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단순함은 고도의 정교함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예술의 역사를 극도로 단순하게 전개하면, 원시적 상징적 단순함에서 출발해 사실 재현적인 자연주의 양식과 자연주의 양식을 사실 재현적 요소와 함께 단순화한 기하학 양식이 공존하고 이후 극도로 인공적인 화려함으로 치닫다 다시 단순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함은 서양 예술에서 늘 화려함 다음에 찾아오는 정화작용 역할을 맡는다. 신고전주의 양식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등장한 예술 사조를 뜻하는데, 가장 큰 특징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형식미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형식적이다’라는 말은 대부분 좋은 의미의 말은 아니지만 달리 생각해 ‘형식을 갖추었다’란 의미로 접근해 보면, ‘형식적이다’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탈피할 수 있다.즉 형식미는 최적의 요소들로 구성된 정교함을 추구하는 예술인 것이다. 럼 왜 18세기 말 예술은 로코코의 화려하고 기교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단순함에 의한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느냐는 의문에 도달한다.
서양 역사에서 신고전주의 예술은 바로크 말기 로코코 시대 유희와 쾌락 추구로 인해 경박해진 사회 풍조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 이런 이유로 그 반작용이라 할 수 있는 신고전주의는 미학적 추구일뿐만 아니라 혁명 세력의 정당성을 대변하는 정치적 성격이 짙은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치적 구호 성격의 예술이기에 작품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가 간결하고 명쾌해야 정치적 선전 선동의 성공적인 도구적 역할도 담당했기 때문이다.
신고전주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고전주의는 새로운 고전주의를 추구하려는 열망, 즉 당시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적 배경이 되는 계몽주의 철학에 부합하고 이전 로코코 예술과 거리를 두기 위해 엄격한 형식미를 바탕으로 객관성을 추구하려는 열망이 담겨있었다.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 -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5세기 르네상스 시대가 추구한 제1차 고전주의의 회복이 가치의 회복 즉 중세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의 가치 회복이었다면, 18세기 후반에 제2차 고전주의 운동, 즉 신고전주의 예술가들은 당시 우연히 발견된 고대 로마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대 작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그 수준에 놀란 나머지 고대 문명을 회복하고 싶었고, 그 결과 신고전주의 예술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창조된 작품에 경이로움을 표하며, 고전 작품이 뿜어내는 향수와 함께 혁명 시대 공화파의 윤리적 가치관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신고전주의 시대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표준은 아마도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에 의해 이론적 완성을 이룬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처음으로 연구하여, 학문으로서의 기틀을 세움으로써 근대 미술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는 공식 즉 숭고미로 요약될 수 있다.
숭고미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인 고귀함은 고전 예술의 우아한 형태를 의미하고, 또 다른 요소인 단순함은 기괴하고 사치스러운 기교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고요한 위대함’이 느껴진다. 따라서 신고전주의적 인간 역시 감정 과다보다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충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결국 신고전주의가 추구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단순한 형태를 목표로 하면서도 이상적인 균형과 여유로 표현되는 우아함을 특징으로 하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표현의 양식인 숭고미를 추구한다.
이런 이유로 신고전주의 작품은 대부분 다음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처럼, 매우 극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장면조차도 침착하고 차분함을 유지하며 ‘고요한 위대함’ 즉 숭고함을 드러낸다.
그럼 ‘고요한 위대함’으로 해석되는 신고전주의 예술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자. 루이 14세로 대표되는 바로크 예술은 그란데마니에라(grandemanier:장엄한 양식)로 이제 교황의 권력 못지않게 성장한 절대군주의 위엄과 기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양식이다. 그리고 루이 15세로 대표되는 로코코 예술은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사치스럽고 장식적인 나머지 보편적으로 경박해진 당시 귀족 사회 풍조를 대변하는 양식이다. 로코코의 이런 경박한 풍조에 맞서기 위해 계몽주의 철학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인텔리와 부르주아 등이 등장한 시기가 바로 신고전주의 시대이다.
다음의 테이블 다리의 모습은 각각 바로크에서 로코코 그리고 신고전주의로 변화하는 17~18세기 서양 예술의 양식적 변화를 한눈에 잘 보여준다.
이미지를 살펴보면, 이미지 상단부는 장중하고 위엄이 느껴지는 루이 14세 스타일이며 이미지 중앙은 화려하고 유연한 곡선미가 더욱 강조된 로코코 양식이다. 그리고 이미지 하단은 르네상스 시대 선호되었던 직선의 부활이 느껴지는 차분해진 느낌의 네오클래식, 즉 신고전주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예술의 역사를 극도로 단순하게 전개하면, 원시적이며 상징적 단순함에서 출발해 사실 재현적인 자연주의 양식이 찾아오고, 이후 자연주의 양식의 사실 재현적 요소와 함께 단순화한 기하학 양식이 유행하고 이후 극도로 인공적인 화려함으로 치닫다 다시 단순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함은 서양 예술에서 늘 화려함 시대 다음에 찾아와 이전 시대의 혼란을 정화하는 작용을 맡는다.
18세기 네오클래식 양식은 15세기 르네상스가 복원하고자 했던 그레코-로망으로의 복원을 다시 한번 꿈꾸며 앞선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구체제 즉,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으로 규정한다.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 하에서 정부의 구성과 사회가 조직된 방식은 중세 봉건주의 체제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중세가 지방 분권화 시대였다면, 앙시앵 레짐은 중앙 집권일 뿐 가장 큰 특징은 군주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는 절대 군주제 아래 귀족 중심의 정치체제이었다. 이런 앙시앵 레짐 시대를 악이라 규정하고 새로운 시대의 선을 표방하며 많은 부분에서 구체제가 갖는 무단통치 방법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기 시작한 계몽주의 시대는 예술에서도 장식성에 의한 감성적 측면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작품이 요구된다.
계몽주의적 시각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다음의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 Le Serment des Horaces 1785》이다. 그림의 모든 요소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신고전주의 작품이 갖는 큰 특징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작업에 임했음을 잘 알려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을 드러낸 《호라티우스의 맹세》는 프랑스 혁명으로 희생된 루이 16세의 의뢰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즉 혁명 정부의 요청이 아닌 프랑스 대혁명 이전 1785년에 루이 16세 치하에서 의뢰되고 완성된 작품이다. 이 그림은 고대 로마가 쿠리아티족에 맞서 로마를 수호하기 위해 그림 중앙의 아버지에게 적들을 정복하거나 죽겠다고 맹세하는 호라티우스 형제를 묘사하고 있다.
다비드는 루이 16세가 요구한 애국심의 개념을 표현하고자 여러 아이디어와 함께 고대 로마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호라티우스 가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맹세를 상상해 낸다.
신고전주의 양식답게 그림에서 소실점 또한 그 구성미가 매우 합리적이다. 아들과 아버지가 소실점을 바라보고 있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아버지 손 높이가 가장 눈에 들어온다. 이 구성은 삼각형 모양의 요소와 소실점을 향해 균등하게 향하는 움직임이 결합 되어, 우리는 세 아들과 아버지의 얼굴 정렬을 강조하는 수평선 오른쪽 부분 여인들의 슬픔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은 3분할의 법칙으로 선을 수직과 수평으로 그려서 우리는 중심 인물이 중앙 틀에, 아들이 왼쪽에, 여자가 오른쪽에 각각 위치되는 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수평으로 중앙 1/3이 남성의 얼굴과 상체가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슬픈 표정의 태도가 수동적인 여성들은 오른편 하단에 위치한다. 배경에 있는 세 개의 아치는 로마 시대 건축물의 대표적 특징이며, 시대적 배경이 고대 로마라는 점을 나타낸다. 아치는 세 부분으로 분할되어 그림을 읽는 데 있어 리듬감을 가져온다.
첫 번째 아치 프레임에서는 형제들이 맹세하고 무기를 요구하고, 두 번째 아치 프레임에서는 절박한 표정과 자세로 무기를 든 아버지가 무기를 건네준다. 세 번째 마지막 아치 프레임에서 여성들은 싸움과 그 결과에 대한 불길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이 3/1의 순서가 그림이 전달하는 이야기와 일치하고 따라서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즐겨 보는 연재만화와 같은 방식으로 과거 현재 미래 순의 연대순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형식적인 신고전주의 양식답게 그림을 읽는 방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반적인 읽기 방향이다. 세 남자가 나란히 서 있고, 세 사람의 중앙에 있는 형제가 첫 번째 사람의 허리를 잡고, 그들의 다리는 시선을 유지하는 삼각형을 형성한다. 그림을 보고 있는 이의 시선은 팔로 강조된 시선을 따라가며 검을 쥐고 있는 아버지의 손에 도달한다. 이 효과를 주기 위해 뻗은 아버지의 팔은 보는 이의 시선을 그의 얼굴로, 그리고 마치 힘이 그를 뒤로 밀어내는 것처럼 뒤로 기대어 있는 그의 몸으로 시선을 이끈다.
이점은 보는 이의 시선이 끌리는 곳이고, 아버지의 등이 기울어지는 것만큼, 여성을 향해 당겨지고, 물러나고, 슬프고, 감정적으로 해석되는 장면의 결과를 낳는다. 전체적 구성에서 또 하나의 재밌는 점은,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각각의 움직임들은 몸을 이루는 삼각형 덕분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공간적 구성을 해놓아 정적인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동적인 느낌의 상상력을 더해주는 요소가 돋보인다.
그리고 중앙의 아버지로부터 오른쪽 부분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의 방향 추적이 가능하다. 중앙 아버지 어깨선에서 부채꼴 모양의 선을 그리면. 첫 번째 선은 아버지 어깨선에서 시작되는 부채꼴 선이 차례로 만나는 여성 캐릭터의 목과 얼굴 그리고 다리 각도가 부채꼴 모양으로 나란하게 배치되어 리듬감을 자아낸다. 모두 긴장된 직선의 남성 자세와는 다르게 유연하고 둥글며 부드러운 여성의 자세는 남성들과 대조를 이룬다.
아들들은 특히 강하고, 세 사람 모두 같은 자세를 취하고, 다리가 매우 벌어져 있다. 그들은 또한 첫째 아들이 왼손에 쥐고 있는 벽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창으로 받쳐져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흰색 옷을 입은 여성의 팔은 피곤하고 둥근 팔로 이 그림을 닫는 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다.
작품에 추가적인 균형은 잘 정의된 색상 선택이 뒷받침한다. 색상의 상징성을 분석하면 강력한 애국적 메시지의 존재와 공화국의 미래 색상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여성의 드레스의 흰색은 첫째 아들의 망토의 흰색, 안락의자의 빨간색과 튜닉(Tunic)의 빨간색, 여성복의 파란색과 튜닉(Tunic)의 파란색이 균형을 이룬다. 마치 앞으로 등장할 삼색기의 등장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호라티우스의 맹세》의 구성은 기하학적인 위업이자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다. 이처럼 신고전주의가 추구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조형 요소는 매우 조직적이며, 우연에 맡기는 것이 전혀 없는 형식적 완벽함을 추구한다.이처럼 당시 예술 작품은 아무리 격정적인 상황이라도 한결같이 화면의 조형 요소들은 이성적이며, 침착함을 유지하며, 빙켈만이 주창한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신고전주의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창출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