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강주호 [투잡러 의사/쳄발리스트] 골트 베르크 변주곡에 대하여

K-Classic News 강주호  |

 

봄의 기운이 머잖아 만연해 질 무렵인 하순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생일이 있습니다. 그레고리력 혹은 율리우스력에 따라 3/21 혹은 3/31 정도로 약 열흘이 차이가 난다고 하더군요. 제가 가장 애정하는 작곡가, 음악의 아버지 바흐에 대해서는 아마도 앞으로도 여러 차례 글을 쓰게 될 예정인데요. 이번 글에서는 저 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건반악기 연주자들의 워너비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는 곡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려볼까 합니다. 이 곡, 생각보다 감상하고 즐기기엔 진입장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의견들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고, 한편으로는 도전의 대상,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존재로 여기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 글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해 더 흥미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741년(혹은 1742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후기작이자 작곡가의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 중 가장 긴 작품인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Variationen, BWV 988)”가 출판되었습니다. 그의 ‘건반악기 연습곡집’ 시리즈의 마지막인 4권이기도 하며, 대위법적 구조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카논 형태의 변주들을 포함해 그 당시까지의 변주 기법과 건반악기 연주를 위한 기교가 총망라된 작품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명실공히 바로크 시대 건반음악의 금자탑으로 주저 없이 꼽는 전문가들, 음악가들이 많습니다. (cf. 독일식 인명에 대한 표기를 고려할 때 ‘골트베르크’라는 표기가 더 원어 발음에 가까우나, 이 글에서는 흔히 더 알려져 있는 표기로 대신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명칭은 최초의 바흐 전기 작가였던 요한 포르켈(Johann Forkel, 1749-1818)의 전기에 실린 가장 유명한 배경 ’설(1802년 저. 작곡되었던 때와 상당한 시간적 차이로 인해 진위는 확실치 않음)’에 따르면, 만성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작센 궁정 주재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 (Hermann Karl von Keyserling, 1695-1764)의 요청으로 작곡되어, 백작의 전속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바흐의 제자인 골드베르크(Johann Gottlieb Goldberg, 1727-1756)가 연주하도록 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전기 내용을 따르면, “...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곡에 매우 흡족해 하였고, ‘나의(seine) 변주곡’이라 불렀다. 백작은 이 곡에 대한 사례로 금잔에 금화를 가득 채워 바흐에게 하사하였는데, 바흐의 1년 월급과 맞먹는 금액이었으며 바흐가 평생 받았던 사례비 중 가장 많은 것이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주들 중엔 과연 불면증 치료를 위해 백작이 지시한 ‘조용하고 어느 정도의 생기가 있는’ 수준에 합당한지 의문이 생기는 비르투오시티가 가득합니다. 전곡의 규모도 이런 일화에 합당한 일종의 실내악(hausmusik)으로 간주하기에 너무나 거대합니다. 또한 그 당시 골드베르크의 나이가 14세에 불과했으며(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백작의 눈에 들어 연주를 했을 정도라고 하니 수재였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1737년부터 바흐의 가르침을 받았었다고 하네요),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한 헌정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지않은 악보/필사본/인쇄본 등을 근거로 이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게 됩니다. 학자들은 이 설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바흐는 이미 ‘연습곡집’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이 곡을 백작을 만나기 전부터 구상해 왔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해집니다.

 

출판 당시 이 곡의 제목은 ‘음악 애호가들의 영혼을 고양하기 위해 작곡된(Denen Liebhabern zur Gemüths-Ergetzung verfertiget), 2단 건반을 가진 쳄발로(하프시코드)를 위한 아리아와 다양한 변주들(Aria mit verschiedenen Veränderungen vors Clavicimbal mit 2 Manualen)’이라는 긴 설명적 타이틀로 되어있었습니다. 여기서 2단 건반을 지정해 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흐는 각 변주에 연주되는 건반(Clavier)의 단(段) 수를 각각 ‘1단’, ‘2단’, ‘1단 혹은(ovvero) 2단’의 형태로 연주하라는 지시를 명시해 두었습니다. 곡의 원제와 의도와 다르게 피아노 등 1단의 건반으로 연주할 경우에는 양손이 겹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며, 작곡가가 의도한 붙임줄과 이음줄(ties and slurs) 등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연주하는 악기의 단 수 여부는 이 곡을 연주할 때에 중요한 지점이 되며, 연주자와 청자로서도 전곡 감상 시 이 점을 고려했으면 합니다.

 

이 글을 적기 며칠 전 많은 분들로분터 바흐의 곡 중 이 곡부터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만났습니다만, 저는 그보다는 이 ‘종합세트’와 같은 구성을 생각했을 때 악곡의 이해를 위해 각 변주의 특징들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바로크 시대 특히 프로베르거(Johann Jakob Froberger, 1616-1667)에 의해서 정착되었던 모음곡(suite) 양식을 이루는 춤곡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습니다.


당장 이 곡집의 첫 곡인 ‘아리아’는 3박자 계의 느린 춤곡, 사라방드 춤곡 리듬에 얹어져 있는 곡입니다. 이에 이어 30개의 변주가 나온 후 다시 아리아가 등장(Aria da capo)하며 마무리되는 것이 전체 곡집의 구성인데요. 아리아를 포함한 각 변주는 위 악보의 베이스(근음)에 기반한 화음에 기초합니다. 이 사라방드는 32마디로, 전곡의 곡 숫자와 일치하며, 대부분의 변주도 모두 같은 마디 갯수를 가집니다. 빈틈없는 설계에 의한 것으로,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저음들은 작곡가가 이후 작곡한 14개의 카논(BWV1087, 1747-8)의 주된 주제가 되었으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바흐의 초상화에서 그의 오른손에 들려진 악보가 바로 이 카논 중 하나입니다.


30개의 변주는 3개의 연속된 변주들(1,2,3 / 4,5,6 /…)이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며, 총 열 개의 그룹은 각각 이렇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 춤곡, 칸틸레나(성악적 멜로디) 등의 성격적 변주(characteristic variation)
이 중 변주곡 1번은 바로크 풍의 폴로네이즈(Polonaise), 4번은 파스피에(Passepied), 7번은 (작곡가가 명시했듯) 지그(Giga(Gigue)), 16번은 프랑스풍 서곡(우베르튀르, Ouverture), 19번은 미뉴에트/뮈제트(Menuet/Musette) 등의 춤곡 형태가 두드러집니다. 또한 단조 조성의 성악적인 선율과 반음계적 진행이 인상적인 25번 변주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ii) 빈번한 양손 교차와 2단 건반을 고루 사용하도록 하는 기교적 변주
이러한 연주기법은 선배격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쿠프랭, 그리고 거의 동시대의 작곡가인 장 필립 라모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등에서도 확인되지만 14번 변주의 경우 가장 넓은 폭으로 양손 교차를 하면서 장식음과 32분음표를 모두 신경써야하는 곡이고, 20번의 경우도 양손에서 나타나는 주제의 주고받음의 표현이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불면 치료용’이라는 타이틀이 석연치 않은 이유라 생각합니다.


iii) 엄격한 구조이나 유려하게 들리는 다성부의 카논(canon)
카논(Canon)이란 그리스어로 규칙이라는 뜻. 영어로도 규범, 전형 등으로 해석괴는 단어인데 우리에겐 파헬벨(J.Pachelbel, 1653-1706)의 캐논 D장조가 너무도 유명하죠. 시차를 두고 여러 성부가 같은 진행을 공유하는 일종의 ‘돌림노래’와 같은 형태의 대위법적 작곡형태입니다. 이 카논의 형태는 악보를 따라가면서 감상하시고 연습하시는게 큰 도움이 됩니다. 너무도 도움이 되는 youtube의 scrolling score 영상을 공유합니다. (https://youtu.be/BYfKWyeichE?si=L8YMZaKwp8oSAnn9 )

 


3번 변주는 유니즌(같은 음, 1도)의 두 성부로 이루어진 카논으로 시작해 6번 변주는 2도, 9번은 3도 간격을 두는 등 매번 1도씩 음정을 증가하여 9도 간격(27번 변주)까지 가다가, 마지막 30번째 변주에서는 (우리의 기대처럼 10도 간격의 카논이 아니라) 16-17세기 유행하던 양식으로 당대의 유명한 민요 선율 등 잘 알려진 선율들을 한데 결합한 익살스러운 장르 ‘쿼들리베트(Quodlibet-라틴어로 ‘원하면 무엇이든지’란 뜻을 지님)’가 등장합니다. 당시 바흐의 집에서 열렸던 파티 등의 모임에서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선율들에서 따온 선율들로 구성된 4성 푸가 형태입니다. 또 언급할 만한 점은 25번 변주를 제외한, 전곡의 단조 변주 3곡 중 15번/21번 변주가 모두 카논 형태라는 점인데, 대위적인 카논의 형태임에도 그 조화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특별히 12번과 15번의 경우 대위를 이루는 두 성부가 ‘반대방향 거울상으로 진행’한다는 것(in moto contrario)이 재밌는 특징인데, 이러한 작법은 이후 바흐의 걸작인 ‘음악의 헌정(BWV1079)’, ‘푸가의 기법(BWV1080)’에도 자주 나타납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16번째 변주는 프랑스풍의 서곡(Ouverture) 형식이 으레 그렇듯 위풍당당한 부분과 빠른 부분이 공존하는데, 이 변주를 기점으로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전곡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뉩니다.

 

쳄발로가 아닌 피아노로 이 곡을 접한 분들에겐 글렌 굴드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바흐 사후에도 이 작품은 지속적으로 잊혀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변주곡이라는 형식이 프레스코발디. 윌리엄 버드와 같은 초기 바로크 시대에도 있었던 장르였고, 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또한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나 헨델의 곡에서 형식 또는 주제의 악상의 아이디어를 따왔다는 이론들이 전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그 자체만으로 건반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봅니다. 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마주는 베토벤(1770-1827)의 ‘디아벨리 변주곡(Op. 120, 1819-23)’을 예로 들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곡 또한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더불어 건반악기의 변주곡 장르의 쌍벽을 이루는 곡입니다. ‘Variationen’이라는 표기 대신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처럼 ‘Veränderungen(변용)’이라는 단어로 곡집을 명명했던 것이 특기할 점이고, 공교롭게도 변주의 갯수도 거의 유사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프란츠 리스트(1811-1886)가 등장합니다. 1830년대 후반부터 작품의 일부를 종종 무대 위에서 연주했고, 말년엔 제자들에게 연주를 권했다고 전해집니다. 19세기 후반엔 (우리에겐 바흐의 샤콘느 편곡을 유명한) 페루치오 부조니(1866-1924) 등이 본인만의 개정판을 출판하는 등 다양한 편집/편곡판들이 등장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하프시코디스트 반다 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 1879-1959)의 역사적인 첫 전곡 연주 및 녹음(1933)이 큰 계기가 되어 이후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전곡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 흐름에 1955년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의 첫 레코딩이 등장했던 것이죠. 건반악기 외에도 다양한 편곡버전으로 이 곡은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드미트리 시츠코베스키(Dmitry Sitkovetsky, b.1958)의 현악 3중주 버전이 특히 유명합니다. (https://youtu.be/sy9RhZ94EWM?si=s9tGjCfVMAmZXTPT )


이후 지금까지도 수많은 피아니스트, 쳄발리스트들이 앞다투어 자신만의 해석과 개성을 담아 이 곡을 연주해왔고, 많은 연주자들을 넘어 저와 같은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도 도전의 대상, 숙명적인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무려 280여년 전 작곡된 곡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랑받아오면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곡. 바흐의 음악을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 음악이 있으면 음악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후세대의 음악을 모두 복원할 수 있다’ 내지는 ‘알파요 오메가다’ 찬사를 보내는 데에 아마 상당한 기여를 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위대한 음악이 계속 존재하는 한, 순수한 마음으로 이 곡에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연주자들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 믿고, 그런 순간들을 직간접적으로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