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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희 독주회, 세 개의 건반, 세 개의 시간 / 류현미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같은 메뉴의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다면 즐거움보다는 고통스럽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변화의 추세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다.


인간의 욕망에 기초한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예술 장르에서도 그대로 반영이 된다. 근자에 일고 있는 바로크 열풍은 바로 우리 음악사에서 소외되었던 한 양식이 바야흐로 본격적인 열풍을 가져온다. 

 

지난 3월 17일 있었던 예술의전당 IBK홀에서청중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그도그럴 것이 특이하게 하프시코드, 포르테피아노, 피아노라는 시간을 건너 뛴 악기들의 동시 감상이란  이색적 컨셉에 대한 호기심이다.

 

물론 이같은 행위가 단순한 과거의 음악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지속되면서 우리 창작의 앵글을 통해 재해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날의 콘서트를 본 류현미 작가의 리뷰 싣는다.

 

세 개의 건반, 세 개의 시간 / 류현미

무대 위에는 세 대의 피아노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의 문이었다.
챔발로의 맑고 또렷한 울림은
질서와 신의 숨결이 깃든 시대를 불러왔고,
포르테피아노의 섬세한 호흡은
인간의 감정이 막 깨어나던 순간을 지나,
현대 피아노의 깊고 풍부한 음색은
감정이 세계를 이루는 곳까지 나를 데려갔다.

같은 건반 위에서
다른 시대가 말하고 있었다.
같은 손끝에서
서로 다른 언어가 피어났다.
300년의 시간이
소리로 흐른다면 이런 느낌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귀를 통해 만져지는 순간,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감정 사이에
잠시 서 있었다.

피아니스트 윤철희 교수의 연주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는 해석이었다.
어린 나이에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며 시작 된 그의 음악은
이제 시대를 넘나드는
하나의 이야기로 전달되었다.

특히 포르테피아노로 들려준
모차르트의 첫 악장은
가볍게 스치는 바람 같고
터치는 소리가 아니라
감정의 순간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왼손으로만 이어가던 앵콜곡.
한쪽 손이 만들어낸 선율은
오히려 더 넓은 세계를 품고 있었다.

비어 있음이 채움이 되는 순간,
음 하나하나가
가슴 한켠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은
결국 침묵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나를 흔든다.

그날의 음악회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