 위험성을 알리는 것도 언론이 선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새로운 기획의 패러다임 변화는  불가피 하고, 예술과 예술가가 살아야 한다는 명제 앞에 우리는 변화의 선택만이 생존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언론 매체에 주어진 당부이자 동행의 조건이다.  분명한 것은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갓길이 아닌 아우토반을 타야하는 것이다. 이것은 펙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