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신유승 회장|

중국 남송(南宋)에 학문이 높은 사석(謝石)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남송이 꽤 불안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옷 한 한 벌만 걸치고 다녔어도, 문자의 측자(測字)로 그 이름을 천하에 드날렸고 명성이 후세에까지 전해졌다.
사석(謝石)은 학식이 풍부한 선비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해,신술(神術)로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항주(杭州)에 머무르게 되었다.
謝石이 어느 날 호숫가에서 측자풀이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남송(南宋)의 고종(高宗)이 변복을 하고, 민정을 살피러 나왔다가 그를 만났다. 謝石은 전혀 高宗을 몰랐고, 高宗 역시 그를 몰랐지만 그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다.
호위하던 내시가 高宗에게, 저 사람이 바로 測字로 유명한 謝石이란 사람이라고 살짝 알려드렸다. 高宗은 호기심이 생겨 친히 그의 신통(神通) 여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바로 지팡이로 땅 위에다가 一자를 긋고, 謝石에게 내가 누군지 말해 보라고 했다.
謝石은 “土 위에 一을 더한 글자는 王자가 되니, 어르신은 반드시 귀한 분입니다.”라고 했다.
高宗은 그 한 마디에 마음속으로 매우 당황하면서 또 땅 위에다 지팡이로 문(問)자를 쓰고, 내가 도대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 측자해 보라고 했다.
謝石은 단단한 땅 위에 지팡이로 쓴 글자가 삐딱하고, 양쪽으로 기울은 모양을 보고서는 매우 크게 놀라 말하길, “왼편으로 보니 군(君)자이고, 오른편으로 보아도 君자이니 일국의 원수(元帥)이므로 필히 황제폐하이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謝石이 급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리려 하자 高宗은 말리면서 말하길, “이목이 매우 많으니 그만두라.”라고 하자, 謝石은 벌떡 일어나서 은혜에 감사했다. 高宗은 환궁한 다음날 謝石을 대궐로 불러들여 사품(四品)관직에 임명하는 동시에, 춘(春)자를 쓰고 조정의 정사(政事)를 말해 보라 명하자 謝石은 말하길, “홍일정중(紅日正中)인 것은 바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징조입니다.
그러나, 진(秦)자의 머리글자 부분이 春에서 너무 무겁게 차지하고, 태양을 눌러서 빛이 없는 모양입니다.”라고 하자,
高宗은 그 말을 듣고 잠자코 있었는데, 당시에 간사한 재상 진회(秦檜)가 정권을 농락하고 조정을 꽉 쥐고 있었다.
春의 모양은 秦檜가 황제인 해<日>를 누르고 압박하니 아주 흉한 징조다.
그래서, 훗날 秦檜는 南宋 최고의 충신인 악비(岳飛)장군을 모함해서 죽였다.
그 때 謝石의 말을 들었던 秦檜의 심복이 몰래 秦檜한테 보고해서, 그를 크게 노하게 했고, 그 후 謝石은 秦檜에게 생트집을 잡혀 아주 먼 변두리 작은 고을의 하급관리로 좌천당했다.
이후 謝石은 인품이 고상하고 뜻이 높으며 권세에 아부하지 않아 후세에 명성을 전했고, 고금(古今) 제일의 측자선생으로서 추앙을 받았다.
한국갑골문자연구회 회장 신유승 제공
sungtchae@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