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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경 리뷰] 플렉트럼 술대로 치대고, 1500년 한국의 숨으로 부풀은 프랑스 최고 후식 수플레(Soufflé)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리뷰]

2024년 5월 18일 오후 7시

프랑스 파리 살가보 극장 (Salle Gaveau)

’프로젝트 띵(Project tHinG)’

"거문고 플렉트럼 술대로 치대고, 1500년 한국의 숨으로 부풀은  프랑스 최고 후식 수플레(Soufflé)"

사진) 전자음악: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 Gabriel Prokofiev, 거문고: 허윤정, 피아니스트: 박종화

 

오늘은 2024년 5월 18일, 44년 전 오늘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 속에 극도로 참혹한 국가 폭력이 발생했던 날이다. 대한민국 광주에서 군부 세력 및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는 시민 봉기,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시민을 대상으로 군인들은 장갑차의 발포를 시작했다. 6.25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정치적 비극이며 역사적 수치이다. 그날은 5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날을 생생히 증언할 수 있는 산증인들이 아직도 많이 생존한다. 

 

올해 지멘스상 (Ernst von Siemens) 수상자는 한국인이다. 오늘 5월 18일, 독일 뮌헨에서 지멘스상 수상식이 개최된다. 축하하는 마음으로 자랑스러운 한국 예술인의 제고된 위상을 재고해 본다. 지멘스상 수상자 작곡가 진은숙의 인터뷰를 읽으며 몸을 파리로 틀었다. 7월에 열리는 올림픽 행사 때문인지 도시 전체가 들썩거리는 파리는 유난히 다른 해 보다 문화 행사가 빼곡하다. 

 

사진) 프랑스 가보 극장(Salle Gaveau) 입구

 

프랑스 가보 극장(Salle Gaveau)은 119년 전부터 파리 8구 중심지, 샹젤리제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다. 가보 극장은 1905년 인수된 땅 위에 건축가 Jacques Hermant로부터 음향에 대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건축되었다. 900석으로 이루어진 3층 홀은 공간의 미적, 음향적 독창성을 자랑한다. 파리 8구 랜드마크인 가보 극장 주위에 한국인들이 무리 지어 삼삼오오 서성인다.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공동으로 ‘2024 코리아 시즌’ 프로젝트 안에 ’프로젝트 띵(Project tHinG)’ 의 멤버 3명 (피아니스트: 박종화, 거문고: 허윤정, 전자음악: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 Gabriel Prokofiev)를 파리에 초청했다. “새로운 창작”이라는 모토는 시도와 시도를 거듭하고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도 늘 새롭게 스타트한다. 원래 예술이 창작이고 또 새로운 것이 아닌가? 설사 같은 말을 되새김질하는 언어유희일지라도 창작을 운명으로, 또는 업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는 인간과 그 인간의 떨굼을 추앙하는 인간에게는 또 한 번 믿어보는 주문 같은 유혹일지 모른다. 프로젝트 띵(Project tHinG)의 “새로운 창작”, 이번 유혹은 조금 강도가 남달랐다. 

 

프로젝트 띵 3인조의 교집합을 미리 찾는 데 실패했다. 새로움에 다가가기 전,  같음과 다름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낡은 접근에서 허윤정과 박종화가 서울대 음악대학 교수라는 유일한 카드 한 장만 손에 쥐고 있었다. 과거분사 안에는 머리가 끄덕여지는 트리오의 교집합이 없었다.  

 

사진) 프로젝트띵(Project tHinG), 2024년 5월 18일 파리 살가보 극장에서, 허윤정, 박종화, 가브리엘 프로코피에프

 

가까운 미래일수록 악기 트리오는 다양해진다. 결혼식 오브리로 결성된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가 더 이상 아니다. 클래식을 벗어나 수많은 3인조의 예외가 이미 변주하였었는데 오늘 3인조는 피아노를 중심에 놓고, 1500년의 시간을 양쪽으로 배치하고, 얼핏 보기에 대등하지 않은 밸런스를 무대에 설치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 토종 악기 거문고를 안고 있는 허윤정은 그동안 관객에게 보여줬던 자태에서 벗어나 파리하고 서늘한 빛과 전통옷을 파랗게 술대로 산란시켜 무대를 확장했다. 고향이 그리워 거문고를 졸졸 쫓아왔던 관객이 한편으로 소스라치기도 했을 터이다. 시나브로 낯설었던 음향이 관객도 모르게 서로에게 녹아갔다.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국경과 장르를 넘나 드는 'Project tHinG'는 뮤지션과 아티스트의 일종의 연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들은 함께 전반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냅니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 (Arvo Pärt 1935-)의 „형제들“ (Fratres)은 1977년에 발표되었고 그 이후 시리즈로 꾸준히 발표 되어온 작품이다. 이 작품에 거문고를 입양하여 가장 개성 있는 혁신의 소리를 자아냈다. 무대 위에 3인조는 그들끼리  음악을 먼저 공유하며 상호보완력에 추력했다. 청중은 힐링하고 있었다. 

 

전자음악 언저리에 20여 년을 기웃거렸던 글쓴이는 이번에 합류된 가브리엘 프로코피에프의 음향에 흥미가 있었다. 전자음악을 제대로 청취하려면 사운드가 지나가는 경로를 찾아, 가장 적절한 공간에 앉아 소리를 감지해야 한다. 사운드의 행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가장자리에서 놓치는 소리가 있다는 청각을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리오의 총제안에 역할을 무난하게 합류했다. 비트의 유동성과 악센트로 인하여 젊은 청중의 귀가 잠시 쫑긋해 지기도 했다. 박종화의 피아노는 소리로 지시하는 무언의 지휘였다. 투명한 지휘자 역할은 두 악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눈을 가린 디케(Dike)의 저울 같기도 하다. 경계를 허문 3개의 색채는 이쪽과 저쪽을 평행하게 연결한 삼색 무지개를 자아냈다. 새로운 사운드는 이미 개발되었다. 

 

사진) 2024년 5월 18일 살가보 극장, 콘서트 후 리셉션, 허윤정, 노유경, 장람

 

거문고에 마음이 가장 쏠리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이라 그럴 것이다. 국경과 장르를 넘어서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거문고 플렉트럼 술대로 반죽을 치대고, 1500년 한국의 숨으로 부풀어 오른 프랑스 최고의 후식 수플레(Soufflé)를 구웠다고 생각한다. 수플레는 “숨을 불어 넣은”이란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창작의 물꼬를 터 가능성을 보여준 “경이로운 협업 프로젝트”에 미래의 한입을 기대해도 좋다

 

사진) 2024년 5월 18일 살가보 극장, 콘서트 후 리셉션, 왼: 장람, 이소명, 박종화, 노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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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쾰른대학교/아헨대학교 출강, 전통음악앙상블K-Yul 음악감독, 국제독일교류협회대표, 음악학박사, 공연평론가, 한국홍보전문가, 독일/서울 거주,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